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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슬아슬 엔화 900원대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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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엔화 약세로 인해 일본 경기가 회복되며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26년 만에 일본이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앞지를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9월 1일(금) 기준 엔/달러 환율은 달러당 145엔대를 기록하고 있으며 원/엔 환율에 대해서도 900원대를 기록하는 등 근 8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까지 떨어졌다. 그 결과 환전과 예금 등 엔화에 대한 투자도 급증하는 추세다. 국제적으로 신뢰가 높던 엔화의 약세 현상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이러한 상황이 지속된다면 우리나라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이번 기사에선 엔화 가치가 하락한 상황과 그 영향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엔저 현상, 그 원인은?】

엔저 현상이란 엔/달러 환율이 올라 엔화 가치가 낮아지는 현상을 말한다. 환율은 두 나라 통화의 상대적 가치를 반영하는 지표다. 따라서 엔/달러 환율의 하락은 곧 외환 시장에서 엔화의 가치가 하락하고 달러의 가치가 상승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2015년 이후 8년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한 엔화는 현재 원화 대비 900원대인 상태다.

이러한 엔화 가치 하락 현상은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과 관련지어 설명할 수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전 세계를 덮치면서 경기 부양을 위해 전 세계 여러 국가가 ‘0% 기준금리’ 전략을 실시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eral Reserve System, 이하 Fed)가 **정책금리를 1%p 인하해 0.25%까지 낮추자 세계 각국도 ***기준금리를 0%대로 내린 것이다. 이후 2022년부터 전 세계 경기가 회복세를 보이며 대부분의 국가들이 다시 금리 인상 기조를 보였다. 특히 Fed는 코로나19 발생 이후 치솟는 물가를 잡기 위해 지난 2022년 3월부터 정책금리를 0.25%에서 3.25%까지 인상했다. 하지만 일본은행(Bank Of Japan)은 미국을 따라 금리를 올리지 않고 기준금리를 0% 이하(-0.1%)로 유지하는 정책을 펼쳤다. 일반적으로 금리가 높아지면 해당 국가의 통화는 시장에서 투자자들을 끌어들인다. 그 결과 상대적으로 금리가 낮은 국가 통화의 수요는 줄어들고, 이에 따라 통화의 가치는 하락하게 된다. 지난 2023년 6월 Fed는 기준금리를 동결하면서도 앞으로 계속 올릴 것이라는 입장을 밝힌 반면 일본은행은 저금리 정책을 고수할 것이라는 의사를 내비쳐 엔화 가치는 더욱 하락하게 됐다.

그렇다면 일본이 기준금리를 0% 이하로 유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에서 찾을 수 있다. 일본은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엔화 가치 상승에 따른 경기 악화를 막기 위해 1987년부터 정책금리를 인하하기 시작했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일본 주식에 몰린 상황에서, 개인뿐만 아니라 기업까지 부동산 투자에 동참하며 일본 금융시장과 부동산 시장에 자금이 쏠리게 됐다. 이른바 *****버블경제가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버블이 심해져 물가가 계속 오르자, 일본은행은 정책금리를 인상하게 되고 결국 1991년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면서 일본 경제는 패닉 상태에 빠졌다. 일본은 1999년부터 경제를 회복시키고자 여러 정책을 펼쳤지만 경기는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고, 2000년 말 정부 부채가 100%를 넘어서면서 재정건전성 문제가 대두됐다. 일본 정부는 이러한 장기 경기 침체에서 벗어나기 위해 지난 2012년 ‘아베노믹스’라는 금융완화정책을 실시했다. 엔화를 대량으로 찍어내는 한편, 기준금리를 마이너스 금리로 책정함으로써 통화량을 늘려 ******소비자 물가지수 CPI(Consumer Price Index) 2%를 달성하는 것이 아베노믹스 정책의 목표였다. 실제 2012년 1월 약 119조 엔이었던 시중 통화량은 2020년 12월 약 607조 엔까지 늘어났다. 그 결과 낮은 금리로 인한 자금 유출이 일어나 엔화의 공급이 크게 증가하고 수요는 감소하면서 엔화의 가치가 낮아지는 엔저 현상이 일어나게 됐다.

【엔저 현상, 앞으로 어떻게 될까?】

일각에서는 엔화 가치가 145엔 이하로 떨어지더라도 일본 정부가 외환 개입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일본 정부가 작년 9월 엔화를 매수하며 시장에 개입했던 전례가 있어 시장 개입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하기는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의 간다 마사토(神田真人) 재무관은 급속하고 일방적인 환율 움직임에 적절히 대응해 나가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현재로선 일본 정부가 환율 방어를 위한 개입을 선택할지는 미지수다. 일본 입장에서는 엔저로 인한 긍정적 효과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엔화 약세로 작년 일본 상장사들은 사상 최대 영업이익(39조 1,000억 엔)을 기록했다. *******니케이 225 지수는 올 초 27,000엔대를 기록했던 것이 최근 33,400엔대까지 올랐다. 일본은행은 2022년 1월에 발표한 보고서에서 엔화 가치가 10% 하락하면 일본 국내총생산(GDP)이 약 1% 늘어나는 효과가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미국의 경제 일간지『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일본은행이 자국 수출 중심 대기업 경쟁력 제고를 위해 이례적인 엔저를 용인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일본 제조업체들이 엔화 약세 혜택을 받아 가격 경쟁력을 키울 수 있기에 일본 정부가 엔저를 용인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엔저 현상에 대해 일본 내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일본의 경제일간지『니혼게이자이신문(日本經濟新聞)』은 엔저 현상으로 인력과 자본이 유출되면서, 이는 일본의 국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도했다. 엔화 약세가 초래하는 가장 큰 문제는 에너지와 식량 수입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점이다. 일본의 식량 자급률은 40% 미만이며, 에너지 수입 의존도는 90%에 이른다. 엔화의 약세는 석유·가스 수입 비용 증가로 이어지게 되는데, 이는 곧 서민 경제에 타격을 준다. 설상가상으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원유 및 석유제품을 비롯해 국제 원자재 가격이 급등한 상황에 더해, 엔화의 가치가 급락하면서 물품을 수입할 때 전보다 더 비싼 가격을 치러야 해, 가계와 기업들의 부담이 커지고 있다. 이에 일부 수출 대기업과 해외자산을 보유한 부유층만 엔화 약세의 혜택을 받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한편 엔화는 달러화, 유로화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거래량이 많은 통화다. 엔화는 세계 경제 시장은 물론 아시아 시장에서도 많은 영향력을 차지하기에, 엔저 현상이 지속되면 아시아 지역의 무역과 통화의 투자 흐름을 불안정하게 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홍콩 신문『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아시아 통화들이 올해 들어 달러에 대해 큰 약세를 보이고 있고 아시아 통화의 가치가 1990년대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보지 못했던 수준으로 하락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엔저 현상이 우리나라에 끼친 영향】

통화의 가치가 하락하게 되면 해당 통화로 표기된 수출상품은 상대적으로 가격이 내려가면서 국제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게 된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이하 한경연)은 지난해 11월「초엔저가 우리나라 수출에 미치는 영향과 시사점」보고서를 통해 글로벌 수출시장에서 엔화의 급격한 평가절하로 인해 우리나라 수출이 168억 달러 감소했다고 밝혔다. 한경연 분석에 따르면 일본은 한국과 ********수출 경합도는 69.2로, 엔화 가치가 하락할수록 국내 무역수지는 타격을 입게 된다. 이에 일본과 수출경합도가 높은 △조선△가전△섬유△철강 기업들의 피해가 우려되고 있다. 특히 조선·철강 분야는 이미 일본산 저가 철근이 국내 건설 현장을 장악한 상태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국내 일본산 철근 수입량은 전년 대비 44% 증가한 29,000톤을 기록하는 등 값싼 일본 철강에 밀려 국내 중소형 철강사들의 상황이 어려운 실정이다.

엔저 현상은 무역수지뿐만 아니라 국내 여행수지에도 타격을 주고 있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일본을 방문한 한국인은 312만 9,000명인데 비해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중 일본인은 86만 2,000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0월 이후 무비자 개인 여행이 허용되고 엔화 약세로 여행 비용 절약이 가능해졌기에 일본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수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팬데믹 이전 대비 외국인 관광객 회복률 66%를 보이고 있는 일본과 달리 우리나라는 그보다 11%p 낮은 55%로, 지난 5월 기준 국내 여행수지는 적자를 기록했다.

한편 엔저 현상으로 인해 엔화 예금과 일본 주식 투자 역시 급증하고 있다. 올해 국내 투자자들의 일본 주식 순 매수 금액은 전년 대비 약 17배 증가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올해 8월까지 국내 투자자들은 일본 주식 3억 7,809만 달러(약 4,996억 원)를 순 매수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2,135만 달러(약 283억 원) 대비 약 17배 증가한 수치다. 엔저 현상이 장기화되고 워런 버핏(Warren Buffett)을 포함한 외국인 투자자들이 일본 주식을 사들이면서 일본 상품에 투자하는 국내 투자자들의 수 또 증가한 것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원/엔 환율의 미래가 불투명하기에 엔화에 대한 섣부른 투자는 위험하며 이를 노린 사기 또한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지속적인 디플레이션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던 일본은 엔화 약세로 인해 소비자물가(CPI) 상승률이 전년 대비 3.1%p 올랐고 서비스 물가 상승률은 2%를 넘어서면서 저성장 기로를 벗어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본은행은 지난 7월 통화 정책회의에서 단기금리를 –0.1%로 동결한다고 발표함으로써 당분간 엔저 현상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엔저 현상으로 인한 물가 상승세가 일본의 임금 인상과 내수 증대로 이어질지는 아직 지켜봐야 한다. 엔저 현상 장기화에 따라 우리나라는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수출, 관광, 투자 측면에서 각각의 대책 방안이 시급한 상황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 Fed: 1913년「연방준비법」에 의거하여 설립된 미국의 중앙은행 제도

**정책금리: 중앙은행이 특별히 관리하는 금리

***기준금리: 요약 금리체계의 기준이 되는 금리

****플라자 합의: 1985년 뉴욕에 위치한 플라자 호텔에서 미국의 달러화 강세를 완화하려는 목적으로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의 재무 장관들이 맺은 합의

*****버블경제: 주식이나 부동산에 대한 과다한 투자로, 본래의 이익배당이나 수익성 이상으로 가격이 부푼 상태

******소비자 물가지수 CPI: 미국 고용 통계국에서 매월 발표하며 인플레이션의 변동을 측정하는 중요한 지수

*******니케이 225 지수: 도쿄증권거래소에 상장된 주식 중 유동성이 높은 225개 종목을 대상으로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이 산출하는 주요 주가 지수

********수출 경합도: 양국의 수출구조가 유사할수록 경쟁이 높다는 가정하에 특정 시장에서 양국 간의 경쟁 정도를 보여주는 지표

▲1달러당 146엔까지 추락한 엔화/ 출처:Pixabay
▲1달러당 146엔까지 추락한 엔화/ 출처: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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