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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백, 오세령, 김세정, 자유의길, 2023

'미술의 이해' 성신영 교수가 추천하는 『전영백의 더 세미나: 기호학·정신분석학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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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본교 전영백 교수가 대학원 석사 과정 제자들과 함께 대학원(미술사학과)과 학부(예술학과)의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 미술이론 관련 실제 강의 내용을 정리해 출판한 것이다. 소수의 학생에게 할당된 폐쇄형 대학 강의를 다수의 대중과 공유하고자 한 점은 상당히 포용적이고 민주적 결단으로 보인다. 이러한 경우가 국내에서는 드문 사례이지만 자크 라캉(Jacques Lacan, 1901~1981)의 『르세미네르』에서 그 전례를 찾아볼 수 있고, 저자도 거기에서 영감을 받아 책의 제목으로 사용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라캉의 저작을 읽어 본 독자라면 알겠지만, 수많은 해설서를 함께 읽어야 할 만큼 접근이 쉽지 않은 책인 데 반해, 『더 세미나』는 현학적 어투는 최대한 배제하고 쉬운 말로 설명하고자 하며 구어체를 사용해 시각적으로 읽고 있음에도 청각적으로 듣고 있는 느낌마저 들어 이해도가 배가된다고 할 수 있다.

책의 내용을 실제로 듣고 있는 것과 같은 현장성은 내용 구성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크게 1부 기호학, 2부 정신분석학으로 구분되는데, 모두 1교시 강의, 2교시 심화 발제, 3교시 응용 발표로 구성되어 있다. 1교시 강의는 기호학과 정신분석학의 주요 이론을 정리, 설명하는 이론 수업이다. 구조주의 언어철학자 페르디낭 드 소쉬르(Ferdinand de Saussure, 1857~1913)의 기호학(Semiology)은 기호(sign)를 기표(signifier)와 기의(signified)로 파악하는 이분법적 사유 체계를 확립했는데, 이후 후기구조주의 철학자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 1930~2004) 등의 예를 통해 이러한 일대일 대응 관계의 이분법적 사유체계가 해체되고 기호의 다양성과 열린 체계를 통해 다층적 이해가 가능해짐을 보여준다. 정신분석학은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와 라캉을 중심으로 중심화된 주체에서 주체와 대상과의 관계를 통해 탈중심화된 주체로 전화되어 가는지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2교시 심화 발제는 공저자로 이름을 올린 제자들의 발제문을 실었다. 그리고 3교시 응용 발표는 앞의 이론에서 다룬 내용을 다양한 현대미술 작품에 실제로 대입해 분석한 사례들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현대미술은 포스트모더니즘 시기 이후 선형적 역사 발전 흐름에 따른 미술사 이해에서 확장된 시각으로 철학적 비평을 도입하기 시작했는데, 특히 1970년대에 로잘린드 크라우스(Rosalind Krauss, 1941~)와 같은 미술사학자, 비평가는 예술작품의 표상 체계를 언어적 기호체계로 파악했으며, 이후 다양한 후기구조주의 철학을 통한 예술 이해가 보편화되었다. 따라서 미술사, 미술 이론 관련 전문가들 모두 철학적 지식이 요구되었으며, 예술에서 예술작품 그 자체보다도 예술의 ‘개념’적 층위가 더 중요시되는 방향으로 전환되면서 다수의 예술가도 이러한 철학적 지식을 토대로 작품을 제작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러나 철학 사상은 그 자체로 독립적인 학문 분야이기 때문에 현대미술사나 미술 이론 전공 학생들에게도 무척 어려운 분야인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현대미술은 ‘아는 사람이나 즐기는 미술’이라는 오명을 얻고 더 많은 다수의 대중을 문화적 향유자로 포섭하지 못하는 한계를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더 세미나』는 철학이 어떻게 예술작품 분석에 응용 가능한지 학생들의 발제와 여러 사례를 통해 이해의 폭을 넓힘으로써 현대미술과 대중(독자)이 이러한 간극을 메울 수 있도록 한다.

예술은 직·간접적으로 동시대의 정치, 경제, 사회 등의 사회상을 반영하고 있고, 그 사회의 기반을 형성하는 것이 철학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역사, 사회, 철학, 예술 등은 개별적 독립 체계가 아니라 톱니바퀴처럼 맞물리고, 상호적 관계에 있는 것이다. 결국 철학 사상을 통해서 미술을 이해하는 것이 가능하기도 하지만, 역으로 이러한 예술 이해를 통해 사회를 보는 시각을 넓히고, 자신의 분야에도 응용할 수 있는 것이다. 책의 서두에 밝힌 저자의 말에서 그러한 의도를 충분히 파악할 수 있다.

“수업의 내용이 그저 추상적 지식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일상에 활용할 수 있는 지식, 다시 말해 필요한 순간순간마다 인식과 실행에 작용할 수 있는 지식이 되게 하자는 것이다.”

책 속에 담긴 다양한 전공생의 논평에서 그러한 실례를 보는 것 또한 이 책의 묘미이다. 따스한 봄날, 지인과의 미술관 나들이에 앞서 이 책을 읽고 예술적 소양도 쌓고, 더 나아가 세상을 보는 사유의 눈도 확장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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