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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집안의 운명적 비극, 『김약국의 딸들』(1962)

우연이 계속되면 필연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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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약국의 딸들』(1962)의 책표지
▲『김약국의 딸들』(1962)의 책표지

기구하다. 어느 인간의 삶이 이토록 기구할 수 있는가? 『김약국의 딸들』(1962)을 읽는 내내 기자의 머릿속을 지배한 감정은 연민을 뛰어 넘은 불편함이었다. 6장으로 구성된 장편소설인 작가 박경리(1926~2008)의 『김약국의 딸들』 ‘김약국’과 그의 다섯 딸 '용숙', '용빈', '용란', '용옥', '용혜'의 하루하루를 그려 다분히 단조로울 수 있는 이야기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행복은 찾아볼 수 없다. 그들의 일생은 어떤 의미로 ‘판타지’였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그 가족의 이야기에 기자는 자꾸만 매료됐다.

기자가 『김약국의 딸들』을 처음 접한 건 기자의 엄마로부터다. 작년 3월쯤 한 교수님께서 답을 생각해오라며 올려주신 질문지 속에 ‘한국에서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 중 어디를 가고 싶은가?’라는 문항이 있었다. 여행에는 큰 뜻이 없고, 국내 여행지라면 아는 곳이 부산, 제주도뿐이었던 기자는 그 대답을 엄마한테 미뤄버렸다. 뜻밖에 포항을 얘기하는 엄마께 그 이유를 물었다. 예전에 읽은 『김약국의 딸들』 속 둘째 딸 용빈이 서울에서 포항으로 내려오며 봤던 스산한 포항의 전경이 묘사된 부분이 너무나도 인상 깊었다고 한다. 엄마의 대답은 기자를 포항으로 내몰기에 충분했다. 하루 종일 핸드폰만 들여다보는 기자를 400쪽이 다 돼가는 책을 읽도록 만들었다. 반대 방향으로 가는 지하철을 타는 것을 밥 먹듯 했던 기자이기에 부산까지 제대로 갈 수는 있을지 불안했고, 부산에서 통영으로 가는 방법도 몰랐으며, 면허 또한 당연히 없었지만, 부산에 내려가 계신 아빠만 믿고 일단 기차에 올라탔다. 벌써 3달 전 일이다.

 

통영은 다도해 부근에 있는 조촐한 어항이다. 부산과 여수 사이를 내왕하는 항로의 중간지점으로서 그 고장의 젊은이들은 ‘조선의 나폴리’라 한다. 그러니만큼 바닷빛은 맑고 푸르다. …(중략)… 이 무렵의 통영 항구를 점묘(點描)해 보면, 고성반도에서 한층 허리가 잘리어져 부챗살처럼 퍼진 통영은 북장대 줄기를 타고 뻗은 안뒤산이 시가를 안은 채 고깃배가 무수히 드나드는 배를 지켜보고 있었다. 안뒤산 기슭에는 동헌(東軒)과 세병관(洗兵館) 두 건물이 문무(文武)를 상징하듯 나란히 자리잡고 있었다. 시가는 동서남북 네 개의 문과 동문, 남문 중간에 있는 수구문을 합하여 모두 다섯 개의 문으로 형성되어 있었다.

 

▲통영의 항구
▲통영의 항구

제1장 중 「통영」에서는 소설의 배경이 되는 통영의 전경을 그린다. 처음에는 멀리서 바라보던 통영을 자연스럽게 시선이 흐르듯 세분하여 소개한다. 그리고 그 시선 끝에는 ‘김봉제’ 형제가 살고 있다. 관 약국의 의원으로 조용히 일생을 보내던 형 김봉제와 난폭한 성격에 노란 머리를 가진, 전처를 때려죽였다는 소문이 돌던 동생 김봉룡은 간창골에서 살아가고 있다. 봉룡은 아내 ‘숙정’이 간통한다고 오해하고, 숙정은 억울함에 *비상을 먹고 자살했으며 봉룡은 야반도주했다. 그렇게 그들의 외아들 ‘성수’만이 집에 남겨져 흉흉한 소문 속에 살아간다. 봉제의 죽음 이후 약국을 물려받은 성수는 김약국이라 불리며 ‘한실댁’과의 사이에서 다섯 딸을 낳는다.

김약국 일가의 삶 속으로 뛰어들기 전 기자는 박경리기념관을 찾았다. 평일 낮의 기념관은 한산했다. 『김약국의 딸들』을 정리해 놓은 곳은 소설 속 배경지를 모형으로 축소해 전시해 놓았다. 지명이 쓰여있는 모형을 들여다보며 마치 김약국과 그의 딸들이 그 속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도 그럴 것이 『김약국의 딸들』은 내가 통영에서 지나친 누군가의 이야기를 책으로 써낸 것에 불과한, 누구나의 이야기였다. 해당 모형을 통해 오늘의 경로를 다시금 정리한 기자는 통영의 바다를 보기 위해 발을 옮겼다. 기자가 처음 접한 통영의 바다는 작았다. 이렇게 작은 바다가 그렇게 수많은 비극을 품고 있다는 것에 놀랐다. 작지만 깊었다. 당최 그 속이 보이질 않았다.

 

“축복해주는 것이 이별을 아름답게 하는 것, 나도 그건 알아. 그렇지만 난 널 미워하겠다. 오래가지는 않을 거야, 미움이 말이야.” …(중략)…

“용빈이, 용빈은 날 오해하고 있어! …(중략)… 난, 난 지난 겨울 방학 때 실수를 했었다.”

“…….”

“마리아가 몹시 따랐다. 나이도 어리고…… 그만…….”

 

홍섭은 고개를 숙였다. 용빈은 말없이 돌아섰다. 그리고 곧은 자세로 층계를 밟고 내려간다. 달빛이 얼굴 위에 쏟아졌다. 얼굴은 눈물에 흠씬 젖어 있었으나 고개를 숙이지는 않는다. …(중략)… 용빈은 처음으로 흐느꼈다. 치맛자락이 철망에 걸려 쭉 찢기어지는 것도 모르고.

 

▲세병관
▲세병관

둘째 딸 용빈은 영민하고 훤칠한 지식인이었다. 용빈은 ‘홍섭’과 결혼을 기약하고 있었다, 홍섭이 교회에서 만난 ‘마리아’와 바람나기 전까지. 홍섭은 용빈의 과거를 더럽히고 미래를 배신했다. 기자는 둘이 이별한 곳인 세병관을 찾았다. 처음에는 세병관의 크기에 놀랐다. 세병관은 압도적으로 거대했지만, 텅 비어있었다. 홍섭으로 인해 마음이 차갑게 식어버린 용빈처럼. 이후에는 용빈이 느꼈을 허망함과 미움, 분노를 느꼈다. 홍섭은 비겁했다. 그 점이 기자를 더욱 화나게 했다. 이날 이후 용빈은 울지 않았다. 용빈이 다시금 눈물을 보인 건 김약국 집안이 완전히 몰락해버린 후였다. 용빈이 홍섭과 이별하던 즈음부터 김약국 집안의 가세는 기울고 있었다.

 

“비상 묵고 죽은 구신아, 칼 맞아 죽은 구신아, 배고파 죽은 구신아, 청춘에 죽은 구신아, 물에 빠져 죽은 구신아…….”

 

▲서문고개, 길 끝에 박경리 생가가 자리잡고 있다
▲서문고개, 길 끝에 박경리 생가가 자리잡고 있다

셋째 딸 용란은 아름다운 미모를 가지고 있었지만, 제 욕망에 지나치게 충실했다. 용란은 그 집 머슴 ‘한돌이’와 정분이 났다. 용란의 성 추문으로 지탄을 받을까 걱정한 김약국과 한실댁은 용란이를 급하게 성불구자인 아편 중독자 ‘연학’에게 시집을 보냈다. 원치 않던 결혼 생활에 지친 용란은 자꾸만 친정으로 도망치듯 돌아왔다. 그럴 때마다 한실댁은 서문고개를 넘어 용란이를 돌려보냈다. 서문고개라는 이름에 기자는 높고 험한 산길을 예상했다. 막상 마주한 서문고개는 보통의 오르막길 정도였고, 어떻게 밤중에 이들이 그 고개를 계속해서 올랐는지 이해가 갔다. 서문고개의 입구에는 「요조숙녀」의 한 구절이 새겨져 있었다. 용란이를 어르고 달래서 돌려보내는 한실댁의 속은 사실 누구보다 쓰렸을 것이다. 서문고개를 오르면 박경리 생가가 나온다. 현재는 일반 시민이 살고 있지만, 김약국이 탄생한 그 집과 집 앞에서 내려다보이는 통영의 모습은 여섯 여자의 애환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용란은 연학이 경찰에 잡혀있는 동안 한돌이와 도망쳤다. 한실댁이 용란의 외도를 알아차린 날 밤, 한실댁의 꿈 속 무당은 굿을 하고 있었다. 닭의 목을 치려던 무당의 얼굴은 갑자기 연학의 얼굴로 변했고 잘려 나간 닭의 대가리는 용란의 머리였다. 잠에서 깬 한실댁은 겁에 질려 차라리 한돌이와 용란이를 멀리 보낼 심산으로 용란과 한돌이를 찾아갔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유치장에서 나온 연학이 이들을 찾아냈다. 아편에 취한 연학이 휘두른 도끼에 한돌이와 한실댁은 목숨을 잃었다. 하루아침에 어머니와 사랑하는 남자를 연학에 의해 잃은 용란은 미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날 이후, 미쳐버린 용란을 돌보기 위해 용옥은 서문고개를 올랐다. 그 짧은 고개가 길게만 느껴졌을 것이다.

 

“저의 아버지는 고아로 자라셨어요. 할머니는 자살을 하고 할아버지는 살인을 하고, 그리고 어디서 돌아갔는지 아무도 몰라요. 아버지는 딸을 다섯 두셨어요. 큰딸은 과부, 그리고 영아 살해혐의로 경찰서까지 다녀왔어요. 저는 노처녀구요. 다음 동생이 발광했어요. 집에서 키운 머슴을 사랑했죠. 그것은 허용되지 못했습니다. 저 자신부터가 반대했으니까요. 그는 처녀가 아니라는 험 때문에 아편쟁이 부자 아들에게 시집을 갔어요. 결국 그 아편쟁이 남편은 어머니와 그 머슴을 도끼로 찍었습니다. 그 가엾은 동생은 미치광이가 됐죠. 다음 동생이 이번에 죽은 거예요. 오늘 아침에 그 편지를 받았습니다.”

 

넷째 딸 용옥은 딸들 중 가장 인물이 떨어지지만 부지런하고 야무졌다. 김약국의 아래서 일하던 ‘기두’는 용란과 혼인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용란의 성 추문으로 어쩔 수 없이 넷째 딸 용옥과 혼인하게 된다. 기두는 용옥에 대한 애정이 없었고, 집에 있는 것이 고통스러웠다. 결국 부산의 어업조합에 취직해 집을 떠났고, 명절에도 얼굴을 비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용옥의 시아버지는 용옥을 겁탈하려 하고, 이를 뿌리친 용옥은 충렬사까지 도망쳐 내려온다. 꿈만 같았고, 세상은 죽은 듯이 고요했다. 시아버지로부터 도망친 용옥은 기두를 찾아가기 위해 무작정 배에 올라탔다. 밤중 용옥이 탄 배가 침몰하며 용옥은 아이와 함께 죽어버렸다.

▲충렬사와 아직 피지 않은 동백나무
▲충렬사와 아직 피지 않은 동백나무

충렬사의 앞은 동백나무가 이어져 있다. 어디선가 동백이 2월 초 핀다는 이야기를 듣고 잔뜩 기대하며 충렬사를 찾았다. 그러나 아쉽게도 꽃봉오리만 빨갛게 맺혀있었다. 오히려 화려하지 않고 삭막한 충렬사의 모습이 그들의 아픔을 더욱 부각했다. 동백나무들을 지나 충렬사로 이르는 계단을 올랐다. 구석구석을 돌아보고 사진을 찍다 보니 충렬사 위패 사당에 도착했다. 사진을 찍으려고 그 안을 들여다본 순간 알 수 없는 기개에 압도되고 말았다. 왠지 모를 두려움과 당혹스러움에 조용히 카메라를 내리고 돌아 나왔다. 공포에 떨고 있는 용옥에게 충렬사는 잠시나마 몸을 숨길 수 있는 곳이 되어줬을 것이다.

이번 기사에서 다루지 못했지만, 마음 둘 곳 없어 기생 ‘소청이’와 밤을 보내다 결국 암으로 생을 마감한 김약국, 가족과의 연을 끊다시피 한 첫째 딸 용숙, 가족을 돌보기 위해 공부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막내딸 용혜까지. 도무지 불쌍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 우연이 계속되면 필연이라고 한다. 우연을 가장한 비극들은 그 가족의 운명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다. ‘사람 사는 곳에 외로움이 있다.’ 그들은 함께할수록 괴로워질 운명이었다.

 

비상(砒霜): 비석(砒石)에 열을 주어 승화시켜서 얻은 결정체로 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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