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영원(evergreen)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여름이 온다. 지난 5월 6일(토), 입하(立夏)가 지나고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고 있다. 내리쬐는 뜨거운 열기는 그나마 남아있던 봄기운마저 모두 가셨음을 알리고 있다. 온도 변화에 알레르기가 있는 기자는 누군가 창문을 열어 바깥의 찬바람이 조금이라도 들어오면 귀신같이 재채기를 터트린다. 그런 기자에게 에어컨이 틀어져 추운 실내와 30℃를 넘나드는 실외가 공존하는 여름은 지옥과도 같은 계절이다. 비단 알레르기뿐만이 아니다. 한 해의 반 가까이가 어느새 지나가 버리고, 뜨거운 열기가 어깨를 짓누르는 여름은 기자가 여태껏 무엇 하나 이뤄놓은 것이 없음에 아파하고, 남은 나날들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에 눈물짓게 한다. 명확한 이유 없이 몰려오는 막막함에 기자는 쉽게 무기력해진다. 그런데도 기자는 여름을 좋아한다. 여름에는 신비한 힘이 숨어있다. 여름은 무엇이든 해낼 의지를 주고, 지나고 보면 모든 순간이 화양연화였던 것처럼 비춰준다. 다가올 미래가 막막하지만 “그래, 한 번 해보자.”하고 툭툭 털고 일어나 나아가도록 만든다. 돌이켜 보면 기자는 매 여름 힘든 시기를 보냈지만, 가장 많이 성장했다. 기자가 홍대신문에 입사하고 가장 처음 읽었던 기자프리즘인 1313호의 ‘여름은 성장의 계절’에 깊이 공감한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작년 여름, 기자는 정말 열심히 살았다. 방학임에도 학기 중보다 더 바쁘게 보냈다. 그렇지만 전혀 힘들지 않았다. 마치 영원의 한가운데 혼자 멈춰있는 것 같았다. 여름의 살인적인 더위에 취해 미친 것 마냥 해보고 싶었던 일들에 열중할 수 있었고, 건방지게 기자의 한계에 자꾸만 도전하기도 했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그해 여름을 떠나보내고 갑작스레 몰려드는 피로함을 느끼며 기자는 여름이 가진 힘을 발견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영원’을 믿는지 묻고 싶다. 어떤 이는 지나치게 낭만적인 이야기라고 비웃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는 ‘사랑한다', '행복하자', '함께하자' 등의 말 앞에 쉽게도 영원을 갖다 붙인다. 그러나 그 말을 쓰는 누구도 이 순간이 영원할 거라고 확신하진 못한다. 정확하게는 영원하지 않을 거란 걸 이미 알고 있다. 그저 이 순간이 너무나 소중하다는 것을 영원이라는 한 단어에 담아 보내는 것이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것들은 오히려 빠르게 저버린다. 그것이, 그 순간이 영원하길 바란 만큼 열중했고, 불타올랐기 때문이라고 기자는 믿고 있다. 이따금 지칠 때면 빨리 지나가길 바랐던 여름인데, 막상 여름이 지나가 버리면 기자는 남은 계절 내내 여름을 그리워한다. 여름을 기다리는 시간은 느리게 흘러가지만, 결국엔 영원 같던 시간이 지나고 여름이 돌아올 것을 안다.

기자에게 영원했으면 하는 존재가 있다. 가족보다 친구가 소중하던 시절, 어른들 말마따나 낙엽 굴러가는 것만 봐도 웃음이 나던 시절에 만난 한 친구다. 그 아이는 기자에게 여름과 같은 존재다. 무대 위에서 연기하는 그 아이의 모습은 여름 햇살보다 밝게 빛난다. 가끔은 아지랑이처럼 아른거리다 이내 시야에서 사라져 버릴 만큼 뜨겁게 꿈을 향해 나아간다. 바쁜 일상에 치일 때면 그 아이의 하루는 온종일 비가 내린다. 그럼에도 그 아이는 언제 그랬냐며 쨍하고 빛난다. 한번은 그 아이에게 “넌 연꽃 같은 사람이야.”라고 전한 적이 있다. 한여름 더위를 이겨내며 진흙 속에서도 피어나는 연꽃이 결국 무엇이든 해내는 그 아이와 정말 닮았다고 생각했다. 기자는 여름을 담은 그 아이를 곁에서 바라보며 기자 또한 무언가를 해내고자 하는 마음을 먹고, 용기를 얻는다.

5월 30일은 그 아이의 생일이다. 제 생일을 챙기는 것에도 큰 흥미가 없는 기자지만, 그 아이의 생일은 기자가 1년 중 손꼽아 기다리는 날 중 하나다. 5월에 접어들고 캘린더에 저장된 알림을 본 순간부터 기자는 그해 생일선물을 고르기 시작한다. 매년 서프라이즈를 준비하지만, 거짓말에 소질이 없는 기자는 생일이 오기도 전에 다 말해버리고 만다. 하지만 그것이 그 아이와 기자에게는 연중행사처럼 자리 잡았다. 올해는 이 기사가 그 아이에게 깜짝 선물이자 소중한 기억으로 남길 바라며 글을 쓴다. 작년 기자의 생일에 그 아이가 건네준 편지에는 “난 너의 색깔을 사랑하니 두려워 말고 기억하고. 너의 머리 위에는 늘 무지개가 뜰 거야.”라고 적혀있었다. 끝날 것 같지 않던 여름 장마가 지나고 맑게 갠 하늘에 떠 있는 무지개, 그 아이에게 기자는 그런 존재가 되고 싶다. 여름이 몰고 온 여름에 기자는 또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는다.

SNS 기사보내기

저작권자 © 홍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최신기사

하단영역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