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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비행은 끝나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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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작가 생 텍쥐페리(Antoine-Marie-Roger de Saint-Exupéry, 1900~1944)의 『야간비행』은 남아메리카에서 우편 수송을 위해 야간비행이 시작된 초창기를 배경으로 한 단편소설로, 작가 본인이 아르헨티나 항공에 근무하던 시절의 경험을 토대로 썼다. 각각 칠레, 파라과이, 파타고니아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돌아오는 세 대의 우편기 중 파타고니아에서 출발한 조종사 파비앙은 거대한 태풍에 말려든다. 그는 무전 교신도 끊긴 채 어둠 속에서 방향을 잃고 추락할 위기에 처한다. 파비앙은 태풍 위로 솟아올라 간신히 태풍 영향권 밖으로 벗어난다. 하지만 이내 그는 휘발유가 다 떨어져 가고 있음을, 자신은 추락하게 될 것임을 깨닫는다. 파비앙은 결국 하늘에서 실종된다. 직업정신이 투철한 우편국장 리비에르는 이런 상황에도 그나마 돌아올 가능성이 높은 파라과이 우편기가 도착하는 즉시 유럽행 우편기를 출발시키라는 지시를 내린다. 그런 리비에르도 냉혹한 지시를 내리는 동시에 이런 의문을 던진다. “인간의 생명을 값으로 따질 수 없다 한들 우리는 언제나 인간의 생명을 넘어서는 가치 있는 무언가가 있는 듯이 행동하지요... 그런데 그게 무엇일까요?” 자본주의 세상 속 배, 기차와의 수송 경쟁으로 인해 항상 위험천만한 야간비행에 나서야 하는 조종사들. 그리고 누군가를 야간비행으로 잃더라도 다음 야간비행을 지시해야 하는 책임자를 통해 작가는 리비에르의 의문을 독자에게 제기한다. 사회의 ‘대의’를 위해 개인은 파편이 되어도 상관없는가? 그 파편은 다른 사람으로 완전히 대체될 수 있는가? 만약 인간의 생명보다 중요한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은 어떤 것인가?

철학자 호르크하이머(Max Horkheimer, 1895~1973)와 아도르노(Theodor Wiesengrund Adorno, 1903~1969)를 비롯한 프랑크푸르트 학파 철학자들은 “왜 인류는 인간다운 상태에 진입하지 못하고 새로운 종류의 야만으로 전락하고 말았는가?”라고 질문했다. 그리고 “완전히 계몽된 지구는 큼직한 재앙의 흔적만을 발산하고 있다.”라며 ‘계몽의 자기파괴’라는 역설적인 상황을 지적했다. 인간의 ‘도구적 이성’과 ‘과학에 대한 믿음’은 우리를 번영으로 이끌 거라고 모두가 예상했지만, 그 속엔 인간의 존재 의미 상실 또한 존재한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한편 실존철학자들은 현대인의 질병 두 가지를 지적했다. 첫 번째는 무실존의 병이다. 말 그대로 인간이 자신의 실존을 잃어버린 채 일상의 굴레 속에서 살아간다는 의미다. 두 번째는 무자각의 병으로, 실존적 의미가 퇴색되면서 인간 각자의 고유성과 개별성은 사라졌다. 이에 따라 우리는 언제든지 다른 것으로 대체될 수 있는 도구로 전락했다. 마치 『야간비행』 속 우편국에서 일하는 조종사들과 직원들처럼 말이다. 실종된 파비앙의 자리엔 새로운 조종사가 비행을 시작할 것이고, 리비에르가 해고한 정비사 로블레도 다른 사람으로 대체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리비에르도 더 이상 우편국장이 아닌 날이 올 테다. 

사실 이렇게 누군가가 다른 사람으로 대체되는 건 우리에게 오히려 당연한 일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어느 조직이든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마비될 테니까. 하지만 리비에르의 의문은 발목을 붙잡고, 프랑크푸르트 학파 철학자들의 고심은 하려던 말을 멈추게 하며, 실존철학자들의 지적은 바쁘게 움직이던 손을 내려놓도록 만든다. 결국 우리는 이들과 같은 의문에 직면한다. “인간은, 우리는 아무런 특징 없이 대체될 수 있는 부품일 뿐인가?” 빈자리에 다른 사람을 넣지 않으면 세상이 멈춰버린다는 생각으로 살아가지만, 그 속의 ‘나’는 어디로 사라졌는가. 어쩌면 우리는 파비앙과 리비에르처럼, 날마다 야간비행 하는 것처럼 살아가는 건 아닐까. 세상은 마치 암흑 속 태풍처럼 우리를 추락으로 등 떠민다. 다칠 것이 뻔한 태풍 속 야간비행 중인 우리는 스스로이기에도 벅차다. 파비앙처럼 태풍을 이기고 오로지 자신으로서 존재하려 했던 사람들은 별의 세계로 떠나버렸다. 

지난 1일(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 건설노동조합 강원지부 지대장 양회동 씨가 춘천지방법원 강릉지원 앞에서 분신해 2일(화) 결국 사망했다. 민주노총 측이 공개한 유서 형식의 편지에서는 “죄 없이 정당하게 노조 활동을 했는데 혐의가 업무방해 및 공갈이랍니다. 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네요.”라며 검찰의 기소에 대한 억울함을 호소했다. 양 씨는 같은 날 오후 3시에 영장실질심사(피의자 심문)를 받을 예정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한 명의 조종사가 별의 세계로 떠났다. 하지만 야간비행은 끝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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