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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이나 튀기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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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의 꽃말은 중간고사라는 말처럼, 날이 따스해지기 무섭게 시험 기간이 찾아왔다. 포근한 봄에 취해 붕붕 떠다니는 기분을 다잡지 않으면, 학기 말에 학점을 회복하기 위해 허덕여야 한다. 그리고 이는 대학생뿐 아니라 중고등학생에게도 적용되는 일이다. 학원에서 중고등학생을 가르치고 있는 기자는 ‘나는 허덕이더라도 너희는 잘 봐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들의 중간고사를 챙기며 아주 정신없는 나날을 보냈다. 그러던 와중, 고등학교 1학년 제자가 “이번 시험 망치면 치킨이나 튀기려고요.”라며 한숨 가득한 말을 건네왔다. 처음에 들었을 때는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가 귀엽기도 하고, 그런 말 할 시간에 한 자라도 더 보라는 다소 꽉 막힌 충고를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 계속 귓가에 맴도는 그 말이 곱씹을수록 씁쓸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한창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하는 17살 학생이 아직 보지도 않은 시험을 망칠까 봐 전전긍긍하는 것도, 대학 진학 아니면 치킨 장사를 하겠다는 편협한 시야를 갖게 된 것도 전부 쓰게 느껴졌다.

기자 역시 질풍노도의 고등학교 1학년 시기를 보냈기 때문에, 헛웃음 치며 듣고 흘릴 수 있는 학생의 그 말이 유독 신경 쓰이는지도 모르겠다. 그때의 기자에게 새로운 마음으로 입학한 고등학교는 전문 교육기관이 아닌 ‘대입’이라는 공동의 목표로 뭉친 집단처럼 느껴졌다. 학생은 학교에서 교과목에 대한 지식뿐만 아니라, 또래 집단과 관계 맺는 방법 등 사회구성원의 역할을 무리 없이 수행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그것이 바로 학원과 학교의 근본적인 차이이며, 자퇴를 고민하던 17살의 기자가 스스로를 붙잡으며 학교에 남아있던 이유이기도 하다. 21살이 된 현재의 기자의 눈으로 보면, ‘뭐가 그렇게 힘들었을까?’라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그때의 기자에게는 분명 일생일대의 고민이었으며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일상이 버거웠을 것이다. 방황하던 기자는 “그냥 공부나 해라.”라는 식의 말을 건네는 주위 어른들이 답답했고, ‘나는 어른이 되면 절대 저런 말을 건네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기자는 제자의 말에 어떻게 반응했던가. “치킨이나 튀기겠다.”라는 말의 속뜻은 사실 막막한 앞길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도움을 구하는 말일 수도 있는데, 철모르는 어린애 투정처럼 취급한 것 같다는 생각이 스쳐 갔다. 17살의 기자에게 정신 차리라는 식의 말을 건넸던 어른들과 같은 사람이 된 것 같아 ‘아차’ 싶기도 했다.

사실 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양가적인 생각이 드는 경우가 많다. 에너지 음료를 두세 개씩 쏟아부으며 공부하는 모습이 안쓰러워, 말리고 싶은 마음이 들다가도 숙제를 해 오지 않거나 불성실하게 수업에 임하는 모습에는 정신 차리라는 뾰족한 말을 내뱉게 된다. 정신 차리고 공부하라고 녹음기를 틀어놓은 것처럼 거듭 얘기하다가도 “왜 대학에 가야 하냐?”라는 근본적인 질문에는 종종 말문이 턱 막히기도 한다. 2학년인 기자는 아직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기에 확신을 갖고 대답할 순 없지만, 이유도 모르면서 공부하라는 말만 거듭하는 앵무새가 된 것 같은 민망한 마음을 지우긴 어렵다. 평소에도 학생들을 가르치며 은연중에 떠오르던 생각이었는데, 치킨이나 튀기겠다는 말이 촉발제가 되어 진지한 고민으로 이어졌다. 17살의 기자처럼, 앞날에 대한 고민을 갖고 있는 학생에게 어떤 말을 건넬 수 있을까.

한창 진로 고민으로 머리가 복잡할 때, 친언니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던 게 기억난다. “왜 대학을 가야 하냐?”라는 다소 치기 어린 말에 지극히 현실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다양한 유형의 인간을 만나고, ‘대학생’이라는 신분 아래 비교적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다는 답이었다. 으레 수험생에게 건네는 “대학생 되면 모든 다 할 수 있다.” 혹은 “힘내라.” 등의 희망찬 말이 아닌 다소 무심한 대답이었지만 웃기게도 위로가 됐다. 거창한 게 되려고 공부하는 것이 아니란 걸 새삼 곱씹게 됐기 때문인 듯하다. 어쩌면 기자도 치킨이나 튀기겠다는 제자에게 거창하기보단 담담한 대답을 건네는 게 좋지 않을까. “너 지금 불안하구나.”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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