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나는 내년 봄 벚꽃이 피지 않을까 걱정한다

우리는 기후 우울증을 앓고 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4월이 채 되기도 전에 벚꽃이 폈다. 1922년 관측을 시작한 이래 두 번째로 빠른 개화다. 1920년부터 1940년까지의 평균 기온보다 최근 30년 동안의 평균 기온이 1.6℃ 높았으며, 올해 전국 3월 평균 기온은 작년보다 1.4℃ 높은 9.1℃였다. *적산온도는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외에도 봄철 강수량이 감소하고, 일조시간이 증가했으며, 지난 2일(일)에는 인왕산에서 서울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한 산불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러한 극단적인 기후 변화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 2019년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호주 산불을 기억하는가? 170만 헥타르(㏊) 이상의 토지를 태워버린 캘리포니아 산불은 또 어떤가? 과학자들은 북극이 ‘죽음의 소용돌이’에 빠졌다고 말한다. 지난 2022년 봄, 북극은 평균 기온보다 30℃나 따뜻했다. 40년 만에 최악의 가뭄을 겪은 태국, 불타버린 남미의 판타나우 습지, 바닥을 드러낸 중국 최대 담수호까지. 이제 기후 위기는 우리 삶의 일부분이 됐다. 그렇기에 현세대는 언제 지구가 망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기후 위기와 함께 떠오른 기후 우울증, 그 안을 들여다보자.

 

 

[기후 우울증이란?]

2011년 등장한 기후 우울증이라는 개념은 현재 세계적으로 활발하게 사용되고 있다. 그렇다면 기후 우울증이란 무엇일까? 이 개념을 처음 접한 경우 날씨에 따라 기분이 좌우되는 현상을 가리킨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 4월 3일(월)부터 6일(목)까지 4일간 만 39세 미만 15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기후 우울증에 대해 알고 계신가요?’라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 74% (111명)이 들어본 적 없다고 응답했다.

’기후 우울증(Climate Depression)’이란, 기후 위기가 자신과 가족·친구·친지를 비롯해 국가와 인류에게도 위기를 가져올 것이라는 생각으로 불안과 우울감 등을 느끼는 것이다. 이는 우울감 같은 감정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낮은 확신, 그로 인한 생활방식과 진로의 변화 등까지 포함한다.

기후 우울증이란 개념이 생소한 우리에게는 이것이 실제로 존재하는 현상인지에 대한 의문이 생기기 마련이다. 기후 우울증은 환경 변화를 가까이에서, 직접적으로 경험하는 농부, 과학자, 원주민들이 쉽게 겪는다. 환경 변화에 관해 연구하고 그에 따른 영향에 집중하며 그 자체를 마주하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는 청년과 청소년도 폭염, 집중호우, 가뭄 등의 이상 기상 현상을 겪으며 기후 변화를 실제로 체감하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표하고 있다. 기후 불안으로 우울을 겪은 대표적인 인물로 스웨덴의 기후운동가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가 있다. 툰베리는 기후변화 문제의 심각성을 알면서도 반응 없는 사회를 지켜보며 우울감을 느끼고 두 달 사이 몸무게가 10kg 빠지는 등의 증상을 보였다. 이후 툰베리는 자폐성 장애의 일종인 아스퍼거 증후군을 진단받았다. 이런 툰베리의 증상을 전적으로 기후 변화로만 설명할 순 없지만, 실제 기후와 건강 사이의 연관성을 통해 기후 우울증의 증상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의학 정보 사이트 ‘업투데이트(Uptodate)’에 11월 게재된 ‘직업 및 환경 보건 개요(Overview of occupational and environmental health)’는 “기후 변화는 건강에 큰 영향을 미치며 그 영향력은 증가하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또한, 모나쉬(Monash University)*·*디킨(Deakin University) 대학교가 공동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9~2020년 최악의 산불로 진통을 겪은 호주 국민의 약 66.7%가 ‘기후 변화에 대해 심각하게 걱정된다.’라고 밝혔다. 이는 코로나19, 고용, 건강에 대한 우려보다 월등하게 높은 수치이며 ‘기후 변화’를 삶의 가장 큰 불안 요소로 여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난해 12월 23일(금) 미국 인터넷 매체 ‘버즈피드(BuzzFeed)’의 ‘기후변화로 불안한 당신에게 전문가들이 말하는 대처방법’ 기사는 기후 우울증 증상에 관해 언급했으며, ‘한국리서치’의 2019년 조사에선 기후 변화로 인한 이상 기후 현상으로 건강에 악영향을 받고 있다는 응답이 75%가 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국내 한 환경 단체 소속 활동가인 직장인 A씨는 “빙하가 녹아 삶의 터전을 잃어 죽음을 맞이하는 새끼 북극곰들의 개체가 늘었다는 기사를 보며 죄책감을 느꼈고, 우울한 감정에서 쉽사리 벗어나지 못해 정신건강의학과 상담을 받았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개인 차원에서도 기후 위기의 영향을 느끼고 있으며 우리 주변에서 기후 우울증 증상이 쉽게 발견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해 6월 3일(금) 브리핑에서 “기후변화는 정신건강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라고 선언했다. 또한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는 지난 1월 4일(수) 정부가 기후 위기 상황에서 인권 보호·증진을 기본 의무로 인식하고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이처럼 국외뿐만 아닌 국내에서도 기후 위기와 그로 인한 영향에 집중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청년들의 일상에 스며든 기후 우울증]

앞서 살펴본 기후 우울증은 청년 세대에게 더욱 큰 문제로 다가온다. 실제로 2021년 4월 재활용 전문 업체 ‘세븐스 제너레이션(Seventh Generation)’이 영국의 여론조사업체 ‘원폴(OnePoll)’에 의뢰해 미국인 2,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응답자의 59%가 기후 위기가 정신건강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대답했다. 이 응답률은 젊은 세대일수록 높은 양상을 보였는데, 만 24~39세 응답자의 71%가 기후 위기로 정신건강이 나빠졌다고 응답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만 18~23세 응답자의 75%가 기후 위기 때문에 아이를 갖지 않겠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청년들은 기후 우울증을 겪으며 미래 세대가 극심한 기상이변과 기후 위기를 겪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과 더불어, 아이를 낳지 않음으로써 지구온난화를 막으려 한다. 실제로 미국의 투자은행 ‘모건 스탠리(Morgan Stanley)’가 지난 2021년 7월 투자자들에게 보낸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기후 변화에 대한 두려움으로 아이를 낳지 않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으며 이는 실제 출산율 저하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또한, 지난 2021년 9월 영국 배스대학교(University of Bath)를 포함한 6개 대학이 10개국의 만 16~25세 청년 1만 명을 대상으로 공동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의 45% 이상이 기후변화에 대한 걱정이 일상생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답했다. 또한 응답자 중 84%가 기후변화에 대해 걱정하고 있으며 특히 60%는 극도로 걱정하고 있다고 답했다.

앞서 제시된 본지의 설문 조사에서도 기후 변화 또는 기후 위기를 체감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매우 그렇다’라고 응답한 비율이 38%(57명), ‘그렇다’라고 응답한 비율이 50.7%(76명)으로 전체 응답자의 88.7%(133명)를 차지했다. 기후 변화를 체감하게 된 계기를 묻는 질문에(중복응답 가능) ‘폭염, 집중호우 등 이상 기상 현상’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77.7%(108명)로 가장 많았고, ‘이른 개화 시기(61.2%, 85명)’와 ‘대기 오염(44.6%, 62명)’이 뒤를 이었다. 이처럼 응답자의 과반수가 기후 위기를 인식하고 체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기후 변화에 대해 걱정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매우 그렇다(48명)’ 또는 ‘그렇다(73명)’라고 답한 비율이 전체 응답자의 80.7%로 나타났다. 나아가 기후 변화에 대한 걱정이 일상생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느냐는 질문에 ‘매우 그렇다(15명)’ 또는 ‘그렇다(40명)’라고 답한 비율이 전체 응답자의 36.7%로 나타났다. 기후 위기에 대한 걱정이 일상까지 침범한다고 답한 약 40%의 비율은 결코 적지 않은 숫자이다. 설문에 참여한 대학생 B는 “갈수록 기후 위기에 대해 더욱 체감하면서 무서울 때가 있는데, 학생 개인의 위치에서 실질적인 해결을 돕지 못한다는 무력감 때문에 우울감이 느껴지는 것 같다.”라고 답했다. 다른 설문 참여자 C 씨는 “극심한 기후 변화를 뉴스를 통해 접하고, 직접 두 눈으로 보면서 머지않아 큰일이 날지도 모르겠다는 걱정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기후 우울증은 환경 운동가뿐만 아니라,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누구에게나 조금씩은 스며드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청년 세대는 기후 변화를 실제로 경험하고, 기성세대에 비해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체감하기 쉽다. 기후 우울증은 앞으로 살아갈 날이 많은 젊은 세대에게 더욱 예민하게 받아들여진다.

 

[기후 우울증, 이겨낼 수 있을까?]

마음의 병, 우울증은 더 이상 숨기고, 혼자서 해결해야 하는 우울한 감정 정도로 여겨지지 않는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우울증을 치료받는 시대가 왔다. 그렇다면 지난 2017년 미국심리학회에서 ‘우울장애’로 정의한 기후 우울증 또한 치료할 수 있지 않을까? 지난 2022년 6월 3일(금) WHO는 기후 변화가 정신 건강과 웰빙(well-being)에 위협이 되며, 이는 병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고 밝혔다. 이어 기후 변화에 대응할 정신 건강 지원 체계의 구축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기후 우울증을 극복하는 방법을 알아보기 위해 기후 변화에 대항하여 행동하고 있는 ‘기후변화청년단체 GEYK’의 활동가 D와 E를 만나봤다.

 

 

Q. 극심한 기후 변화에 따른 기후 우울증을 느끼는지, 또 언제 이를 실감하는지 궁금하다.

D. 기후위기 분야에 대해 관심을 갖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기후우울증을 겪고 있는, 혹은 겪었던 사람들은 많이 만났다. 그들은 직장에서도 무기력해지고, 작은 일상생활, 삶을 영위하기 위한 기초적인 욕구와 행동에도 의욕을 잃고 자기돌봄이 완전히 망가진 모습이었다. 그러나 ‘일상’에서는 기후 위기라는 주제를 꺼내기도 어려울 만큼, 환경에 관심 있는 사람이 없고, 당연히 기후 우울증을 겪는 사람도 없다. 그래서 놀랍게도 평소에는 기후 우울증에 대해 실감할 일은커녕, 마치 기후 위기가 없는 것 같은 세상을 살고 있다.

E. GEYK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며, 특히 정책 결정에 참여하거나, 정부 및 기관의 정책적 결정에 대응할 때 큰 우울감을 맛보곤 한다. 목도한 위기를 외면하고 펼쳐지는 미온한 정책에 대항하여 목소리를 높여봐도, 무언가 유의미한 결과를 얻지 못할 때 ‘내가 뭘 하고 있나.’하는 우울감이 찾아온다.

 

Q. 기후 우울증을 예방 혹은 극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가.

D. 내가 기여할 수 있는 분야, 내가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시간을 투자할 수 있는 영역에만 집중한다. 타인이 아닌 오직 본인이 할 수 있는 역할을 찾아서 열중하는 것이다. 또한, 혼자 힘들어하지 말고 이 주제를 말할 수 있는 친구, 동료를 찾아서 생각과 고민을 털어놓기만 해도 많은 부분이 해소될 것이다.

E. 잠시 GEYK 활동과 거리를 두곤 한다. 본업이나 학업에 집중하고, 스스로의 시간을 보내며 육체적 재충전의 시간도 갖고, 우울감과 무력감이 찾아오게 하는 대상을 구체화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일상과의 균형을 지켜가며 ‘지속가능한 기후 변화 대응’을 지향하고자 한다. 단순히 ‘기후 변화’에 대해 우울감을 갖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는 문제가 되기에, 무력감과 우울감을 느끼는 원인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Q. 기후 우울증을 막기 위해 어떤 사회적인 대안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D. 우선 기후 위기에 대한 사회적 공감이 전제돼야 한다. 기후 위기를 우리 모두의 문제라고 인식하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에서는 기후우울증이 인정되지도 않을뿐더러, 당연히 막으려는 노력도 하지 않을 것이다. 문제를 있는 그대로를 직시하고 상황을 인정하는 과정이 선행돼야 한다. 그런 다음에는 이 주제를 공론화하고, 토론하고, 소통할 수 있는 장이 많이 마련돼야 한다. 기후 위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하는 소규모 공동체 지원이 지자체 차원에서 늘어난다면 좋을 것이다.

E. 사회가 기후우울증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기후 우울증’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기후우울증에 대한 과학적 근거와 목소리를 한데 모아 기후 우울증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 우리 사회가 기후 우울에 대한 해결을 모색하는 첫 걸음이 될 것이다. 더 나아가 기후 변화의 해결을 위해 효능감을 느낄 수 있는 행위들이 많아지는 것이 다음 걸음정도가 될 것이다.

 

기후 위기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위로를 전하는 웹툰 <기후위기인간>의 구희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모든 것이 기후 위기와 연결돼있다는 사실을 저처럼 미래에 불안을 느끼는 사람, 우울을 느끼는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괴로움을 느끼는 게 정상이라고.” 또한 그녀는 이념이나 윤리를 위해 <기후위기인간>을 연재한 것이 아니라며 “무사히 할머니가 되고 싶어서, 지구에 해를 덜 끼치고 싶어서, ‘잘’ 살고 싶어서 그렸습니다. 그리고 저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서 그렸습니다.”라고 전했다. 기후 우울증은 혼자 앓는, 또 혼자 이겨내야 하는 문제가 아니다. 기후 변화를 끊어내기 위한 삶의 작은 변화와 연대가 내일의 긍정적인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길 바란다.

 

 

*적산온도: 작물의 발아로부터 성숙에 이르기까지의 0℃ 이상의 일평균기온을 합산한 것

SNS 기사보내기

저작권자 © 홍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최신기사

하단영역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