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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삶과 사랑의 발음이 비슷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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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병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기도 한다. 그 끝까지 가는 과정도 고통의 연속이다. 오랜 투병 생활은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 친구 같은 주변인 모두를 지치게 한다. 하지만 그런데도 삶은 이어지며 우리는 계속 살아가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다음 소개할 세 가지 영화는 관객들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병이라는 인생의 고난을 겪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살아간다. 그들의 인생을 담은 세 영화, <미드나잇 선(Midnight Sun)>(2018), <내 머리속의 지우개>(2004), <사랑에 대한 모든 것(The Theory of Everything)>(2014)을 소개한다.

 

[누군가와 함께 산다는 것]

햇빛에 노출되면 피부장애를 일으키는 ‘색소성건피증(XP)’이라는 희귀병을 가진 ‘케이티’는 평생을 특수유리가 설치된 집 안에서 살아왔다. 교장선생님이자 담임선생님이고, 스페인어 선생님이자 체육선생님인 아빠와 둘이 사는 케이티는 10여년간 창문 밖으로 바라봤던 동네 소년 ‘찰리’를 남몰래 짝사랑하고 있다. 학교를 졸업할 나이가 된 케이티에게 그녀의 아빠는 돌아가신 엄마의 기타를 선물하고, 케이티는 엄마의 기타를 들고 한밤중 기차역에서 버스킹을 한다. 버스킹을 하던 중 우연히 찰리와 마주치게 된 케이티는 당황한 나머지 급하게 자리를 피하느라 공책을 기차역에 두고 오게 되고, 그것을 주운 찰리가 케이티에게 공책을 돌려주면서 둘은 빠르게 가까워진다.

케이티는 어느새 찰리와 사랑하는 사이가 되지만 자신의 병을 그에게 알리지 않는다. 다만, ‘병균’이 아닌 ‘사람’으로 대해지고 싶은 마음에 하루 이틀 미루게 된 비밀이 그녀가 절대 원하지도 예상하지도 못했던 방식으로 찰리에게 전해질 줄은 몰랐을 것이다. 영화의 후반부, 인물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케이티와의 이별을 준비한다. 어쩌면 찰리가 케이티의 인생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그녀는 더 오래 살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군가와 함께한다는 것은 최고의 행복이다.”라는 그녀의 말처럼, 케이티는 찰리와 함께하는 삶을 선택했기에 마지막까지 웃으며 눈을 감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찰리와 요트 위에서 쏟아지는 햇빛을 만끽하는 케이티의 얼굴에 번지는 미소가 이를 말해주고 있다.

 

[당신의 기억과 마음이 되어]

평소 건망증이 심해서 고민인 ‘수진’은 편의점에서 콜라를 사지만 그대로 계산대에 둔 채 밖으로 나온다. 다시 돌아간 편의점에서 콜라를 들고 있는 ‘철수’와 마주치게 되고, 철수가 자신의 콜라를 가져간다고 생각한 수진은 철수의 콜라를 빼앗아 단숨에 마셔버린다. 버스를 타려던 수진은 편의점에 지갑을 두고 온 것을 알게 돼 다시 편의점으로 돌아가고 알바생은 계산대에 수진의 지갑과 콜라를 올려둔다. 그제서야 오해인 줄 알았지만 철수는 이미 떠나고 없다. 이후 둘은 우연히 수진의 아버지가 관리하는 건설 현장에서 만나게 되고 여느 로맨스 영화처럼 자연스레 사랑을 시작한다. 서로 웃기도 울기도 하며 우여곡절 끝에 행복한 결혼 생활을 보내던 와중, 수진은 27살의 나이에 자신이 알츠하이머에 걸린 것을 알게 된다.

알츠하이머는 보통 나이 든 사람들이 걸리는 병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그러나 <내 머리속의 지우개>는 젊은 나이의 수진이 알츠하이머에 걸린다는 다소 새로운 설정을 채택했다. 영화는 후반부 내내 기억을 잃어가는 수진의 혼란과 슬픔, 그리고 그 주변인의 고통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가장 최근의 기억부터 사라지기에, 철수를 잊어버린 수진은 집으로 찾아온 안 좋게 끝난 자신의 옛 애인 ‘영민’을 환하게 웃으며 반긴다. 철수의 눈을 바라보며 그를 ‘영민’이라 부르고 사랑을 말한다. 철수는 그런 수진의 말을 고쳐주지 않는다. 철수가 기억을 잃어가는 수진을 사랑하는 모습은 영화이기에 가능한 거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종종 영화에서 병은 극적인 상황 연출을 위해 사용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지난 2019년 치매에 걸린 아내를 위해 남편이 국내 최고령 요양보호사가 됐다는 기사가 올라왔다. 또 암에 걸린 아내를 마지막 순간까지 보살피는 남편의 모습을 담은 다큐가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어쩌면 ‘현실이 더 영화’라는 말은 이때 필요한 것이 아닐까.

 

[영원하지 않다 하더라도]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스티븐’은 신년 파티에서 중세 시문학을 전공하는 ‘제인’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학과 내에서 촉망받는 학생이었고 제인과 함께하는 나날도 행복했기에 모든 게 순탄할 것만 같던 스티븐의 인생은 그가 학교 정원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진 날을 기점으로 180도 변한다. ‘루게릭병’ 진단과 시한부 2년 선고를 받은 스티븐은 절망하며 모든 것을 포기하고 제인을 밀어낸다. 하지만 제인은 이에 굴하지 않고 스티븐에게 다가가며 마침내 둘은 결혼하게 된다.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은 ‘루게릭병’을 앓은 세계적인 과학자 스티븐 호킹의 일생을 다룬 영화다. 근위축성측생경화증이라고도 불리는 루게릭병은 운동신경세포만 선택적으로 사멸하여 결국 모든 운동신경을 잃게 되는 병이다. 하지만 뇌에는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기에 루게릭병은 몸이라는 감옥에 갇혀버리는 병이라고도 한다. 그런데도 스티븐 호킹이 물리학계에 한 획은 그은 과학자이자 세 아이의 아버지가 될 수 있었던 이유로 제인을 빼놓을 순 없을 것이다. 제인이 스티븐의 병을 알고도 그를 떠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제인도 물론 스티븐과 함께하는 인생이 순탄치 못할 것임을 잘 알고 있었을 거다. 영화 속 사랑이라 치부하기엔 스티븐과 제인 둘 다 실존인물이고 이들의 이야기 또한 사실이다. 비록 스티븐과 제인이 함께하는 삶은 둘이 이혼하게 되면서 끝이 나지만 둘의 사랑했던 과거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영화는 스티븐과 제인의 첫만남을 추억하며 끝이 난다. 영화 속 둘의 이야기가 더욱 아름다워 보이는 건 이 이야기가 모두 실재했기 때문이 아닐까.

 

케이티에게 평생 동안 넘치는 사랑을 쏟아낸 아버지와 그녀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준 찰리, 자신을 잊은 수진의 기억과 마음이 되어줄 거라 약속한 철수, 병에 굴하지 않고 스티븐과 오랫동안 사랑을 나누고 화목한 가정을 꾸린 제인. 이들의 삶엔 언제나 사랑이 자리하고 있다. 사랑으로 병을 극복할 순 없겠지만, 그들에게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한다. 영화는 그들이 어떻게 병을 이겨내는지가 아닌, 어떻게 사랑을 하는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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