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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영, '방심석전산수도', 1806년, 종이에 엷은 색, 29.0×104.5cm

박물관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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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영, '방심석전산수도', 1806년, 종이에 엷은 색, 29.0×104.5cm
정수영, '방심석전산수도', 1806년, 종이에 엷은 색, 29.0×104.5cm

지우재(之又齋) 정수영(鄭遂榮, 1743 ~1831)은 89세의 나이까지 살면서 실경을 그린 산수화, 고사를 주제로 한 산수화, 화조화 등 여러 점의 다양한 그림을 남긴 문인화가이다. 그는 관직을 하지 않고 지리학자였던 증조부 정상기(鄭尙驥, 1678~1752)를 이어서 지도 제작을 도왔으며, 여러 지역을 유람 다니며 다양한 실경 산수를 남겼다. 그러나 직접 간 경치를 남긴 것 외에도 실경이 아닌 곳을 그린 작품도 남아있다. 본교 박물관에 소장된 <방심석전산수도(倣沈石田山水圖)>는 방작(倣作) 회화로 이전 그림을 따라 그렸다고 하여 그림 이름에 ‘방(倣)’이라고 붙인 것이다. ‘심석전’은 중국 명대 문인화가 심주(沈周, 1427~1509)의 호로 그의 산수를 따라서 그린 산수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이 그림은 소략한 필치로 104cm의 길게 펼쳐진 화면에 산수가 그려져 있다. 그림 왼편에는 배 세 척이 오는 것이 보이고, 중간 부분에도 돛이 펼쳐진 배 두 척이 가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림의 아랫부분에는 작은 누각이 그려졌는데, 경치 좋은 곳에 있는 누각이었을 것이다. 다음은 정수영이 그림에 적은 발문의 내용이다.

 

倣沈石田江湖圖 可謂依樣葫蘆 甚愧。 之又翁識□丙寅菊秋也。

심석전(沈石田)의 강호도(江湖圖)를 모방하였으나 의양호로(依樣葫蘆)라 이를 만하니 매우 부끄럽다. 지우옹(又翁識)이 병인년 9월(菊秋)에 기록하다.

 

정수영은 1806년 9월 가을날에 이 그림을 그렸으며, 심주의 그림을 모방하였다고 직접 언급하였다. 여기에 적힌 ‘의양호로’라는 의미는 글을 지을 때 자신이 새롭게 창작하지 못하고, 기존의 다른 사람의 작품을 흉내 내어 짜깁기한다는 의미로 《동헌필록(東軒筆錄)》 권(卷)1에 나온 내용이다. 화가는 스스로 심주를 흉내 낸 그림이라 칭하며 부끄럽다고 하면서 자신을 낮추고 심주를 높이는 의미가 담겨있다. 

하지만 심주의 <강호도>는 현재 남아있지 않으며, 정수영이 정확히 어떤 작품을 보고 따라 그렸는지는 알 수 없다. 발문의 오른쪽 옆으로는 대나무를 무척 사랑한 중국 위진남북조 시대 왕휘지(王徽之, 338-386)의 고사인 “대나무 없이는 하루도 살 수가 없다.”라는 의미를 담은 ‘불가무지우(不可無之又)’ 글귀와 대나무가 새겨진 인장이 찍혀있으며, 왼쪽으로는 정수영의 자(字)인 ‘군방지인(君芳之印)’과 ‘군방(君芳)’ 두 개가 찍혀있다. 정수영은 중국 문인화가 심주를 방작한 그림을 그리고, 중국의 유명한 대나무 고사 인장을 찍어 중국 문인의 정신을 그림 속에 담고자 했다. 조선 후기 문인화가 정수영이 그린 <방심석전산수도>는 매우 간략하게 그려졌지만, 그가 추구한 바를 분명히 알 수 있는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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