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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하지 않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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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한 학기의 다짐을 생각한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조금은 덥게 느껴지는 새벽에 이번 학기 마지막 달콤쌉싸름을 작성하고 있다. 이번 글은 편집국장의 논평이라기보단 수기에 좀 더 가깝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한 학기를 끝내는 만큼 이번 한 번쯤은 세상에 대한 이야기 대신 기자 개인의 생각을 글로 풀어보고 싶었다. 둘 다 그다지 밝은 편이 아닌 건 마찬가지겠지만. 

애니메이션 영화<시간을 달리는 소녀(時をかける少女)>(2006)의 주인공 마코토는 친구 치아키가 미래로 돌아감에 따라 이별을 겪어야만 한다. 영화의 절정부, 노을이 지는 강가에서 치아키는 마코토에게 마지막으로 좋아한다는 고백 대신 “넘어지지 않게 앞 좀 잘 보고 다녀.”라는 퉁명스러운 한 마디를 뱉는다. 이에 마코토도 빨리 돌아가라며 아쉬워하는 기색 따위는 없이 치아키의 등을 떠민다. 그렇게 치아키가 사라지고, 마코토는 자신이 왜 우는지도 모른 채 눈물을 펑펑 흘린다. 그 순간 마코토의 뒤에 다시 나타난 치아키는 “미래에서 기다릴게.”라는 마지막 인사를 전하고, 마코토도 “응, 빨리 갈게. 뛰어갈게.”라고 약속한다. 본래 의도와는 다르게 마코토, 고스케와 절친이 되어버린 치아키는 현재에 하루라도 더 있으려다 마코토에게 시간 여행을 들켜버렸다. 이제 치아키에게 ‘변하지 않는’ 소중한 것은 본래의 목적이었던 불타버린 그림이 아니라 마코토와 함께 했던 시간이다. 그렇기에 그는 마코토에게 미래에서 만나자는 이루어지지 않을 약속을 청한다. 자신의 미래에 마코토가 존재할지 아닐지도 모르는 주제에 말이다.

우린 모두 변하지 않는 것을 찾으려 헤맨다. 영원하지 않으리라는 걸 알면서도 ‘내 마음은 영원해.’ 같은 말을 속절없이 뱉어낸다. 동시에 변화를 두려워하기도 한다. 외계 문명의 침공 같은 막연한 상상을 하며 ‘만약 그런 상황에 부닥치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을 해보기도 하고, 변하는 환경과 관계를 외면하고 피해 보려 애를 쓴다. 치아키의 느닷없는 고백을 받고 나서 그 상황 자체를 피하려 시간을 여러 차례 돌린 마코토처럼. 하지만 변화를 회피하려는 시도는 더 큰 파장이 되어 돌아온다. 시간을 돌린다는 마코토의 선택은 같은 반 친구의 왕따, 고스케의 자전거 사고, 그리고 치아키가 자신은 미래에서 왔다는 사실을 밝히는 결과를 가져왔다. 하지만 이 시련들이 ‘변하지 않는 것’을 찾지 못하게 하거나 망치고 있는가? 영화의 줄거리를 따라가다 보면 일련의 사건들은 오히려 마코토와 치아키가 서로를 ‘변하지 않는 것’으로 여기게 만드는 장치로 작동한다, 어쩌면 우리가 변화를 회피하려는 시도와 그에 따른 사고까지가 변화라는 전체 과정에 포함된 건지도 모른다.

절대 오지 않을 것 같았던 1학기 종간이다. 그리고 이젠 피할 수 없는 변화를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한다. 기자와 3학기 동안 함께했던 동기 중 일부는 이제 기자라는 직책을 내려놓고 평범한 학생으로 돌아간다. 다른 몇몇 동기는 강당(S동) 211호에 기자와 함께 여전히 남아있다. 새로운 사람이 기자실에 첫발을 내디딜 것이고, 지면 기사는 그동안의 신문과는 다른 이름들로 채워질 것이다. 이 변화의 바람을 정면으로 맞는 게 두렵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대대적인 구성원의 변화 이후 현재 신문사 체계가 제대로 유지될 수 있을지, 더 좋은 체계를 만들고 교육을 진행할 수 있을지, 더 나은 편집국장이 될 수 있을지 등 걱정은 산더미다. 하지만 기자는 마코토와 치아키처럼 시간을 돌릴 수 있는 능력도 없고, 이 변화를 외면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그 안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이 무엇일지 찾아볼 시간과 그 과정을 함께해 줄 동료가 필요할 뿐이다.

기자가 처음으로 썼던 오피니언을 기억하는가? 작년 2학기 개강호인 1313호 ‘기자프리즘’에서 ‘여름은 성장의 계절’이라는 제목을 붙인 글을 독자들에게 선보인 적이 있다.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 성장의 계절이 시작되는 시기로 우리를 다시금 데려다 놓는다. 하루가 다르게 푸르러지는 나무와 머리 위로 내리쬐는 햇빛은 이젠 다시 성장하고 변해야 하는 계절이라고 속삭인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은 여전히 존재한다. 한 학기 동안 부족했던 편집국장을 믿고 따라와 준 기자들에 대한 고마움과 3학기 동안 기자의 시간에 함께 해주었던 동기들에 대한 애정, 다음 학기엔 지금보다 더 좋은 신문을 독자들에게 보여주겠다는 다짐이 그것이다. 여름 동안 각자 성장과 변화를 겪은 뒤 만나자. 손에는 그 과정에서 찾은 ‘변하지 않는 것’을 하나씩 든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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