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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살 가치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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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에서 깬다. 방 안이 환하다. 손을 뻗어 휴대 전화를 찾는다. 몇 분을 누워 있다가 씻고, 밥을 먹고, 옷을 입고 기숙사 밖으로 나선다. 똑같은 수업을 듣고 똑같은 사람들을 만난다. 그렇게 하루를 끝낸 뒤 다시 첫 문장으로 돌아갈 준비를 한다. 우리의 일상은 ‘해야 하는 것’들로 둘러싸인 방 안에서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며 흘러간다. 반복되는 ‘해야 하는 것’들을 처리하며 살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 권태감을 느낀다. 나는 무얼 위해 살아가는 것인가. 지친 사람들은 인생의 의미와 삶의 가치에 대한 질문을 던져보게 된다. 올해 여름의 필자가 그랬다. 일주일 가량 아무도 만나지 않으면서 식사나 운동 같이 해야 할 일만 한 적이 있었다. 나흘쯤 지나자 세상에 덩그러니 홀로 놓인 듯한 고독함과 ‘계속 이렇게 살아간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는 권태감이 느껴졌다. 그런 일상을 보내다 불현듯 알베르 카뮈(Albert Camus, 1913~1960)의 『시지프 신화(Le Mythe de Sisyphe)』가 떠올랐다. 책에선 흥미로운 비유로 인생의 의미를 설명한다.

‘시지프(시지프스의 불어명)’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교활하고 꾀가 많은 인물이다. 시지프는 신들을 기만했다는 죄로 바위산 정상으로 큰 바위 하나를 밀어 올리는 형벌을 받는다. 아무리 힘을 써서 바위를 정상에 올려도 바위는 건너편으로 다시 떨어진다. 시지프는 처음부터 다시 바위를 정상에 올려야 한다. 바위를 올리는 일에는 아무런 의미도, 이익도 없다. 그저 영원히 반복될 뿐이다.

카뮈는 삶의 의미와 자살에 관한 질문을 가장 중요한 철학적 주제로 여겼고, 시지프의 형벌에서 그 답을 구했다. 시지프의 형벌은 끝없는 반복과 무의미함으로 설명된다. 우리의 삶 또한 마찬가지다. 삶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행위를 기계적으로 반복한다. 이러한 기계적 반복은 카뮈가 삶을 죽기 전까지 끝나지 않는 형벌로 여기는 이유다. 이 굴레를 벗어나고자 자살을 택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카뮈는 그들을 옹호하지 않는다. 삶이 곧 형벌일지라도 자살은 옳지 않다고 말한다. 무의미한 작업의 연속인 삶을 체념하기보단, 묵묵히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삶 자체에서 기쁨을 찾으라 권한다. 다른 가치로부터 삶의 이유를 찾을 수 없다면 삶 그 자체를 이유로 삼으면 된다. 바위가 산 반대편으로 굴러떨어지더라도 다시 밀어 올릴 생각에 시지프의 가슴은 벅차오르지 않겠는가. 카뮈는 유명한 문장으로 글을 마친다. “우리는 시지프가 행복하다고 상상하여야 한다.”

때때로 지치고 인생의 허무를 느끼더라도 우리는 살아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살아갈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어차피 우리는 바위를 올릴 수밖에 없고 올려야만 하는 운명이다. 그 운명은 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묵묵히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즐거움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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