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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지만 아름답게 만들어가는 초 단위의 세상

김진만(조소94) 동문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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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만(조소94) 동문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하 스톱모션)을 본 적 있을 것이다. <월레스와 그로밋>, <유령신부>(2005) 등은 클레이와 실리콘으로 만든 스톱모션이다. 그러나 국수로 스톱모션을 만든다면 어떨까? 1,400인분의 국수로 만든 <오목어>(2012)는 개봉 직후 국내외 영화제의 단편 및 애니메이션 부문을 휩쓸었다. 최근에도 <춤추는 개구리>(2018), <저주소년>(2022)등 다양한 작품을 보여주고 있는 김진만 동문(조소94)을 만나보았다.

 

Q. 동문은 본교 조소과와 시각디자인전공을 복수 전공했다. <오목어>의 시초가 된 <볼록이 이야기>(2003)가 시각디자인전공 졸업 작품이라 들었는데 시각디자인전공을 복수 전공한 이유가 궁금하다. 

A. 본교에 입학하고 학교를 약 9년 정도 다녔다. 조소 작가를 할 줄 알았기에 학교를 빨리 졸업할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학교에서 최대한 다양한 경험을 하고, 해보고 싶은 건 다 해본 뒤 졸업하고 싶었다. 졸업 직전, 초등학교 때 꿈꿨던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관련된 걸 찾아보다가 본교 시각디자인과에서 열리는 와우영상제를 알게 됐고 시각디자인과를 복수 전공하면 어떻게든 (애니메이션) 작품을 완성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포토샵, 프리미어 프로와 같은 프로그램도 잘 몰랐기에 ‘부딪히면서 배워보자.’라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복수전공 신청을 했고 약 2년 정도 학교를 더 다녔다. <볼록이 이야기>는 시각디자인과 1년 차 때 5분, 2년 차 때 5분을 만들어 총 10분으로 완성했다. 이후 이 작품으로 와우영상제에서 감독상을 받았다. 

 

Q. 애니메이션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스톱모션을 선택한 이유가 있을까?

A. 재밌어서 하게 됐다. <볼록이 이야기>는 국내 최초로 국수를 이용해 만든 애니메이션이다. 스톱모션을 처음 시도했기에 조금 어려운 도전이었는데 이 작품을 통해 가능성을 봤다. 앞으로 계속 해도 잘할 것 같은 분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직접 제작부터 촬영 및 편집까지 모든 과정을 겪으며 하나의 작품을 완성해 보니 만족감도 컸다. 가장 큰 건, 스톱모션을 활용할 수 있는 이야기가 계속 떠올라서 이를 꼭 스톱모션으로 만들고 싶었다. 결국 내가 표현하고 싶었던 것들이 스톱모션과 잘 어울렸다. 그리고 조소를 전공했다 보니 컴퓨터에 오래 앉아있기보단 땀 흘리는 노동을 더 좋아한다. 직접 손으로 만들고 표현하는 것에서 더 큰 만족감을 얻는다. 

 

Q. <오목어>에서 국수로 만든 캐릭터는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만들기 어려웠을 것 같은데 작업 과정이  궁금하다.

▲'오목어' (2012)작품 스틸컷

A. <오목어>를 만들면서 타이밍에 대한 연구를 많이 했다. 애니메이션 타이밍이란 게 있다. 초기작에선 신경 쓰지 않았던 부분이지만 <오목어>를 만들 땐 필요했다. 캐릭터가 달릴 때는 몸이 늘어나고 움직임이 멈추면 조금 줄어들게 하면서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표현했다. (국수 애니메이션에서) 가장 힘든 부분은 한 장면을 만들고 나서 다음 장면을 위해 다시 지우고 새로 그려야 하는 것이다. 주인공 ‘오목어’를 만들 때, 국수를 다듬고 완성하는 데까진 약 40분이 걸렸다. 두 프레임 찍는 데 40분이 걸리는 것이다. <오목어>는 1초당 15프레임이었다. 다들 ‘되게 힘들겠다.’고 생각하는데 실제로 찍고 있는 나는 굉장히 재미있다. 오랜 시간을 들여 한 프레임씩 찍다 보면 동작이 생기면서 죽어 있던 캐릭터가 생명을 가지고 움직인다. 찍고 있는 매 순간 캐릭터에 생명을 불어 넣는 것이다. 결국 재미있기 때문에 계속할 수 있는 것 같다. 그렇게 열심히 하루하루 만든 5초, 10초는 1년이 지나면 30분이 된다. 

 

Q. <오목어>부터 <춤추는 개구리>까지, 국수부터 실리콘까지 다양한 재료를 사용했다. 만드는 과정의 어려움과 해결방식이 궁금하다. 

A. <춤추는 개구리>를 만들 때 어려움이 조금 있었다. <춤추는 개구리>에서 처음으로 관절이 있는 인형을 사용했다. 관절을 표현하기 위해선 실리콘이 너무 뻑뻑하거나 물렁물렁해선 안 됐다. **애니메이팅하기 어렵지 않은, 내가 원하는 정도의 실리콘을 찾아야 했다. 실리콘은 임의로 비율을 바꿔 섞으면 굳지 않을 수 있다. 제조사가 정해둔 비율과 온도에 맞춰야 가장 사용하기 좋다. 그래서 적당한 점도를 가진 실리콘 제품을 직접 찾아야 했다. 국내에 있는 실리콘을 모두 테스트를 해보고 색 배합도 맞추다 보니 몇 달 동안은 재료 연구에만 시간을 써야했다. 

 

Q. 최근 작품인 <먼지요정 후와 무> (2021), <저주소년>에서 펠트와 양모로 만든 인형을 사용했다. 재료 선택의 이유가 궁금하다. 또 새로운 재료를 시도할 계획이 있는가?

▲감독의 의상 및 인형 작업실. 다양한 재료가 칸별로 정리되어 있다.

A. 이것도 노하우가 있는데 어떻게 하면 펠트로 스톱모션에 맞는 움직임을 만들 수 있을지 연구했다. 보통의 펠트 인형은 바늘로 천을 찍어 점점 부풀게 해서 덩어리를 만든다. 하지만 이 방식은 얼굴에 바늘 자국도 많이 생기고 펠트 자체가 팽팽하다 보니 자유롭게 움직이기 힘들었다. 그래서 펠트의 안쪽도 다르게 하고 겉에도 바늘로 찍지 않는 다른 방식을 찾았다. 팔다리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고안한 것이다. 일반적인 펠트 인형을 만드는 기법이 아닌 스톱모션에 맞게 개조했다. 

시도해 보고 싶은 재료와 생각하고 있는 작업은 많다. 하지만 한 작품을 만들 때 재료를 바꾸면 워낙 오래 걸리다 보니까 일단은 시도하지 않고 있다. 최근작이 모두 양모로 된 인간형 캐릭터인 것도 이 때문이다. 국수나 실리콘 같은 캐릭터는 그 자체로 새로운 작품에 연결하기 힘들다.   새로운 시도를 한다고 해도 (재료를) 실험할 시간이 많이 필요하기에 한 작품에 너무 긴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인간형 캐릭터는 이후 다른 작품을 할 때 용이하게 연결할 수 있다. 물론 새로운 시도 자체가 재미있긴 하지만 일단은 작업량을 늘리는 데 집중하려고 한다. 

 

Q. 이전에는 자유 그리고 삶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했다면 최근에는 성장이나 소소한 일상을 얘기한다. 앞으로의 작품에선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가?

A. <춤추는 개구리>까지 하고 난 뒤 주변에서 ‘사람은 안하고 동물만 하는 거냐?’는 반응이 있었다. 마침 사람도 해보고 싶고 대사 있는 것도 해보고 싶었다. 이런 작품이 많지만, 동물만 하던 나에겐 오히려 도전이었다. 그래서 연습할 겸 사람 캐릭터로 만든 첫 작품(저주소년)엔 나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담았다. 현재는 <꼬리 도깨비 뽀삐>라는 30분짜리 중편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고 있다. 이번 작품은 내 어린 시절 얘기는 아니다. 전통 도깨비가 나오고 시골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서로 따뜻하게 의지해서 살아가는 이야기다. 원래는 그림책으로 내려고 했는데 캐릭터를 직접 만드는 김에 애니메이션으로도 함께 제작 중이다. 아무래도 펠트를 사용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따뜻한 이야기를 쓰게 되는 것도 같다. 아직  <꼬리 도깨비 뽀삐>를 제작하고 있기 때문에 확실히 기획하는 건 없지만 지금 쓰고 있는 몇 가지 이야기도 대체로 따뜻한 내용이다.

▲감독의 촬영실. '꼬리 도깨비 뽀삐'를 제작하고 있는 장면이다. 왼쪽의 노트북으로 촬영 즉시 인형의 움직임을 확인할 수 있다. 
▲감독의 촬영실. '꼬리 도깨비 뽀삐'를 제작하고 있는 장면이다. 왼쪽의 노트북으로 촬영 즉시 인형의 움직임을 확인할 수 있다. 

 

Q. 본교에서 애니메이션 감독을 꿈꾸는 학우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린다.

A. 나도 그냥 닥쳐서 시작했다. 이 수업에서 F를 받더라도 들어보자는 생각이었다. 맨손으로 갔지만 오히려 많이 배웠다. 그때그때 필요한 프로그램을 배우고 편집을 배우며 작품을 만들었다. 그렇게 애니메이션 감독이 되었다. 그러니 지금 생각하는 게 있으면 이제 몸으로 부딪치자.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 움직임을 한 프레임씩 변화를 주면서 촬영한 후 이 이미지들을 연속적으로 영사하여 움직임을 만들어 내는 애니메이션 기법이다. 줄여서 스톱모션이라 칭하기도 한다. 

**애니메이팅: 애니메이션에서 등장하는 인물이나 물체의 움직임을 만드는 행위를 일컫는다. ‘애니메이션 하다’ 또는 ‘애니메이션 주다’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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