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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관, 순간을 기록하는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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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신원확인을 위해, 혹은 특별한 날을 기념하기 위해 사진을 남긴다. 여권 사진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다시 갱신해야 하는 것처럼, 시간이 흐름에 따라 사람의 외관은 조금씩 달라진다. 그래서 다신 돌아오지 않을 순간의 모습을 그대로 남긴다는 건 때론 일기보다 대단한 역사적 기록이 된다. 요즘은 기술의 발전 덕에 사진을 통해 일상을, 또 순간을 쉽게 기록할 수 있는 세상이 됐고, 사람들이 자신과 주변의 모습을 기록하고 싶어하는 마음을 충족시키기가 쉬워졌다. 본 기사에서는 그런 모습들을 살펴보기 위해 사람들이 자신의 외면을 기록하는 곳, 사진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그림으로 모습을 기록하던 선조들]

▲국보 제240호로 지정된 윤두서 자화상/출처: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국보 제240호로 지정된 윤두서 자화상/출처: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아직 사진술이 도입되지 않았던 과거, 우리 선조들의 사진관은 먹과 붓 앞이었다. 사진관이 없던 시절엔 그림을 그려 그 모습을 남겼다. 덕분에 나라에 큰 공을 세운 이의 모습을 남기는 공신도, 귀족 가문 세력층을 그린 그림, 왕의 모습인 어진 등을 통해 다양한 인물의 모습이 그림으로 남아있다.

다만 초상화나 자화상과 같은 그림은 실제 모습을 종이 위에 모방한 것이기에 실제와 완전히 똑같지 않고, 원하는 대로 그리는 것이 가능하다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풍채를 부각하거나 화려한 옷을 통해 그 위신을 표현하는 등 그림으로 부각하고 싶은 부분을 강조하기도 했다. 현재의 사진 보정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그 예로, 조선시대의 선비이자 화가였던 윤두서의 자화상을 들 수 있다. 국보 240호로 지정돼있는 이 자화상은 얼굴을 살짝 옆으로 돌려서 그렸던 당시 초상화들과는 구별되게 얼굴을 종이에 정면으로 배치했다. 얼굴의 크기 역시 크게 하고 정밀하게 표현해 대범하고 강렬한 기세가 느껴진다는 평을 받는다.

 

[우리나라 최초, 천연당 사진관]

▲해강(海岡) 김규진의 모습/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한국 역대 서화가 사전
▲해강(海岡) 김규진의 모습/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한국 역대 서화가 사전

외국에서 발명된 사진 기술이 전파된 이후, 우리나라에서도 사진기를 이용해 사람들의 모습을 찍고 기록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우리나라에도 돈을 받고 사진을 찍어주는 사진관이 등장했는데, 바로 천연당 사진관이다. 1907년 8월에 발간된 『대한매일신보』를 살펴보면 사진관이 개업했다는 소식을 알리는 광고를 볼 수가 있다. 천연당 사진관은 일본에서 약 1년 동안 사진 기술을 공부하고 돌아온 서화가 김규진이 본인의 집에 차린 사진관이다. 원래 김규진은 일본에서 배워온 사진술을 궁중(宮中)에서 활용했었는데, 이를 대중에게 선보인 것이다. 천연당 사진관은 한 달에 약 천 명의 손님이 다녀갔을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고 하며, 각종 사료에는 외상 손님이 많아 곤란해하는 모습도 담겨있다. 이런 자료는 돈이나 신분과는 별개로 자기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욕구를 잘 보여준다.

천연당 사진관은 졸업이나 결혼, 기록용 사진 등 대중들도 사진이 필요할 때 사진을 남길 수 있도록 해줬다. 또, 처음으로 여성만을 전문으로 촬영하는 사진사 제도를 도입했다. 그래서 당시 활동에 사회적인 제약이 많았던 여성의 권리를 신장하는 데 기여했고, 이후엔 사진관 규모를 확장해 해강 서화연구회를 설립하고 그 곳에서 사진술을 교육하기도 했다. 이처럼 김규진이 설립한 천연당 사진관은 사진술의 보급과 대중화의 시작을 열었다는 데에 큰 의미가 있다.

 

[날(日) 기록하기 위해]

사진 기술이 대중화된 이후, 동네마다 하나둘 사진관이 생겨나고 증명사진뿐만 아니라 가족 기념일, 연인과의 기념일, 친구의 생일 등 특별한 날을 기념하기 위해 더 많은 이들이 사진관을 찾기 시작했다. “미리 영정 사진을 찍어두면 더 오래 살아요.”라는 말도 사람들을 사진관으로 향하게 했다. 또, 사진관에서 사진사가 출장을 나와 결혼식과 같은 특별한 날의 모습을 남겨주기도 하고, 각 학교의 마지막 학년을 보내는 학생들의 모습을 찍어 사진관에서 졸업앨범을 만들어줬다.

최근에는 본인의 예쁘고 특별한 모습을 남기고 싶어 하는 젊은 세대층의 수요로, 원래는 연예인들이 프로필용으로 촬영하는 이미지 사진을 일반인 대상으로도 많이 촬영하는 추세다. 온라인에서 입소문을 탄 유명한 사진관은 몇 주 전이어도 예약하기가 힘들고, 사람들은 연예인 콘서트를 ‘티켓팅’하듯 사진관을 예약하기도 한다. 심지어 예약에 성공한 사람이 원래 가격보다 높은 값을 받고 사진관 예약에 실패한 사람에게 예약을 양도하는 경우도 있다. 기록하고 싶은 날, 특별한 날의 순간을 남기려는 사람들의 열정은 그만큼 크다.

 

[사진사 없는 사진관, 무인 즉석 사진 부스]

▲인생네컷 매장 내부
▲인생네컷 매장 내부/출처(오른쪽): '인생네컷' 공식 홈페이지

사진관에는 원래 전문 사진사가 있는 게 당연했다. 그러나 △핸드폰의 보급 △사진을 취미로 삼는 이들의 증가 △개인 카메라 발달 등의 영향으로 사진 촬영은 더욱 대중적인 것으로 변모했다. 물론 전문 사진관에서 찍는 사진만의 좋은 질과 그만의 분위기가 분명히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사진관에서 비싼 값을 내지 않아도 충분히 원하는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됐다. 그 영향인지 저렴하고 빠르게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무인 사진관 역시 꾸준히 진화하며 성행하는 모습을 보인다.

초창기 대표적인 무인 즉석 사진 부스는 바로 ‘그 시절 감성’이 담긴 스티커 사진 기계다. 1995년, 일본의 게임 제작회사 아틀러스(ATLUS)가 출시한 스티커 사진 기계 ‘Print Club’이 유행을 탄 것을 계기로 한국으로 건너 들어온 스티커 사진은 90년대 말에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당시 디지털 카메라도 없었고, 사진관에 가야만 사진을 인화할 수 있었기 때문에 즉석에서 사진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큰 장점이었다. 게다가 부스 안에 있는 펜을 이용해 촬영한 사진에 글씨를 쓰거나 스티커를 붙이는 등 원하는 대로 사진을 꾸민 후 인화할 수 있다는 것도 큰 재미를 자극하는 요인이었다. 사람들은 연인끼리, 친구들끼리 찍은 스티커 사진을 나눠 가지고 지갑이나 휴대용 통신기기에 붙이고 다녔다. 사진을 활용한 하나의 추억이자 놀이 문화로 기능한 것이다.

이후 2017년 ‘인생네컷’이라는 사진 부스를 시작으로, 2020년대 무인 사진 부스의 커다란 붐이 불었다. 그리 비싸지 않은 가격으로 다양한 머리띠와 재밌는 소품, 고데기까지 구비돼 있어 가성비 좋게 그날의 모습을 기록할 수 있다는 점이 큰 장점이다. 부스 안 화면을 보면서 사진을 찍고, 원하는 사진들과 프레임을 골라 직접 배치한 후 인화하는 방식이다. 세밀한 얼굴 보정은 되지 않지만, 뽀얗게 톤 보정이 되거나 밝은 효과, 흑백효과 등을 넣을 수 있고, 잘 촬영하면 사진관에서 찍은 것 못지않은 사진을 얻을 수 있다. 초반에는 관광지를 기준으로 설치되던 무인 사진 부스가 유행을 탔고, 학생들이 자주 놀러 나오는 주요 상권 등을 기점으로 번화가 곳곳에 설치되기 시작하며 더욱 성행했다. 현재는 수많은 무인 사진 부스 프랜차이즈가 있으며, KB국민카드가 분석한 카드 사용 가맹점 데이터에 따르면 2021년 대비 2022년 무인 사진관 매출액 성장률은 271%였다고 한다.

 

[셀프사진관, 조금 더 자유롭게]

꾸며진 스튜디오에서 화면을 보고 리모컨으로 사진을 촬영하는 셀프사진관의 개념도 등장했다. 독립된 스튜디오에 들어가 주어진 시간 동안 원하는 만큼 사진을 찍고, 그중 몇 장을 고르면 보정을 해주는 방식이다. 기존 사진관에서 우정 사진이나 연인 사진을 찍으면 사진사가 직접 찍어주기 때문에 다소 긴장해 표정과 자세가 경직되기 쉽다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셀프사진관에서는 카메라 앞에 사진을 찍는 사람들끼리만 있기 때문에 좀 더 과감하고 편안한 표정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너무 익살맞으면 보정사가 다소 놀랄 수 있겠지만.

 

▲옛날 감성을 담아 여행 중의 순간을 직접 남긴 폴라로이드 사진
▲옛날 감성을 담아 여행 중의 순간을 직접 남긴 폴라로이드 사진

말 그대로 전부 다 ‘셀프’로 사진을 찍기도 한다. 사진관에 가서 돈을 주고 사진을 찍는 큰 이유는 △고화질 인화 △전문 사진 장비를 통한 왜곡 최소화 △보정 작업 등 집에서 찍는 것보다 좋은 질의 작업물을 얻기 위해서다. 하지만 스마트폰의 카메라 화질이 점점 선명해지고, 쉽게 보정할 수 있는 앱이 많아지면서 집에서 직접 핸드폰으로 증명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또한, 폴라로이드 카메라나  다회용 필름카메라 등 입문이 쉬운 카메라를 활용해 여행 스냅(snap) 촬영부터 셀프 웨딩, 셀프 화보를 찍는 등 사람들은 여러 용도의 사진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직접 남기고 있다. 천연당 사진관이 있던 시절에는 외상을 해서라도 사진관에 가서 필요한 사진을 찍는 이들이 많았지만, 이제는 사진 기술과 보정 기술이 대중화됐기에 사진관이 개개인의 눈앞에 만들어질 수 있었다.

 

우리나라 사진관의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 짧은 역사 안에서 시대의 크고 작은 변화로 사진관의 형태가 다양하게 변화해왔지만, 순간의 모습을 남기고 싶은 사람들이 있는 한 그 모습은 달라도 사진관이라는 개념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참고문헌] 최인진, 『해강 김규진과 천연당 사진관』, 아라, 2014, 96~10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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