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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지 않을 순간을 위하여

공연 연출가 박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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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과 뮤지컬은 관객들에게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순간을 선사한다. 때로는 단 한 장면으로 극과 사랑에 빠지게 하기도 한다. 관객들에게 찰나의 순간을 선물하는 박소영 공연 연출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박소영 공연 연출가
▲박소영 공연 연출가

Q. 공연 연출가라는 직업이 생소할 독자들을 위해, 공연 연출가가 무엇을 하는 직업인지 소개를 부탁한다.

A. 엄청 간단하다. 영화감독이나 드라마 PD와 연출이 하는 일들을 무대에서 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같은 직업이기도 하다. 무대와 관련된 모든 것들, 홍보같은 작품의 외적인 부분들을 제외한, 공연을 올리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담당하는 직업이다. 프리 프로덕션(Pre-Production)이라고 해서 배우나 스태프를 구성하기 전 단계부터 참여해 작품을 만드는 것까지 함께 하기도 하며, 완성된 작품을 의뢰받아 작품의 시각화를 어떻게 할지 생각하는 단계부터 참여하기도 한다. 작품에 따라 다양하다. 간단히 말해 극의 시각화를 담당한다고 보면 된다.

 

▲뮤지컬 '아일랜더'의 무대 위에 서 있는 박소영 연출
▲뮤지컬 '아일랜더'의 무대 위에 서 있는 박소영 연출

Q. 과거 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학창 시절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연극영화과에 입학했다고 말했다. 드라마나 영화가 아닌 연극과 뮤지컬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A. 사실 학창 시절엔 연극이나 뮤지컬보다 영화나 드라마에 더 관심이 많았다. 모든 것에 있어 시큰둥한 학생이었는데 ‘이야기’에 관련된 것만 너무 재미있었다. 어린 시절에는 책, 조금 커서는 영화랑 드라마에 관심이 있었다. 그러던 중 “내가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 되려면 ‘연기’라는 걸 몰라도 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연기라는 것 자체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그리고 연기를 공부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나 찾아보다가 중앙대학교 연극영화학과에 연출전공으로 입학했다. 학교에 들어가서 처음으로 연극을 만들었는 데, 연극의 생생함이 너무 좋았고, 배우들, 스태프들과 같이 한편의 작품을 만드는 과정이 내가 추구하는 삶과 닮아있었다. 모든 게 결과중심이라 생각했었는데 연극을 만드는 과정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대부분 두세 달 정도의 연습 과정을 거쳐 결과를 내는데, 결과뿐 아니라 과정이 너무나도 생생하고 아름다우며 내가 추구하는 삶의 방향성과 닮아있어서 연극이 라는 장르에 빠진 것 같다. 그래서 대학 시절에 치열하게 학교 생활을 했다. 다른 건 아예 염두에 두지 않았을 정도로 공연만 했던 것 같다. 한번 빠진 이후로는 한눈팔지 않고 쭉 이 길을 걷고 있다.

 

Q. 공연 연출가는 무대, 배우, 스토리 등 공연의 모든 요소를 총괄해야 하는 것으로 안다. 뮤지컬 배우만큼이나 다재다능한 능력이 필요해 보이는데, 연출가에게 있어 가장 필요한 역량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A. 공연 연출가에게는 많은 역량이 필요하다. 그중에서도 사람의 재능을 알아볼 수 있는 ‘안목’이 중요한 것 같다. 또한 사람들과 소통하는 방법을 아는 것. 그리고 그 사람들을 자연스럽 게 이끌 수 있는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공연은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연출가는 조율을 하는 사람이고 배우와 스태프들의 가장 좋은 부분을 끄집어내야 한다. 즉, 사람들의 재능을 세심하게 알아보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함께 공연을 만들어 나가는 사람들을 잘 관찰해야 한다.

 

Q. 배우가 이야기와 관객을 잇는 매개체라면, 연출가는 관객이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방식을 제시한다고 생각한다. 극을 연출할 때 가장 중시하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하다.

A.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관객이 작품을 잘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연출가는 창이나 문이 되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회전문, 미닫이문, 자동문 등 건물에 적합한 문이 다르듯 작품마다 어울리는 게 다르다. 연출가는 그 방향을 제시하는 사람이다. 그 작품이 무엇을 말하느냐에 대해 집중한다. 사실이 중요한가, 컨셉이나 개념이 중요한가, 형식이 중요한가. 즉, 작품이 가진 ‘색깔’을 중요하게 여긴다. 예를 들어 <목소리 프로젝트> 같은 경우 개념이 굉장히 중요하다. 주제 의식을 놓치고 가지 않되 관객들에겐 강요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했다. 지금 준비하고 있는 공연은 <목소리 프로젝트> 3탄인데, 1탄 <태일>은 개념을 ‘초’로 잡았다. 2번째 작품인 <섬>은 ‘붕대’로 잡았고 이번 3탄에도 이런 개념을 활용한다.

▲목소리 프로젝트. (왼쪽부터) 음악극 태일, 음악극 섬, 음악극 백인당태영 /출처: 우란문화재단 홈페이지
▲목소리 프로젝트. (왼쪽부터) 음악극 태일, 음악극 섬, 음악극 백인당태영 /출처: 우란문화재단 홈페이지

 

Q. 연출가로 일을 한지 10년이 훨씬 넘었다. 그동안 많은 수의 작품을 작업했는데 가장 소중하거나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하다.

A. 소중하지 않은 작품은 없다. 연출을 맡으면 정말 최선을 다한다. 흥행하든 아니든 똑같이 애를 쓴다. 매 작품에 많은 시간을 들이기 때문에 모두 소중한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작품은 있다. 나의 첫 작품인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 계셔>이다. 첫 작품은 잊을 수 없지 않나. 초연이 10년 전이었는데 거의 모든 회차를 모니터했다. 배우와의 약속도 있었고 다른 작품이 없었던 것도 있다. 배우들과 함께 만들어 갔던 그 순간들이 기억에 제일 남는다. <목소리 프로젝트>같은 경우에도 상업적으로 접근한 것이 아니라 우리끼리 만들었다. 연출가, 작곡가, 작가 등 각자 500만 원씩 모은 것에 지원금을 더해서 만들었다. 발품 팔아서 소품도 구했었다. 내가 조명 오퍼레이션(Operation)을 맡고 작곡가가 음향 오퍼레이션을 맡았다. 그런 과정에서 피어난 애틋함이 있다.

 

Q. 공연 연출가로 활동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은 순간이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하다.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계셔' 공연사진 /출처: 연우무대 트위터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계셔' 공연사진 /출처: 연우무대 트위터

A. 기억에 남는 순간은 많다. 배우와 작품에 대해 얘기했던 순간들도 기억에 남고 내가 몰랐던 것들을 배우가 이야기해 줬을 때, 무언가에 막혀있을 때 그걸 깨뜨린 순간들도 기억에 남는다. “누군가와 함께하고 있구나. 혼자 하는 게 아니구나. 도움을 받으면 되는구나.”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힘든 순간에 손을 내밀어 준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서 공연을 만드는 과정이 ‘삶’과 같다고 생각했다. 물론 수상했을 때도 기억이 난다. 그런 영광스러운 순간들도 당연히 기억에 남고, 첫 공연을 올렸을 때도 기억에 남는다. 관객들의 얼굴들이 떠오른다. 잊지 못할 순간들이 있는 것 같다. 특별했던 순간만이 아니라, 평범한 순간들도 기억에 많이 남는다. 평범한 일상들로 채워진 삶에 가끔씩 이벤트가 터지는 것처럼, 그런 평범한 순간들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Q. 연출가의 입장에서, 뮤지컬과 연극의 가장 큰 매력이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A. 공연은 찰나의 순간들로 이루어진다. 다시는 똑같은 순간이 반복되지 않기에 더 가치 있는 것 같다. 2개월이라는 연습 기간 동안의 뼈를 깎는 연습을 통해 그 찰나의 순간들을 만들어 나간다. 공연은 우연이나 즉흥에 기대지 않고 수많은 연습과 약속으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더 아름다운 것 같기도 하다. 어떻게 보면 연습과 단련을 통해 결과를 만들어 낸다는 간단한 삶의 가치, 그리고 결과를 내기 위해선 과정이 필요하다는 간단한 이론을 늘 깨우쳐 준다. 그런 점이 마음에 든다.

 

Q. 뮤지컬 프레스콜에서 “소외 받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라고 밝힌 바 있다. 극을 통해 관객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공통된 메시지가 있다면 무엇인지 궁 금하다.

A. 늘 그런 이야기가 좋다.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도 그렇고. 남들이 관심 갖지 않는 이야기, 공감대를 이룰 수 있는 이야기, 동시대성을 가진 이야기가 좋다. 지금 우리가 함께 공부하거나 생각해 봐야 할 문제들. 예를 들면 기후 문제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런 동시대성을 놓치지 않는 작품들이 좋다. 생각할 거리를 주는 작품이 좋다. 그런데 그걸 강요하는 방식이 아니라, 관객들과 같이 생각해 볼 수 있는, 함께 공유하는 시간이 좋다.

 

Q. 공연계에서 일을 한다는 것은 불안정한 수입과 창작의 고통 등 어려운 점이 많을 것 같다. 공연 연출가로 활동하면서 힘든 점은 없었는지 궁금하다.

A. 불안함이 있다. 또, 창작 과정은 늘 힘드니까. 항상 제 뜻대로 되지 않고, 결과가 생각보다 못 미칠 때도 있다. 여러 가지로 어려운 점이 많은 길인 것 같긴 하다. 일이 너무 고되고 안정적이지 못하니까 같이 하고 있는 친구들 중에서 그만둔 사람들도 많다. 사실 그렇게 따지면 그만둘 이유밖에 없다. 보상이 늘 충분한 직업은 아니다. 그렇기는 한데, 이 가치라는 게 보상 같은 걸로만 따질 순 없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만족도도 있고, 극을 만들었을 때 스스로 느끼는 성취감 등 아직은 그런 것들이 더 좋다. 어떤 순간들, 어떤 찰나들, 성취감, 때로는 공연을 직접 봤을 때 만족도. 그런 것들이 이 일을 계속할 수 있게 한다.

 

Q. 마지막으로, 공연계에서 일하고자 하는 후배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린다.

A. 어렵다. 사실 공연계에서 일을 한다는 건 쉬운 길이 아니다. 잘 되는 사람보다 안 되는 사람이 더 많고, 되는 사람들도 꾸준히 잘되리라는 보장이 없는 곳이다. 자신의 노력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 이뤄지지도 않는다. 가시밭길 같은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무엇에 가치를 두었는가, 이 일을 하고 싶은 이유가 무엇인가,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나 자신에 대해 많이 생각해 볼 수 있는 직업이다. 함께 하는 사람들이나, 같이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으니까. 자신이 그런 것에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면 충분히 가볼 만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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