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연쇄 반응은 이미 시작되었을지도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영화 <오펜하이머(Oppenheimer)>(2023) 는 미국 뉴멕시코주 사막 한복판인 로스앨러모스(Los Alamos)에서 ‘맨해튼 프로젝트(Manhattan Project)’에 매진하는 과학자들의 모습을 상세히 묘사한다. 영화의 주인공인 물리학자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J. Robert Oppenheimer, 1904~1967)는 이런 과학자들의 리더이자 대표자다. 전쟁을 끝내겠다는 일념 하나로 연구를 진행하던 어느 날, 정기회의에 오펜하이머의 동료 물리학자 에드워드 텔러(Edward Teller, 1908~2003)가 자신의 계산 결과를 발표한다. 텔러의 계산이 정확하다면 그들이 만드는 원자폭탄을 실제로 투하하는 순간, 방출된 우라늄-235 중성자가 연쇄 반응을 일으켜 핵분열을 반복한다. 그 끝은 지상의 모든 존재가 불에 타 사라지고 대기가 폭발하는 종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오펜하이머는 텔러의 결과를 들고 프린스턴대학교(Princeton Univerisity) 교수로 재직하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을 찾아간다. 아인슈타인과 오펜하이머는 이론이 가리키는 종말의 가능성을 걱정한다. 하지만 핵폭탄 개발을 멈출 순 없다. 영화 속 오펜하이머의 대사처럼 ‘연쇄 반응이 반드시 일어난다는’ 증거는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비록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은 0이 아니라 0에 가까운 것이지만 말이다. 이후 줄거리는 우리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다. 맨해튼 프로젝트에서 개발한 원자폭탄은 제2차 세계대전을 끝낸다. 그렇다면 오펜하이머의 인생도 여기서 끝인가? 절대 아니다. 그가 아인슈타인을 찾아가게 했던 연쇄 반응은 그의 인생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1954년 오펜하이머는 원자력협회 보안 인가 갱신을 이유로 부당하기 짝이 없는 청문회에 참여해야 했다. 아내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의 공산당 활동과 종전 이후 수소 폭탄 개발을 반대했던 행적, 원자력협회(AEC) 위원장을 공개적으로 비웃었던 일 때문이다. 아내 캐서린은 “사람들이 당신을 부당하게 취급하도록 하고, 당신을 이용해 부당한 이익을 얻도록 내버려 둔다고 해서 그들이 당신을 용서할 것 같아? 아니야.”라고 일갈하며 그에게 청문회에 나가지 말라고 한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는 결국 청문회에 참석한다. 매카시즘의 광풍이 선사하는 모욕까지도 핵폭탄으로 인한 연쇄 반응이며, 곧 그가 감내해야 하는 대가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연쇄 반응이라는 단어는 마치 다른 세상 이야기 같다. 하지만 이것들은 엄연히 우리들의 바로 옆자리에 존재한다. 이걸 무시하거나 귀찮다며 떼어놓을 수는 없다. 원자보다도 작아서, 우리가 알아채지 못했던 움직임 하나가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생각해 본 적도 없는 형태로 돌아온다. 신문사라고 이 연쇄 반응을 피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신문 구성이 뭔가 달라졌다고 생각했다면 여름 방학 동안 기자들이 행한 움직임을 알아본 것이다. 여름 방학 내내 이 움직임을 위해 스스로를 갈아 넣다시피 한 기자는 막상 이 움직임이 어떤 연쇄 반응을 가져올지 모른다. 오펜하이머와 아인슈타인처럼 십여 년 이상이 지난 후 정도면 어렴풋이 이해하게 될까. 아니면 이들은 역사에서 손꼽히는 천재들이었기에 그나마 다른 이들보다는 빨리 알게 된 걸 수도 있다. 정체는 모르지만, 그 결과는 감내해야 한다. 그건 피할 수 없는 연쇄법칙이기에. 그나마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이것들을 외면하지 않는 한편, 긍정적인 방향으로 돌아오길 간절히 바라는 것밖에 없다.

요즘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지켜보면 연쇄 반응의 영향을 모른 채 결정을 내리는 일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아니, 영향을 모른다기보다는 알면서도 오만에 빠져 머릿속에서 지운다는 표현이 좀 더 적합해 보인다. 독립에 헌신한 영웅을 공산주의자라고 낙인찍는다던가, 자기 아이를 위한 거라며 온갖 요구를 퍼붓다 못해 무고한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세우는 일 같은 것 말이다. 새로운 학기라는 움직임 하나를 맞이한 우리는 그러지 않기를. 이것이 어렵다면 오펜하이머와 아인슈타인이 영화 마지막에서 나눈 대화라도 되새길 수 있기를 바란다.

 

“앨버트. 제가 예전에 그 계산을 박사님께 들고 갔을 때, 우리는 세상을 멸망시킬 연쇄 반응을 시작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었죠.”

“나도 기억하네. 그런데 그건 왜?”

“우리가 그걸 한 것 같습니다.”

SNS 기사보내기

저작권자 © 홍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최신기사

하단영역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