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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오랜 친구, 강아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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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팬지는 70~80 정도의 아이큐(IQ)로 4~5세 어린아이 수준의 지능을 갖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러 연구에서 입증됐듯이, 우리는 대개 침팬지를 포유류 중 가장 똑똑하다고 여겨왔다. 하지만 놀랍게도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우리 집 강아지가 침팬지보다 더 뛰어난 인지 능력을 갖고 있다. 브라이언 헤어(Brian Hare)와 버네사 우즈(Vanessa Woods)가『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2021)』를 작성하며 진행한 실험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들은 컵 두 개 중 한 곳에 먹을 것을 숨기고, 손가락으로 가리켜 어느 컵에 먹을 것이 들어있는지 알려주며 그 반응을 확인하는 실험을 했다. 침팬지는 도움을 주려는 작가의 손짓을 거듭 무시하며 짐작으로 하나를 골라잡는 행동을 반복한 반면, 개는 도움을 주는 손길을 이해하며 18번의 반복된 실험에서 모두 먹이를 찾아냈다. 실험을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개는 협력할 줄 알고, 의사소통도 할 줄 알고 있고, 이 둘을 동시에 할 줄 안다는 것이다. 귀엽고, 똑똑하기까지 한 개에 대해 파헤쳐보자.

 

[우리는 아주 오래전부터 친구인 사이]

▲기자의 반려견 흰둥이,달이, 별이
▲기자의 반려견 흰둥이,달이, 별이

인간과 개의 우정은 지금으로부터 약 14,000년, 길게는 3만 년 전부터 이어져 오고 있다고 추정한다. 그리고 인간과 개의 관계가 어떻게 시작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설이 존재한다. 최근 가장 유력한 가설로 꼽히는 것은 개의 조상인 늑대 중 친화력이 높은 개체들이 자기 가축화를 택해 개가 됐다는 것이다. 친화력이 높은 유전자를 보유한 늑대들이 인간 주위를 배회하다 남겨진 음식을 먹으며 생존했고 자발적으로 가축화됐다고 주장한다. 이외에도 인간이 의도적으로 혹은 우연히 새끼 늑대들을 기르며 가축화했다는 가설, 사냥을 함께 하다가 가축화됐다는 가설, 과학적 근거는 빈약하지만 인간이 다친 늑대를 돌보며 가축화했다는 가설 등 여러 가설이 있다. 

개와 인간의 초기 관계는 ‘공생 관계’로 정의할 수 있다. 인간은 개에게 안전하고 따뜻하게 머물 안식처와 식량을 제공했고, 이로 인해 개들은 자연스럽게 야생과 멀어지게 됐다. 인간 또한 개들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왔다. 개들은 낯선 침입자로부터 인간의 영역을 보호해줬고, 타고난 후각 능력을 통해 사냥을 돕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도시에 살며 더 이상 개의 도움을 받아 사냥하지 않아도 되고, 야생 동물의 침입에 대비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도 인간과 개들은 서로 함께 사는 길을 택했고 그렇게 우리는 친구로 발전했다.

 

[친구끼리는 닮는 거야]

개와 인간은 유사한 능력을 많이 갖고 있다. 인간은 첫 돌 무렵에 목소리의 방향을 인식하고, 낱말이 특정 물건과 행동을 가리킨다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하는데 개도 그 능력을 갖고 있다. 이것은 반려견을 키우고 있는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기도 하다. ‘어야(산책, 외출)’, ‘맘마(밥)’, ‘손(손을 내밀며)’, ‘기다려(손을 펼치며)’ 등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반려견도 인간의 언어와 행동을 인지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개와 아기는 모두 눈을 마주치고 다정한 목소리를 낼 때 더 주의를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일본 아자부 대학교(麻布大学) 연구진에 따르면, 인간과 개는 서로 마주 볼 때 행복과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하는 ‘옥시토신(oxytocin)’ 분비량이 증가한다고 한다. 그리고 개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친구와 적을 구분할 줄도 안다. 자신에게 잘 대해주는 이에게는 한없이 다정하지만, 자기 자신이나 주인을 괴롭히는 이에게는 한없이 적대적으로 변한다. 

개는 생존에 있어서도 인간과 매우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브라이언 헤어가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를 집필하며 자신의 반려견 ‘오레오’와 진행한 여러 실험에 따르면, 개는 인간처럼 협력적 의사소통에 특화된 인지능력을 갖고 있고, 그렇게 설계됐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인지능력은 종족번식의 성공을 촉진하도록 진화해왔다. 특히 개는 다른 동물보다 인간과의 관계가 생존을 위한 중요한 요소였기에 높은 인지적 유연성을 발휘하도록 인지능력이 발달해왔다고 볼 수 있다.

 

[“멍멍!” 말고 ‘카밍 시그널’]

‘카밍 시그널(Calming Signal)’이란 노르웨이의 유명 개 조련사 ‘투리드 루가스(Turid Rugaas)’의 저서 『On Talking Terms With Dogs: Calming Signals (1996)』를 통해 처음 소개된 개념이다. 이 개념이 생겨난 초기, 카밍 시그널은 개의 스트레스 단계 중 ‘초기에 나타나는 몸짓 언어’를 뜻했다. 오늘날에는 카밍 시그널의 의미가 좀 더 광범위해졌다.

▲'기다려(손을 펼치며)'를 이해한 흰둥이
▲'기다려(손을 펼치며)'를 이해한 흰둥이

 

강석재 행동학 수의사는 이에 대해 “우리가 억지로 무엇인가를 지시하려고 할 때 발생하는 모든 언어라고 생각하면 된다”라고 설명했다. 카밍 시그널의 예로 개가 하품을 하거나 시선을 피하는 행위를 들 수 있다. 이는 때에 따라 자기 자신을 진정시키기 위함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싸우지 말자’며 상대방을 진정시키려는 몸짓이다. 그리고 발버둥이나 낑낑거림도 카밍 시그널의 한 종류로 볼 수 있다. 현재 자신에게 닥친 상황이 싫을 때 개는 해당 신호를 보낸다. 그리고 꼬리를 높이 들면 기분이 좋은 상태, 숨기면 무섭거나 불안한 상태, 꼬리를 낮게 살랑살랑 흔들면 안정적인 상태임을 나타내는 신호로 볼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인간과 개가 공생에서 친구 관계로 발전해온 만큼 개의 언어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아 이야기한다. 우리는 카밍 시그널을 통해 개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싫어하는지 파악하고, 개의 의사를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 훈련을 핑계 삼아 명령을 내릴 것이 아니라 함께 조율해 나가야 한다.

▲기분이 좋으면 배를 뒤집는다.
▲기분이 좋으면 배를 뒤집는다.

 

2022년 기준 전체 인구 가운데 국내 반려동물 양육 비율은 25.4%이고, 이 중 약 75%는 개를 기르고 있다. 이렇게 반려견을 키우고 있는 이들이 증가하면서 개에 대해 알고자 하는 욕구도 자연스레 증가했고, 카밍 시그널도 널리 알려지게 됐다. 그런데 이러한 개념이 마치 개 행동에 관한 정석처럼 자리 잡는 경향이 생겨났다. 카밍 시그널은 개의 행동에 대한 직관적인 이해를 돕기 위한 좋은 도구임은 틀림없지만, 이를 맹신하는 것은 오히려 소통에 장애가 될 수 있다. 반려견의 모든 행동을 이와 연관 지어 생각하면 개의 상태를 오해할 수 있다. 그리고 과학적인 실험의 결과가 아닌 훈련사가 오랜 기간 관찰을 통해 도출한 개념이기 때문에 과학계의 의견 또한 분분하다. 유의미한 통계적 수치가 없기 때문이다. 일부 심리학자들은 카밍 시그널이 소통하기 위한 행동이 아니라 단순히 스트레스를 받을 때 나오는 본능적 행동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또한, ‘전위행동(Displacement Behavior)’으로 보는 입장도 있다. 전위행동이란 동물들이 상반된 충동을 느낄 때 보이는 제3의 행동을 말한다. 예를 들어 카밍 시그널에 따른 개의 하품은 상대방을 진정시키기 위한 행동이다. 그러나 문 앞에 가고 싶지만 가도 되는지 확신이 없는 경우에도 개는 하품을 할 수도 있다. 즉, 개가 처한 상황과 무관하게 행동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개의 성향에 따라 카밍 시그널이 다른 의미로 해석되는 경우도 있기에 앞으로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 대부분이다.

 

[동물을 대하는 모습은 곧 타인을 대하는 모습]

동물을 대하는 태도는 곧 타인을 대하는 태도이다. 책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에서는 저자에 따르면 마르투족과 딩고(Dingo)의 관계를 소개하며 두 태도의 상관관계를 설명해준다. 마르투족은 부족민과 딩고에 대한 사랑이 아주 인상적인 부족으로 세계에서 평등주의가 가장 잘 실천되고 있는 문화권으로 꼽힌다. 딩고는 유전적으로 개와 늑대의 중간적 특징을 갖고 있는 동물로 ‘오스트레일리아들개’라고도 불린다.

 

▲딩고(Dingo)/ 출처: 사이언스타임즈
▲딩고(Dingo)/ 출처: 사이언스타임즈

 

이들은 야생종과 가축종 경계에 있어 인간 없이도 잘 살 수 있지만 마르투족과는 매우 가깝게 지내고 있다. 마르투족은 얼마 남지 않은 수렵채집인 중 하나로, 어른들이 수렵과 채집 활동을 위해 멀리 야외로 나가면 좀 큰 아이들이 동생들을 지키다가 피곤해질 때 집으로 돌아간다. 딩고는 이 아이들과 함께 집에 와 자기 새끼들에게 해주는 것처럼 먹은 것을 게워내 아이들의 허기를 달래주곤 한다. 그리고 늦은 밤 부모가 양식을 들고 집에 돌아올 때까지 딩고는 아이들 옆에 웅크리고 누워 따뜻하게 지켜준다. 딩고가 지켜주는 동안에는 아무도 자기네를 해치지 못한다는 것을 안 마르투족 부족민들은 인류학자 더그 버드(Doug Bird)와의 인터뷰에서 딩고를 ‘어머니’라고 소개했다.

 

기자가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를 읽으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글이 있다. “개에게서 사랑을 받아본 사람이라면 그 사랑이 다른 사랑만 못하다는 생각은 결코 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우정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평등한 사상이다.”라는 것이다. 서로에게 중요한 존재이자 친구인 만큼 우리는 그들을 이해하려 노력해야 하고, 그들이 준 우정과 사랑에 보답할 책임을 가져야 한다. 기자는 가장 친한 친구였던 흰둥이에게 그동안 준 우정과 사랑에 대한 고마움과 보답하지 못한 미안함을 전하며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 글을 읽은 독자들도 오늘 하루만큼은 반려동물을 더욱 유심히 바라보며 이들의 시그널을 느껴보기 바란다.

 

[참고문헌] 브라이언 헤어(Brian Hare)·버네사 우즈(Vanessa Woods)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디플롯, 2021 투리드 루가스(Turid Rugaas), 『On Talking Terms With Dogs: Calming Signals』, Dogwise,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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