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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교 김가현(국어국문2) 학우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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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3시 10분. 이제는 그다지 늦었다고 생각되지 않는 시간에 기자의 이름만을 달랑 남겨놓은 빈 페이지를 노려보고 있다. 뚫어져라 쳐다본다고 해서 기사가 써지는 것도 아닌데, 과도하게 섭취한 카페인은 사고를 잠시 멈춘 채 멍하니 빈 화면만 바라보게 만든다. 특히, 본 칼럼은 기자의 퇴사 전 마지막 기사라는 특수성까지 갖추고 있어 더욱이 한 글자 한 글자 이어 나가기가 버겁다. 자칫하면 ‘힘들었다. 하지만 뿌듯했다. 홍대신문 안녕!’하는 초등학생 그림일기가 될 것 같고, 여차하면 ‘나 힘들었던 것 좀 알아주세요!’하는 진부한 호소문이 될 것 같아 도통 기사의 방향성을 잡기가 어렵다. 그럼에도 마감 시간은 다가오기에,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내보고자 한다.

기자는 수시 입학생답게 중고등학생 때부터 교내 활동에 관심이 많았다. 각종 대회부터 동아리, 학생회까지 할 수 있는 활동은 모조리 섭렵했다. 타인에게는 재수 없는 수시생의 말로 들릴 수 있겠지만, 정말 재밌어서 참여했고 결과에 상관없이 나를 키워주는 ‘경험’이 될 거라는 생각에 뿌듯했다. 그땐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사실 21살이 되어 돌아보면 ‘불안함’이라는 감정을 애써 모른척해 왔던 것도 같다. 15살의 기자도, 17살의 기자도, 19살의 기자도 모두 열심히 살아왔지만, 그 이유에 대해서는 자신 있게 답할 수 없다. 기자의 부모님께서 고등학생의 기자에게 “왜 그리 안달하면서 살아?”라고 진지하게 물어보셨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그냥 바쁘게 살아야 할 것 같아서 그렇게 살았다. 그리고 이는 예외 없이 스무 살의 기자에게도 적용돼 강당(S동)으로 발을 이끌었다. “바쁘게 살고 싶어서 본지에 지원했다.”라는 선배 기자의 말을 들어보면 대부분의 기자가 비슷한 이유로 모이게 된 듯하다.

늘 그래왔듯이 바쁘게 살고자 입사한 신문사는 정말 바빴다. 진부한 호소문을 쓰지 않기로 다짐했으니 구구절절 말하진 않겠지만, 생활의 중심이 신문사에 맞춰질 정도로 바빴다. 그렇지 않으면 기사를 뽑아낼 수가 없었다. 정기자가 된 이번 학기가 돼서야 신문사 활동과 생활의 균형을 맞추는 노하우가 생겼다. 기계처럼 쓰고, 기계처럼 읽으면 된다. 그럼, 한주가 끝나고 기획서 회의를 하고, 또 기계처럼 쓰고 읽으면 된다. 그러다 보니 퇴사가 다가왔다. 기계처럼 행동하지 않으면 ‘나는 이걸 왜 하고 있지?’부터 시작해서 종국엔 너는 왜 그리 안달하면서 사느냐는 부모님의 물음에까지 닿기 때문에 그저 머리를 비우는 수밖에 없다.

그동안 열심히 머리를 비웠으니 이제 채워야 할 시간이다. ‘정말 왜 신문사에 입사해서 팔자에도 없는 기자 생활을 했을까?’, ‘금, 토를 다 반납하면서도 퇴사하지 않도록 나를 붙잡는 건 무엇이었을까?’ 카페인으로 삐걱이는 머리를 애써 돌리며 찾은 답은 곁에 있는 동료들에게로 향한다. 본지에 입사 후 기자는 이상할 정도로 강한 소속감을 느꼈다. 죽는 소리를 하다가도 원고지 30장 분량의 기사를 연달아 찍어내는 동료 기자를 보면 입을 다물고, 잠을 자지 못해 서로 헛소리를 하면서도 즐거웠다. S동 211호는 그런 공간이었다. 때로는 원수가, 때로는 상사가, 때로는 친구가 되어주는 이상한 사람들이 있는 공간. 절대 울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정말로 S동 211호, 신문 보관대 옆 내 자리를 떠나야 할 시간이 오면 조금은 울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자리를 지켜줄 57기 동료 기자들에겐 감사함을, 함께 삶의 다른 국면을 맞이할 기자에게는 용기를 주고 싶다. 혹자는 ‘고작 신문사 활동 기간 끝나서 나가는 걸로 엄청 과장한다.’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함께 ‘동고동락’한 동료 기자들은 이 마음을 백분 이해해 줄 것이라고 믿는다.

이제 정말 수습기자, 준기자, 정기자 직책을 벗고 ‘본교 김가현(국어국문2) 학우’로 돌아갈 시간이다. 어설펐던 첫 기사부터 눈물 자국 가득한 마지막 칼럼까지 함께 해준 독자에게도 감사의 말을 전한다. 요상하고 애틋한 S동 211호, 이제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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