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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길을 찾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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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소설『메이즈 러너』의 주인공 토마스, 뉴트, 민호를 비롯한 아이들은 기억을 잃은 채 움직이는 거대한 미로 속 ‘글레이드’에 갇힌다. 자신의 이름을 제외한 모든 기억을 잃어버린 그들은 자신들 나름대로 규칙을 만들며 살아가 보려 한다. 하지만 글레이드를 둘러싼 환경이 변화하기 시작하고, 아이들은 살아남기 위해선 새로운 길을 찾아야만 하는 상황에 놓인다. 미로에서 탈출한 그 이후인『스코치 트라이얼』과『데스 큐어』에서도 주인공들은 생존을 위해선, 친구를 구하기 위해선, 자신들의 기억을 지우고 미로에 감금하고 친구들을 죽인 ‘위키드’를 붕괴시키기 위해선 계속해서 주어진 시간 안에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 길을 찾지 못하면 위키드에 잡혀 백신 개발을 위한 실험체로 이용되거나,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크랭크’라고 불리는 광인이 되거나, 혹은 죽는다. 시리즈의 제목처럼 주인공들은 작중 내내 디스토피아라는 미로에 갇혀 길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이러한 극단적인 상황 말고도 길을 찾아야만 하는 상황들은 너무 흔하다 못해 진부하다. 드라마에선 연인이 서로에게 마음을 전달하기 위한 길을 찾는 과정을 지겹도록 볼 수 있으며, 추리소설 속 명탐정들도 증거와 증언을 모아 사건 해결로 향하는 길을 찾고자 한다. 새로운 무언가에 도전하고자 할 때도 그것의 성공을 위한 길이 필요하다. 정부가 내놓는 정책과 기업에서 연구하는 전략들도 모두 ‘길’의 역할을 수행한다. 예를 들어 현재 미국 연방 정부와 의회는 정부의 부채한도 증액 여부를 둘러싸고 치열하게 대립하고 있다. 야당인 공화당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하원은 바이든 정부에 재정지출 삭감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맞서 바이든(Joe Biden) 대통령과 민주당은 부채한도 상향을 고수하고 있다. 논의가 길어지는 사이, 재무부 장관 재닛 옐런(Janet Louise Yellon)이 경고한 ‘데드라인(deadline)’인 6월 1일은 점점 다가오고 있다. 데드라인까지 정부와 의회가 합의점을 도출하지 못한다면 명실상부한 세계 초강대국인 미국이 초유의 ‘디폴트(채무불이행)’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다. 만약 디폴트 상황이 현실화되어 3개월 동안 지속될 경우 증시가 45% 폭락하고 국내총생산(GDP)은 6.1% 감소하며, 최대 83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고 백악관 경계자문위원회는 예측했다. 주어진 시간 내에 길을 찾지 못한다면 그 파장은 불 보듯 뻔하다. 미국 경제가 수렁에 빠져들 것은 물론이고 전 세계 경기가 불황에 빠질 것이다. 결코 겪고 싶지 않은 결과를 피하기 위해선 새로운 길을 찾아야만 한다. 

신문을 만들기 위한 모든 작업 또한 주어진 시간 안에서 길을 찾아야만 하는 과업의 연속이다. 아무 탈 없이 기사를 보도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애석하게도 그런 일은 오히려 한 번 있을까 말까 한다. 기사 작성을 위해서 꼭 필요한 인터뷰가 거절당하는 건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단순하게 생각했던 일이 취재하면 할수록 복잡해지고, 이를 기사로 설명하는 과정에서 ‘대공사’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기사 작성이 아예 불가능해지는 경우일 땐 그 어떤 말보다도 “또?”가 제일 먼저 튀어나온다. 이럴 때마다 방법은 딱 하나다. 새로운 길을 찾는 것. 빈 지면을 메꿀 수 있는 새로운 보도 주제를 찾아 온갖 자료를 뒤지고, 촉박한 시간 안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취재를 진행한다. 갑작스레 바뀐 지면 구성도 다시 디자인한다. 결과적으로 발간되는 신문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척’하는 기사만 볼 수 있다. 하지만 기자들이 경험하는 당황스러움과 시간에 쫓기는 압박감은 숨길 수 없다. 체계적으로 방향을 잡고 시간을 들여 취재한 뒤 작성한 기사와 급하게 구성한 기사는 첫인상부터 다르다. 편집국장에 이름을 걸고 내는 신문에 그런 기사를 올리기로 결정하는 순간, 기자 자신에게 화가 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미리 해두라고 한 번 더 말할걸.’이라는 후회부터 자책감, ‘그거 하나 못 해주나?’라고 원망하게 만드는 분노는 기자를 미로 속에 주저앉힌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다. 감정적인 문제보다 우선시되어야 하는 것은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는 일이다. 

이번 호 몇몇 기사들은 그런 기자가 찾아낸 새로운 길이다. 언제나 독자에게 완벽하고 흠잡을 데 없는 신문을 보여주고 싶지만, 시간과 취재 당시 처해 있던 상황이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텅 비어있는 지면은 절대 보고 싶지 않은 결과였기에, 지금 당신이 허접하다고 느끼고 있을 그 기사는 기자가 찾아낸 새로운 길 중 가장 좋은 선택지였음을 기억해달라. 다음 호가 더 좋은 신문이 되도록 기자는 또다시 새로운 길을 찾아 떠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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