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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왜 도망가야 하나요? ‘한국형 제시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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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김근식, 박병화 등 아동 성범죄자의 사회 복귀 소식이 연달아 들려오면서 출소 후 그들의 거주지를 두고 논란이 일었다. 특히, 2020년 12월 아동성범죄자 조두순이 출소 후 기존 거주지인 경기도 안산에 복귀해, 결국 피해자의 가족이 이사하게 된 일을 기점으로 성범죄자의 주거지를 제한하는 「제시카법」이 화두에 올랐다. 이에 지난 1월 법무부는 ‘2023년 정보 업무 보고’를 통해 한국형 제시카법 도입 추진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제시카법의 발의 배경과 함께 한국형 제시카법을 둘러싼 논쟁에 대해 알아보자.

▲지난해 10월 평화의 광장에서 아동 성범죄자 김근식의 의정부 갱생시설 입소 철회 촉구 결의대회가 열려 시민들이 김근식의 갱생시설 입소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출처: 중부일보

 

【제시카법, 어떻게 등장했을까?】

「제시카법(Jessica Law)」이란 2005년 아동 성폭행 전과자 존 코이(John Couey)에 의해 강간 살해된 9세 아동 제시카 런스퍼드(Jessica Lunsford)의 이름을 따 제정된 법으로, 12세 미만 아동에 성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를 대상으로 한다. 법의 내용은 구체적으로 △최소 25년의 형량 △평생 위치 추적 장치 부착 △학교나 공원 주변으로부터 2,000피트(약 610m) 이내 거주 금지 등을 골자로 한다. 제정 당시 가해자 존 코이는 이미 아동 성범죄 전과 2범으로 10년 형을 선고받았지만, 모범수라는 이유로 2년 만에 출소했다. 이에 미국 전역은 아동 성범죄 전과자가 2년 만에 출소했다는 것과 더불어 피해 아동과 존 코이가 같은 동네 주민이었다는 사실에 큰 충격에 휩싸였고, 주 의회에 성범죄자에 대한 엄격한 관리를 요구했다. 이후, 배심원단의 만장일치로 존 코이는 사형을 선고받았고, 주 의회가 성범죄자 처벌 강화에 대한 시민들의 요구를 받아들이면서 제시카법이 제정됐다.

이는 한국의 제시카법 논의 배경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 2021년 12월 12일(일) 아동 성범죄자 조두순이 12년 만기 복역 후 출소하면서 그의 거주지를 두고 뜨거운 논쟁이 일어났다. 조두순이 수감 전 거주하던 경기도 안산 자택에 그대로 머물면서 주민들의 거센 반발이 일어난 것이다. 실제로 안산 주민들은 조두순의 자택 앞에서 시위를 벌이거나 타지역으로 거주지를 옮기기도 했다. 주민들의 불안이 커지자, 법무부와 안산시는 ‘특별치안센터’를 설치하고 1대1 보호관찰과 24시간 위치 추적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피해자의 가족이 조두순을 피해 다른 지역으로 이사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아동 성범죄자의 거주지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강구하라는 요구가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이러한 우려에 대한 방안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한국형 제시카법이다. 이는 기존의 「전자장치부착법」 개정을 통해 재범 우려가 큰 ‘*고위험 성범죄자’가 출소하면 △초‧중‧고등학교 △어린이집 △유치원 등 미성년자 교육 시설에서 최대 500m 이내에 거주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미국의 제시카법과 비교해 100m 이상 기준이 완화됐으며 공원 역시 거주 제한 기준에서 빠졌다. 이에 윤웅장 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장은 “미국보다 인구 밀집도가 높은 점, 공원이 학교보다 많은 국내 사정 등을 고려했다.”라며 제시카법의 한국 도입 양상에 관해 설명했다.

 

【미국의 ‘제시카법’, 한국에 적용할 수 있을까?】

한국형 제시카법의 도입을 둘러싸고 다양한 논쟁이 발생하고 있다. 그중 한국형 제시카법의 핵심 쟁점은 도심 지역의 인구밀도가 높은 국내 특성상 거주지 제한 규정을 두기 어렵다는 점이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성범죄자 알림e’를 통해 신상이 공개된 서울 거주 성범죄자 423명의 주거지를 확인한 결과 한 명을 제외한 422명이 미성년자 교육 시설 500m 이내에 거주하고 있다. 이는 만약 제시카법이 시행된다면 한 명을 제외한 모두가 이사를 가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서울 시내 미성년자 교육 시설에서 직선 반경 500m 이내의 면적을 모두 합산하면 서울시 면적보다 9배 이상 넓다. 따라서, 제시카법이 적용된다면 서울시에 성범죄자가 살 수 있는 공간은 거의 없다. 이에 한국형 제시카법은 ‘서울시 성범죄 보호법’이 될 수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제기되기도 한다. 다수의 미성년자 교육 시설이 서울에 밀집돼 있기 때문에 자연스레 아동 성범죄자가 지방 중소 도시에 몰릴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이에 지난 1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500m 안에서 법원이 개별 사안의 특징을 감안해 구체적인 거리를 결정할 계획이고 이 과정에서 여러 변화를 줄 수 있도록 했으므로 우려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이때 국가가 운영하는 수용·보호 시설은 거리 제한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는 예외 조항을 두고 있다.”라며 거주 제한 거리 조정과 국가 보호 시설 활용을 통해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한국형 제시카법은 성범죄 전과자들의 거주·이전의 자유를 제한해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안성훈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제시카법은 성범죄자들의 거주 이전의 자유를 제한해 기본권을 침해한다. 「헌법 37조 2항」에 따라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공공복리를 위해 필요한 경우 권리를 제한할 수 있지만 이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은 침해할 수 없도록 규정한다.”라며 제시카법의 헌법 위법성을 주장했다. 덧붙여 안 위원은 “2015년 캘리포니아 대법원은 제시카법의 대상을 성범죄자 가석방자로 제한했음에도 해당 법이 그들을 모니터링하고 재활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방해가 된다고 판단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형을 마치고 나온 전과자들을 대상으로 법을 적용할 텐데 더 큰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라며 제시카법이 전과자의 재사회화 및 교화에 방해될 수 있음을 경고했다.

더불어 지난 12일(금) 열린 ‘한국형 제시카법 도입 시 법무 보호 복지의 역할과 과제’를 주제로 개최한 2023년 춘계 학술대회에서 제시카법이 이중 처벌의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제기되기도 했다. 윤영석 법무법인YK 변호사는 “성범죄자는 이미 형사 처벌 외에도 위치 추적 전자발찌 부착 등의 처분으로 신체적·정신적·사회적 불이익을 받고 있어 하나의 범죄에 대해 여러 번의 처벌이 가해지는 결과가 될 수 있다.”라며 이중 처벌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이에 한 장관은 “제시카법은 형벌이 아닌 **보완 처분 규정이라 이중 처벌이나 소급효 문제가 적용되지 않는다. 제시카법은 소위 ‘괴물’들에게 적용하겠다는 것으로, 구체적인 숫자를 말하기는 어렵지만 5인 이상 다수 피해자가 있는 성범죄자가 생각보다 많이 수감돼 있다.”라며 이중 처벌이라는 지적에 대한 답변과 함께 제시카법 도입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진정한 ‘피해자 중심 제도’로 나아가려면】

제시카법 발의를 두고 ‘진정 피해자를 위한 법안은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로 문제가 확장됐다. 이와 관련해서 ‘피해자 중심주의(victim-centered approach)’에 대해 알아봐야 할 필요가 있다. 피해자 중심주의란, 범죄 사건에서 피해자의 관점을 우선시하는 접근 방법으로, 특히 권력 차로 인해 발생하거나 가해자의 보복이 쉬운 △성폭력 △가정폭력 △학교폭력 사건에서 피해자의 진술과 관점을 중시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같은 종류의 피해를 당해본 적 없는 이들에 의해 수사 및 재판이 이루어져 자칫 피해자가 존중받지 못할 위험을 줄이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근래에 피해자 중심주의가 본래의 취지를 넘어 입법 과정에서 피해자의 입장을 과도하게 중시하는 경향으로까지 확대되는 양상을 보인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2018년 운송 설비 점검 중에 사고를 당한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 씨의 이름을 딴 「김용균법」, 2019년 어린이보호구역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한 김민식 군의 사고로 제정된 「민식이법」 등 최근 피해자의 이름을 딴 ‘네이밍(naming) 법안’이 대거 등장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피해자 중심주의’의 확대 양상의 하나로 여겨지기도 한다. 피해자의 사연이 갖는 파급력 때문에 신중한 고려가 생략된 채 법이 제정되거나, 인지도 제고를 위해 국회의원이 법안 발의를 남발하면서 피해자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피해자 중심주의’가 입법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상황에서 일회성 사건에 적용되는 사법과 달리 장차 발생하는 모든 유사 사건에 영향을 미치는 입법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입법에 있어 더 깊은 고려가 필요하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되기도 한다.

한국형 제시카법 논의의 계기가 된 조두순 사건 역시 영화화될 정도로 대중에게 잘 알려져 있기 때문에 법안 제정에 있어 객관성을 잃고 오히려 현실성이 부족한 법안이 될 수 있다고 비판받기도 한다. 실제로 2020년 조두순의 출소를 앞두고 법무부와 여성가족부, 경찰이 합동으로 작성한 ‘조두순 재범 방지 및 관리 방안’ 자료에 따르면, 피해자 보호책은 피해자 중심주의 원칙에 따라 당사자의 의사를 최우선으로 존중한다고 적혀있지만, 피해자가 ‘직접’ 요청해야 한다는 단서가 붙어있다. 이에 본래 취지와는 달리 피해자의 입장에서 고려되지 않은 보호책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제기되기도 했다.

이처럼 ‘피해자 중심주의’라는 이름 아래 정작 피해자는 뒷전인 성급한 입법이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지는 가운데, 한국형 제시카법이 진정한 피해자 중심주의를 달성하기 위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동국대학교 경찰행정학과 이윤호 명예교수는 『일요시사』 칼럼에서 “미국 제시카법의 주요 내용이 처벌 강화였듯이, 우리도 아동 성폭력 범죄자에 대한 양형기준을 최대한으로 높이되, 형기가 형벌의 기간이라기보다는 치료의 기간이 될 수 있도록 ***부정기형이 되면 더 바람직할 것이다. 형기 동안 치료가 우선되고, 재범의 위험이 극히 낮을 정도로 치료되거나 교화 개선됐을 때만 석방될 수 있고, 필요하다면 ****치료감호제가 추가로 도입돼 치료를 지속할 수 있게 함이 좋을 것이다.”라며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했다.

더불어민주당 권칠승 의원이 법무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조두순, 박병화처럼 10년 이상 복역한 강력 성범죄자 66명이 출소할 예정이며 앞으로 3년 동안 강력 성범죄자 183명이 사회에 돌아온다고 한다. ‘한국형 제시카법’을 두고 다양한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는 와중에도 이러한 강력 성범죄자들은 사회에 나와 시민과 함께 살아갈 것임을 상기하면서 신중하고 적극적인 법안 마련이 필요할 때이다.

 

*고위험 성범죄자: 불특정 다수 피해자를 표적 삼아 반복적으로 성범죄를 저지르고 재범 위험성이 높은 자.

**보완 처분 규정: 범죄자가 다시 범죄를 저지를 행위를 막거나 예방할 목적으로 행하는 개선 교육 혹은 보호 처분. 형사 처벌과 구분되는 대안적인 제제 수단.

***부정기형: 형의 기간을 확정하지 아니하고, 선고하는 자유형.

****치료감호제: 심신장애자와 중독자를 치료감호시설에 수용하여 치료를 위한 조치를 행하는 보안처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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