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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지 않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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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이번 학기부터 자취를 시작하게 된 ‘자취 새내기’이다. 본가를 떠나 혼자 생활하게 되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정말 많다. 집을 비울 때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 집들이로 놀러 온 친구는 어떻게 대접해야 하는지 등의 사소한 문제부터, 숨만 쉬어도 나가는 고정지출이 얼마나 큰 부담인지, 식비가 얼마나 드는지, 생필품값이 얼마인지 등 비용과 관련한 문제까지 새롭게 배워나가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깨달음을 얻은 것은 바로 ‘빨래’에 대한 것이다. 자취하기 전, 필자에게는 항상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었다. ‘왜 자취하는 이들의 옷에서는 쿰쿰한 냄새가 자주 나는 것일까?’라는 개인적인 의구심이다. 당연히 직접 묻진 못했고, 자취를 하기 때문에 신경을 덜 쓸 수밖에 없어서 발생한 일이겠거니 추측할 뿐이었다. 하지만 자취 새내기가 된 지금, 드디어 그 답을 찾았다. 그것은 위치의 문제였다.

보통 대학생의 자취방을 떠올리면 원룸, 반지하 방, 고시텔 등이 연상되기 마련이다. 치솟는 집값 속에서 그나마 저렴하게 거처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장소들의 공통점은 해가 잘 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원룸이나 고시텔은 창문이 작아 충분한 햇빛이 들어오기 어렵고, 반지하 방은 햇빛은 고사하고 매일이 벌레와의 전쟁이다. 그렇기에 자취생의 빨래에서는 꿉꿉한 습기 냄새가 가시기 어렵다. 물론 필자는 오피스텔에서 자취하고 있지만, 본가에서 살 때와 비교하면 햇빛의 양에서 극명한 차이가 있다. 물론 의식적으로 햇빛을 쬘 여유가 없는 것도 이유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자취방에 건조기를 들일 순 없다. 그것은 거의 건조기를 모시고 사는 것과 다름없을 정도로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어이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빨래 냄새라고 하면 굉장히 사소한 문제처럼 느껴지지만, 이를 확장 시켜 생각해보면 ‘일조권’ 문제까지 이어질 수 있다. 일조권이란, 건물을 지을 때 건물에 일정량의 햇빛이 들도록 보장하는 권리이다. 사람이 식물도 아니고, 햇빛을 쬘 권리까지 법적으로 보장하고 있다는 게 하찮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햇빛의 중요성을 아는 이들은 일조권을 절대 가벼이 여길 수 없을 것이다. 햇빛이 주는 따스함은 우리의 신체를 건강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부분까지 돌봐주기 때문이다. 장마철에 많은 이들이 우울감을 호소하는 것도 햇빛의 영향이 크다. 이처럼 우리의 삶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햇빛이지만, 자취생의 일상과는 거리가 있다. 앞서 말했듯이 자취방의 위치 자체가 햇빛이 들어오기 어려운 곳에 있거나, 창문이 작아 충분한 양의 햇빛을 쐬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취생의 현실과 관련하여 경제적인 부분은 많이 조명되고 있지만, 일조권에 대한 부분은 비교적 관심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필자 역시 자취생이 되기 전까지는 생각조차 안 해봤기 때문이다. 물론 일조권 역시 경제적인 영향이 적진 않지만, 건축과 관련된 법적 문제가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아마도 이는 일조권 이야기를 꺼낼 틈이 없을 정도로 다른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주위에 자취하는 다른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먼지 알레르기가 있지만 이미 깔린 카펫 바닥을 들어낼 수 없어 그냥 참고 사는 친구, 월세를 내기 위해 휴학하고 알바비를 모으는 친구 등 각자마다 자취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갖고 있다. 몸을 뉘일 곳을 찾고, 그곳을 잃지 않는 것에 급급한 자취생에게 일조권이란 너무도 배부른 이야기로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의식적으로라도 햇빛을 쐬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보송하고 향기 나는 빨래는 어렵더라도, 우울하지 않은 건강한 자취 생활이 되길 바란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자취생의 일조권이 사회적으로 많이 조명돼야 할 것이다.

빨래 냄새에 숨겨진 자취생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게 된 필자는 빨래와 자취생의 연관관계를 다시 생각해보았다. 해가 없어 습기를 머금고 축 늘어진 빨래처럼, 돌봐주는 이가 없어 조금은 늘어진 자취생의 모습이 떠올랐다. 모든 자취생에게 작은 창문일지라도 빨래와 자신 모두에게 햇빛을 쬐어주라는 응원과 위로의 메시지를 보내며 글을 마무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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