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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플 때 빨래를 하는 이유

뮤지컬 '빨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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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빨래' 포스터/ 출처: 예스24 티켓
▲뮤지컬 '빨래' 포스터/ 출처: 예스24 티켓

올해로 서울살이 5년 차, 강원도에서 나고 자란 27살의 ‘나영’은 작가를 꿈꾸며 서울로 상경했지만 아직은 서점에서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된 나영은 낯설고 힘들지만 새로운 보금자리에 적응하려 노력한다. 그러던 어느 날, 나영은 ‘빨래’를 널기 위해 옥상으로 올라가고, 그곳에서 무지개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몽골 청년 ‘솔롱고’를 만나게 된다. 처음엔 어색하고 불편했던 둘이지만 바람에 우연히 날려온 빨래 하나에 천천히, 서로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난 빨래를 하면서 얼룩 같은 어제를 지우고 먼지 같은 오늘을 털어내고 주름진 내일을 다려요. 잘 다려진 내일을 걸치고 오늘을 살아요.”

 

▲출처: 씨에이치수박
▲출처: 씨에이치수박

<빨래>는 서울에서 타향살이를 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뮤지컬이다. 강원도에서 온 나영, 몽골에서 온 솔롱고, 주인할매, 옆방에 사는 희정엄마 등 극 중 인물들은 각자의 속 깊은 사정을 안고 서울에서 살아간다. 꿈을 안고 올라온 서울이지만 꿈을 이루기는커녕 하루하루 살아내는 것도 벅차다. 그래도 살아가야 하는 것이 인생이기에 이들은 마치 빨래를 하며 옷의 얼룩을 지워내듯 각자의 고민과 걱정을 지워버린다. 바람에 빨래를 말리듯 훌훌 털어낸다. 나영은 자신이 일하는 서점의 동료 직원이 부당하게 잘리는 모습을 보고 사장에게 대신 목소리를 낸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사장의 호통과 앞으로는 서점이 아닌 창고에서 일을 하라는 통보뿐이다. 슬프고 억울한 나영의 사정을 들은 주인할매와 희정엄마는 우리네 삶을 빨래에 빗대어 나영에게 작은 위로를 건넨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2교대로 돌리는 공장에서 일을 시작한 희정엄마, 장애를 가진 딸의 똥 기저귀를 빠는 주인할매. 두 사람은 어린 나영의 인생 선배로서 조언한다. 가끔 나의 인생이 요것밖에 안 되나 싶더라도 아직 사랑이, 살아갈 힘이 남아있는 자신을 돌아볼 것을. 그래도 인생이 서럽고 슬프다면 빨래를 하면서 지워버리길.

넓은 이불 사이로 움직이는 배우들, 무대 뒤로 펄럭이며 춤을 추는 빨랫줄에 걸린 빨랫감들, 보글보글 뿜어져 나오는 비눗방울들. 사소하지만 그에 비해 몇 배로 벅찬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연출과 조화롭게 섞이는 배우들의 목소리는 관객들로 하여금 한순간 극과 사랑에 빠질 수 있게 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주인할매와 희정엄마가 나영에게 건넨 위로는 관객들에게도 전해진다.

 

“힘들게 살아가는 건 우리에게 남아있는 부질없는 희망 때문,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흔들리는 내 꿈을 쫓아가 보지만 남는 건 허탈한 마음뿐 … 비 오는 날이면 외롭고 쓸쓸한 마음. 우산 하나 받쳐 들고 또 하루를 살아가요.”

 

비가 내리는 날, 나영은 우산 없이 비를 맞고 있는 솔롱고를 발견한다. 공장에서 월급을 받지 못한 솔롱고의 사연을 알게 된 나영은 그에게 조그만 위로의 안부를 건네고 함께 버스에 올라탄다. 비 오는 날 운전이 여전히 무서운 버스 기사, 외로운 직장인, 품 안에 아이를 안은 엄마 그리고 고향에 두고 온 가족들에 대한 걱정과 받은 월급보다 밀린 월급이 더 많아 슬픈 솔롱고. 우리 일상 속에서 서로의 인생의 조연이 되어주는 이들은 모두 각자의 사연을 가진, 자기 삶의 주인공들이다. 버거운 서울살이에도 이들이 여전히 살아가는 이유는 모두 자신만의 희망을 좇아가고 있기 때문일까. 비가 자주 오는 장마철에는 빨래가 잘 마르지 않는다. 그래도 우리는 빨래를 한다. 뭘 해도 잘 풀리지 않는 날들이 있다. 그래도 우리는 살아간다. 장마가 끝나고 햇빛이 비칠 날까지, 빨래가 잘 마를 그날까지 말이다.

▲출처: 씨에이치수박
▲출처: 씨에이치수박

 

<빨래>는 2005년에 초연을 올린 후 18년이 지난 지금, 27차 프로덕션을 진행 중이다. 십오 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이 작품이 꾸준히 사랑받아 왔다는 건 여전히 우리의 삶은 버겁고 슬프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러나 중요한 건 그래도 사랑을 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 꿈을 갖고 살아가도 된다는 것. ‘빨래’라는 일상적 요소에 인생을 풀어낸 뮤지컬 <빨래>는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쩌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지 않을까.

 

“빨래처럼 흔들리다 떨어진 우리의 일상이지만 당신의 젖은 마음 빨랫줄에 널어요. 바람이 우릴 말려줄 거예요. 당신의 아픈 마음 꾹 짜서 널어요. 바람이 우릴 말려줄 거예요. 당신의 아픈 마음 털털 털어서 널어요.”

 

공연기간 : 2023년 2월 29일(목) ~ 2023년 10월 1일(일)

공연장소 : 대학로 유니플렉스 2관

관람시간 : 수~금 19:00 / 토, 일 14:00, 18:30 / 월, 화 공연 없음

관람요금 : R석 66,000원 / S석 55,000원 / 시야제한석 2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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