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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문학의 ‘영원한’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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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모두에게 공평하다. 죽음은 피할 수 없으며 우리 모두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죽음을 자유와 해방이라 보는 시각도 존재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죽음이 주는 막연한 두려움에 압도되곤 한다. 죽음에 대한 초연함보다는 생에 대한 강한 의지가 인간의 본능과 더 가깝기 때문이다. 필자는 오랜 기간 죽음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곤 했다. 죽는 순간 고통은 없는 것인지, 죽고 난 이후 우리의 존재는 어떻게 되는지 등에 대해서 말이다. 이러한 생각들은 일본의 문학을 접하고 나서 더 심화됐다. 이유는 일본 문학에서 자살이 꽤 빈번하게 등장하는 소재이기 때문이다. 일본 유명 작가로 주로 무라카미 하루키(むらかみ はるき, 1949~), 가와바타 야스나리(かわばた やすなり, 1899~1972), 다자이 오사무(だざい おさむ, 1909~1948) 등을 지목할 수 있는데, 이 세 작가의 공통점은 모두 죽음이라는 단어에 있다. 저명한 현대 문학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저서에서 등장인물의 죽음이 줄거리의 배경 내지 주요 사건으로 등장하는 경우는 꽤 빈번하다. 그의 저서 중 가장 잘 알려진 『상실의 시대』의 줄거리 역시 주인공의 친구 ‘키즈키’의 자살이 중요한 서사 역할을 한다. 이러한 죽음이라는 소재는 일본의 근대 문학에서 더 잘 드러난다. 일본 근대 문학의 주요 작가로 여겨지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과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에서도 죽음이라는 소재가 작품 곳곳에 등장하는데, 이 두 작가는 실제로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들 외에도 수많은 일본 근대 작가들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이러한 점에서 일본의 근대 문학과 죽음을 떼어 놓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작가의 생애는 작가의 의식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작품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당시 시대적 배경을 고려해 보면, 근대 시기의 일본은 봉건사회에서 시민사회로의 전환을 맞이하던 시점이었다. 그러나 일본의 시민사회는 구세력에서 신세력으로의 권력 이양을 통해 이루어진 억압된 형태의 사회였기 때문에, 예민하고 섬세한 정신을 지닌 작가들에게 당대의 현실은 큰 내적 분열을 경험하게 했다. 에밀 뒤르켐(Emile Durkheim, 1858~1917)의 자살 이론에 따르면 개인과 사회의 통합 정도가 미약할 경우, 개인이 사회에서 설 자리를 찾지 못하고 삶에 대한 의욕을 상실할 가능성이 커진다. 이 이론을 바탕으로 하면 근대 시기 일본의 사회 분위기는 작가들의 개인사에도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이처럼 일본 근대 작가들이 스스로 죽음을 택한 데에는 복합적인 요인들이 작용한 것으로 보이며, 이러한 작가의 생애는 일본 문학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리라 예상된다. 그렇다고 해서 죽음이라는 소재가 일본 문학에 짙은 어두움을 드리우기만 한 것은 아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생전 죽음을 미화하고 싶다는 말을 종종 했는데 『설국』이라는 작품에서 보이듯 그의 의도는 죽음을 아주 미적이고 섬세하게 묘사함으로써 구현되었다. 이처럼 일본인의 입장에서 죽음, 특히 자살은 우리나라와 같이 쉽게 언급하기 어려운 대상이 아니라 존경의 대상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일본인에게 자살은 스스로 행하는 가장 극단적인 공격행위이지만, 자신에게 공격을 행하는 목적은 다름 아닌 오명을 씻고 평판을 회복하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본에는 죽은 자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보다는 오히려 그들을 동경하고 자주 회자하는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었다.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 문학 곳곳에서도 죽음이라는 소재는 빈번히 등장한다. 그러나 필자가 특히나 일본 문학과 죽음을 함께 연상했던 이유는 아마도 자살로 생을 마감한 작가들이 아직도 일본 내에서 큰 존경과 환호를 받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죽음에 대해 자주 생각하는 자들은 죽음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보고 이야기할 수 있다. 따라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들의 이야기에는 왠지 모를 우울함이 깃들어 있지만 죽음을 화두로 여기는 사람들만이 쓸 수 있는 우울한 활기가 배어있다. 이것이 필자가 느끼는 일본 문학의 이미지이자 정체성이다. 자살한 작가들의 이름을 붙인 문학상이 많은 것에서 알 수 있듯, 일본은 자살에 관대하다. 이러한 관대함은 자살한 작가들이 모두의 기억에서 잊히는 사회적 죽음을 면하게 해주었다. 스스로 죽음을 택했지만, 사회적으로는 죽지 않고 영원히 존재하는 작가들은 일본 근대 문학의 빛과 그림자이다. 필자는 생과 죽음, 우울과 활기, 소멸과 영원 등의 거듭된 모순이 내재하는 일본 문학을 평생 놓지 못할 것 같다.

 

 

[참고문헌]

이기섭, 「일본근대작가의 자살에 대한 고찰」, 『일본어문학』, 일본어문학회,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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