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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석진, '화조노안도', 1913, 견본담채, 155×49cm

박물관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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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석진, '화조노안도', 1913, 견본담채, 155×49cm

 

갈대와 기러기가 함께 있는 노안(蘆雁)도는 노년의 편안함을 뜻하는 노안(老安)과 같은 의미로 통하며 다양한 모습으로 그려졌다. 17세기까지의 노안도는 속세를 벗어난 자연과의 조화로운 삶의 상징으로 인식되었으며, 주로 물가에 앉아있는 사대부의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18세기 이후에는 노안도의 수요가 확대되었고 갈대와 기러기를 의미하는 노안(蘆雁)과 음이 같은 ‘노후의 평안(老安)’이라는 길상적인 의미가 더해지면서 더욱 유행하였다. 이렇듯 노후의 편안한 삶을 기원하는 노안도는 크게 각광 받았으며 궁궐이나 상류층에서 병풍으로도 활용되었다. 

이에 따라 19세기 후반에는 양기훈, 장승업, 조석진, 안중식 등 많은 화가들이 노안도를 그렸다. 특히 장승업은 중국 청대 양식을 바탕으로 물감을 엷게 쓰는 담채를 이용하는 새로운 노안도를 창시하여 당대 화가들의 화풍에 큰 영향을 미쳤다. 노안도를 그린 화가들은 주로 세로로 긴 화면을 이용하였다. 측면에서 뻗어 나온 갈대를 기준으로 화면을 상하로 나누어 상단에는 날아오르거나 땅으로 내려오는 기러기를, 하단에는 지면에 앉아있는 기러기를 그렸다. 이는 중국의 화보인 『개자원화전』의 「영모화훼보」에 실린 노안도를 차용한 것으로, 당대 조선의 화가들이 즐겨 그린 구도이다. 

소림 조석진(趙錫晉, 1853~1920)은 심전 안중식(安中植, 1861~1919)과 함께 조선 후기 전통 양식을 계승하며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그는 도화서에 들어가 조선 마지막 화원이 되었으며, 1902년에는 안중식과 함께 고종의 어진을 그렸다. 1908년부터는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했고 1911년 서화미술원이 설립되자 교수로 재직하며 이상범, 노수현 등 근대 시기 전통 회화를 주도하는 화가들을 양성했다. 

홍익대학교 박물관 소장 <화조노안도>에서는 세로로 긴 화면, 측면에서 뻗어 나온 갈대, 상단과 하단의 기러기 등 노안도의 전형적인 구도를 확인할 수 있다. 조석진은 이러한 형태를 활용하면서도 중앙에 꽃을 그리는 등 약간의 변형을 더해 자신만의 개성을 표현하였다. 먹을 중점적으로 활용한 다른 노안도와 달리, 색을 이용하여 기러기와 꽃을 표현하면서 길상적인 의미를 더욱 강조한 것이다.

 

홍익대학교 박물관 인턴 노한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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