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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 세대 대학생들의 주도성이 움트는 순간, 가르침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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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도성에 관한 논의가 한창이다. 한때 교육계를 휩쓸던 자기주도학습이라는 단어는 이미 진부한 클리셰가 되었고, 이제는 학생 한 명 한 명이 도전 정신을 바탕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하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해 주도성(agency)을 길러야 한다는 담론이 확산하고 있다. 대학가도 예외가 아니다. 창업 교육, 창업지원금, 자율전공 등 대학생들의 주도성 개발을 위한 다양한 제도와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이와 동시에 주도성을 강조하는 교육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비판론자들은 주도성 담론에서 강조하는 개인의 주체적인 선택과 책임(의식)이 허상에 불과하다고 지적하곤 한다. 개인의 선택이라는 것이 사실상 사회구조적인 요인에 의해 상당히 제한될 수밖에 없으며, 그러한 선택이 성공적인 결과를 빚어내기까지는 개인의 능력과 노력을 넘어서는 여러 환경적 변인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실상이 이러 할진대, 학생 개개인이 선택의 주체가 되고, 그러한 선택에 대한 책임을 학생 개인이 오롯이 감당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지 다시금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주도성을 둘러싼 이 같은 논쟁에 답하기 전에, 우리는 우선 주도성이라는 것이 단순한 삶의 전략이나 기술이 아닌 자아정체성을 포함하는 보다 총체적인 개념이라는 점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쉽게 말해, 자신을 이해하는 일과 자기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일이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 전자 없는 후자는 타당하지도 가능하지도 않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타인과의 관계와 상호작용이 한 개인의 정체성을 형성해가는 과정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나를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 관점, 태도, 행동이 내가 나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과정에 지속적으로 관여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는 모두 각자의 정체성을 구성해가는 여정에서 타인에 대한 모종의 인식론적, 윤리적 빚을 지게 된다. 자아정체성을 형성해가는 과정이 이와 같다면, 주도성을 기르는 과정에도 타인과의 관계와 상호작용이 깊이 관여한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대학생들의 주도성은 많은 부분 이들이 교수자와 만나는 수업을 통해 길러진다. ‘누군가(교수자)가 다른 누군가(학생)에게 무언가(교과)를 가르치는 것’을 수업이라고 한다면, 교과를 매개로 교수자와 학생이 서로에게 닿는 순간은 학생들의 정체성과 주도성이 변태하는 순간으로서 커다란 잠재성을 지닌다. 레비나스 의 관점에서 본다면 서로의 부름에 대한 응답의 순간이요, 반 매넌의 관점에서 본다면 교육적 접촉의 순간이다. 이와 반대로, 교과의 위상이 비대해지고, 교수자와 학생 간의 만남이 위축된 강의실에서는 이러한 순간을 마주하기 어렵다.

오늘 하루, 우리 대학의 강의실에서는 얼마나 많은 교수자와 학생들이 서로에게 닿아 있는가. 혹여 기성세대와 MZ 세대라는 프레임에 갇혀 서로에게 닿기를 포기하지는 않았는가. 요즘 기성세대는 똑똑한 MZ 세대를 가리켜 ‘손해란 것은 절대 보지 않고 야무지게 살아간다.’고 이야기한다. 개인의 권리와 워라벨(일과 여가의 균형)을 추구하며 원하는 대로 삶을 살아간다고 서슴 없이 칭찬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권리를 박탈당한 경험이나 죽도록 일해 본 경험이 있기는 하냐는 은근한 비난 혹은 푸념이 있기도 하다.

그런데 어쩌면 대학생들을 MZ 프레임에 가두고 타자화하는 데에는 오늘날 우리 사회가 직면한 여러 병폐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싶은 기성세 대의 속됨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똑똑한 너희들은 혼자서도 잘 할 수 있으니 (사실상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척박한 경쟁사회에서도 어떻게든 잘 살아남으리라는 무책임한 기대를 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금 생각해 볼 일이다. MZ 세대의 이러한 삶의 태도는 (권리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권리를 찾기 위해 분투하지 않으면 아 무도 자신의 권리를 찾아주지 않는 사회, (워라벨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일한 만큼의 정당한 대가가 주어지지 않아 여가 없이는 자신을 다독일 수 없는 사회를 애써 살아가며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오늘의 사회를 꿋꿋이 살아내고 있는 대학생들을 ‘MZ세대’라는 프레임으로 바라보기보다 그 프레임 안으로 들어가 보는 것은 어떨까. 수업이라는 시공간에서 교수자가 학생에게 닿는 순간, 학생 한 명 한 명이 더 나은 자신과 사회를 위한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교수자의 믿음과 가르침이 학생들에게 닿는 순간, 그리고 교수자의 그러한 용기 어린 부름에 학생들이 진심 어린 응답을 전하는 순간, 교수자와 학생들은 진정한 의미의 주도성을 획득하고, 주도적인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함께 만들어가게 될 것이다.

참된 교육자는 한 알의 씨앗을 보면서 새의 소리를 듣는다고 한다. 그 씨앗이 움터서 새싹을 틔우고, 왕성한 잎을 내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그 주변으로 몰려드는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를 누구보다 앞서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 강의실에서 만나는 학생들에 대한 교수자의 관심과 기대, 이들에게 전하는 지적 영감과 정서적 훈기는 학생들이 학업과 삶에 대한 주도성을 확장하도록 이끄는 가르침의 순간이다. 매끄러운 바람이 감도는 따뜻한 봄날, 우리 캠퍼스 곳곳에서 교수자와 학생이 서로에게 닿아 새의 지저귐을 함께 듣게 되는 교육적 순간을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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