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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안정감을 담은 그릇

도예가 정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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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일상에서 수많은 그릇들을 접하곤 한다. 이 중 유독 자주 찾게 되는 그릇이 있는데, 그 이유로 그릇의 안정감을 들 수 있다. 사람들에게 그릇의 안정감을 전달해 주기 위해 매일 작업하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정헌진 도예가를 만나 얘기를 들어보았다.

 

▲정헌진 도예가/ 출처:쿡앤셰프(cook&chef)
▲정헌진 도예가/ 출처:쿡앤셰프(cook&chef)

Q. 도예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는지 궁금하다.

A. 고등학교 재학 시절 미술 입시를 했다. 미술 입시의 여러 분야 중 적성을 고려해 봤을 때, 흙을 만지는 도예가 나랑 맞겠다는 생각이 들어 도예를 시작하게 됐다. 같이 그림을 그리던 선배들이 도예를 많이 선택해서 우연히 도자기를 접하게 됐는데, 이 직업이면 내가 평생 해도 후회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 도예를 선택했다.

 

▲정헌진 도예가의 모습/ 출처:쿡앤셰프(cook&chef)
▲정헌진 도예가의 모습/ 출처:쿡앤셰프(cook&chef)

Q. 현재 구체적으로 어떠한 분야의 작업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A. 도자기는 조형 목적으로 사용되는 그릇과 실생활에서 사용하는 그릇으로 나뉜다. 실생활에서 사용하는 그릇을 ‘생활 자기’라고 부르는데, 나는 실생활에 필요한 그릇을 만들고 빚어내는 일을 한다. 도예 일을 하는 사람 중, 경제활동을 하지 않고 자기만의 생각을 표현하는 데에 더 집중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나는 경제활동도 하면서 사람들이 그릇을 사용하고자 하는 여러 목적을 충족시키는 일을 하고 싶었다. 한 사회의 일원으로서 같이 소통할 수 있고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것에 대해 공유하는 것이 내 도예의 목표이다.

Q. 도예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A. 내가 좋아하는 선을 발견할 때 가장 매력을 느낀다. 미켈란젤로(Michelangelo, 1475~1564)나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 같은 예술가들은 엄청난 창조를 했다. 사람이 그전까지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창조물을 만들어 낸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가 무언가 큰 창조를 할 수 있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위대한 창조를 할 수는 없다. 자신들만의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전개하려고 노력하지만, 나는 그들을 따라가지 않았다. 조선시대의 청자, 백자들의 선을 보면서 나만의 선을 찾기 위해 노력했고,  그 선을 찾아냈다. 그게 도예의 굉장한 장점이다. 예전 것들에서 보이는 좋은 선을 나름대로 재해석해서 현실에 있는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 도예의 가장 큰 매력이다.

 

▲정헌진 도예가의 생활 자기/ 출처:쿡앤셰프(cook&chef)
▲정헌진 도예가의 생활 자기/ 출처:쿡앤셰프(cook&chef)

Q.  도예가가 생각하는 ‘잘 만든 그릇’이란 무엇인지 궁금하다. 또한 잘 만든 그릇을 위해 작업 시 어떤 점을 고려하는지 궁금하다.

A. 이건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구분하는 것과 맥락을 같이한다. 일반 사람들이 좋은 사람, 나쁜 사람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것처럼 그릇도 마찬가지다. 내가 생각하기에 잘 만든 그릇은 쓰임이 정확한 그릇이다. 예를 들어 집에 컵이 여러 종류가 있다고 하자. 하지만 유독 손이 많이 가는 컵이 있다. 이 컵에 커피를 계속 마시고 싶다든지 그런 거 말이다. 그 이유는 바로 그 컵의 ‘그립감(grip感)’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안정감이라고 할 수도 있다. 사람을 만났을 때 안정감이 느껴지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 그릇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공예를 하는 목적은 서로 안정감을 갖고 그것을 공유하고자 하는 목적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릇을 만들 때 안정감을 굉장히 중요시한다. 안정감을 주기 위해 노력하며 그릇을 만든다.

Q. 그릇의 안정감에 대해서 조금 더 얘기를 해줄 수 있는가?

A. 공예를 처음 시작하고 지금 이 시대가 너무 촉각적이고 감각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릇이 너무 화려하게만 나오니까 기본에 충실하자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러한 생각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걸 설명하기 위해 노력하고 나를 찾다 보니 그릇의 안정감에 대해서 깨닫게 됐다. 그릇을 쓰면서 어딘가에 놓았을 때 그 조형물이 안정감이 있어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그때부터 그릇의 안정감을 중요하게 여기게 됐다.

Q. 도예가로 활동을 하면서 힘든 점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A. 도예뿐만 아니라 공예는 자신만의 작업을 하는 것이다. 도예가 생산을 하는 일이다 보니, 작업을 끝까지 마무리 짓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그래서 남들보다 정신적인 노동이 좀 많은 편이다. 또 재료와의 소통이 중요하다. 흙의 성질을 이용해야 하고 그릇이 구워지는 과정에서 그것을 해치지 않게 주의해야 하는 등 제약이 많다. 이렇게 제약이 많은 상황에서 나만의 선을 발견해야 하고 창조도 해야 하니 이런 부분이 조금 힘들다.

Q. 도예가로 활동하면서 기억에 남는 특별한 경험이 있는지 궁금하다.

A. 내 선을 발견했을 때가 가장 특별하고 기억에 남는다. 왜냐하면 그 선은 나만이 느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선을 발견하면 또 다른 나만의 선을 발견하고 싶어 노력하게 된다. 선을 발견하게 되는 특별한 주기 같은 건 없다. 그냥 문득 선을 새롭게 발견하게 되는데, 그게 소름이 끼칠 정도로 멋있어서 가장 인상 깊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정담' 도자기 공방/ 출처:쿡앤셰프(cook&chef)
▲'정담' 도자기 공방/ 출처:쿡앤셰프(cook&chef)

Q.‘정담’ 도자기 공방을 운영하고 있는데, 공방에 대한 간략한 설명 부탁한다.

A. 공방이라기보단 작업실의 개념이 더 크다. 어떤 작업을 하기 위해선 작업실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유명한 요리사들이 와서 그릇 제작을 맡기면 주로 이곳에서 작업을 한다. 도자기를 판매하는 상점은 따로 운영 중이다. 핸드폰 매장이 따로 있고 그것을 생산하는 공장이 따로 있는 것처럼 나도 그 둘을 분리해서 현재 운영하고 있다.

Q. 작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그릇이 있는지 궁금하다.

A.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도예가는 현재와 비교했을 때 이전에 자신이 만든 그릇을 만족스러워하지 않는다. 그릇을 빚을 때 오랫동안 좋은 그릇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작업한다. 하지만 이 ‘좋은’의 기준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금씩 변한다. 10년 전의 좋은 그릇과 지금 좋다고 평가되는 그릇은 다르다. 크기와 높이는 같을 수 있어도 선이 다르다. 그래서 이전에 내가 만든 그릇은 나에게 모두 부족해 보인다. 이전의 작품을 계속 보완하고 보충해서 더 나은 그릇을 만들어 내는 작업 중이다.

 

▲정헌진 도예가의 그릇들/ 출처:쿡앤셰프(cook&chef)
▲정헌진 도예가의 그릇들/ 출처:쿡앤셰프(cook&chef)

Q. 도예가로서 보람을 느낄 때가 언제인지 궁금하다. 

A. 하나의 프로젝트를 완성했을 때 보람을 느낀다. 누군가 그릇 제작 의뢰를 할 때, 원하는 것에 대해 나에게 구체적으로 얘기하지 않는다. 보통 자신이 추구하는 느낌만을 얘기하고 나는 그것을 토대로 재해석하여 그릇을 만든다. 의뢰인이 내가 만든 그릇을 보고 자신이 원하던 것이라는 반응을 보일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

Q. 도예가로서 향후 목표가 있는지 궁금하다. 

A. 도자기 만드는 일을 꽤 오래 했지만, 지금보다 더 완성도를 높이고 싶다. 사람들은 시대에 맞게 예술품이나 도구를 사용한다. 그릇은 전승되는 것이다. 내가 그릇을 만들면 후배들은 내가 만든 그릇을 참고한다. 그렇게 그릇이 점점 기존의 것들보다 뛰어나게 변하는 것이다. 누군가 사라지면 멈추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대체할 사람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후배들에게 귀감이 될 수 있는, 그런 그릇을 만들고 싶다.

Q. 순수 미술 계열 또는 예술 창작 관련 진로를 고민하고 있는 학우들에게 한마디 부탁한다.

A. 순수 미술이나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만의 색깔을 내려고 한다. 자신들의 취향이 너무 확고하다. 자신이 아직 누군지도 잘 모르면서 창조라는 말을 너무 쉽게 한다.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사회에 나오면 사람들이 자신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고 느끼기 쉽다. 하지만 현실과 취향의 차이를 잘 접목할 필요가 있다. 둘의 거리를 좁혀야 한다. 그릇과 같이 자신의 작품을 사람들에게 판매하려면 어설픈 스토리텔링으로는 안된다. 정확한 이론과 나만의 관점이 필요하다. 현실에 맞춰 빨리 판단하고 안정감과 같은 자신만의 단어를 만들어 내야 한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그런 여러분들을 항상 응원한다.

 

▲그릇의 '안정감'을 중시하는 정헌진 도예가/ 출처:쿡앤셰프(cook&chef)
▲그릇의 '안정감'을 중시하는 정헌진 도예가/ 출처:쿡앤셰프(cook&ch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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