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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그러운 풀 내음의 공간,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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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불기 시작한 초록빛 열풍에 대해 아는가? 자칭 식물 덕후, 식물 집사가 늘어나면서 싱그러운 풀 내음의 공간, 정원이 주목받고 있다. 오색찬란 화려한 모습으로 즐거움을 선사하기도, 자연 고유의 순박함으로 지친 현대인을 위로하기도 하는 정원에 대해 더 알아보자.

 

[정원의 기원]

▲창덕궁 후원/ 출처: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최초의 정원은 대부분 미적인 아름다움보다는 실용성과 생산성에 중점을 둔 모습이었다. 먹을거리를 위한 채소와 과일, 공물로 바칠 허브류 등을 경작한 것이 그 예시다. 자신의 힘으로 땅을 비옥하게 만드는 경험은 사람들에게 자부심과 즐거움을 줬으며 마침내 지위의 형성까지 이르게 했다. 과거 갈대 외에는 아무것도 자랄 수 없었던 습지에 수메르인은 몇백 년 안에 크고 호화스러운 수렵원(hunting park)을 조성해 냈다. 그들은 이 정원에 해외에서 들여온 각종 외래 식물을 재배했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기술이 발전했다. 이는 부의 축적을 낳고, 부의 위계가 존재하는 사회를 만들었다. 더불어 부의 축적으로 얻게 된 여유는 원예에 대한 비실용적 사고방식을 형성했다. 다시 말해, 인간이 흥미와 즐거움을 위해 정원을 가꾸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불리는 바빌론의 공중정원(The Hanging Gardens of Babylon)에 대한 기록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공중정원은 고대 신바빌로니아 제국의 수도, 바빌론에 존재했던 옥상 정원이다. 1세기 히브리인 역사가 요세푸스(Titus Flavius Josephus, 37 ~ 100)의 기록에 따르면, 네부카드네자르 2세(Nebukadnessar, B.C.632~B.C.562)가 사랑하는 아내 아미티스를 위해 건설한 정원이라 전해진다. 메디아 출신 공주였던 그녀는 산으로 둘러싸여 풍요로웠던 자신의 고향과는 달리, 건조하고 척박한 평야 한가운데 위치한 바빌론에 적응하지 못해 향수병을 앓고 있었다. 그런 아내를 안타깝게 여긴 네부카드네자르 2세는 왕비가 고향의 푸른 언덕을 떠올릴 수 있도록 가장 크고 아름다운 정원을 건설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바빌론의 공중정원이다. 아직 이 공중정원이 정확히 어디에 위치했는지, 실제로 존재하긴 했는지에 대한 사실이 명확히 드러나지 않아 학계의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공중정원에 대한 기록은 정원이 실용적 목적을 넘어 아름다움과 권위의 상징으로 변모했음을 보여주기에는 충분하다.

 

[동서양의 다채로운 정원의 모습]

▲일본의 정원/ 출처:pixabay

동양과 서양은 서로 상반된 정원의 모습을 보여준다. 먼저, 동양은 자연 본연의 아름다움을 정원에 담아냈다. 중국의 정원은 자연의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을 함축시키고 지키는 것을 추구했다. 또한 식물의 상징적·도덕적 속성을 중요히 여겨, 선비의 지조와 절개를 상징하는 세한삼우(歲寒三友)로 꼽히는 소나무·대나무 ·매화나무를 조경에 주로 사용했다. 일본의 정원 역시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바탕으로 했는데, 이는 식물에 신령이 깃들어 있다고 가르치는 고대 일본의 종교 ‘신토(神道)’에서 비롯됐다. 이들은 자연의 풍경과 계절의 흐름을 정원에 형상화하기 위해 바위를 식물로 가리고 단정하고 둥근 모양으로 다듬어 산과 구름, 파도를 연상케 했다. 이에 더해 벚꽃과 매화로 봄을, 단풍나무와 계수나무로 가을을 그려냈다. 한국의 정원은 자연을 변형시키기 보다는 이를 수용하는 형식으로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드러냈다. 자연을 축소하고 모방하는 것을 넘어서 자연 그대로를 정원에 드러낸 것이다. 이 때문에 한국 정원의 핵심은 자연을 변형시키지 않고 어우러질 수 있는 위치에 정원을 조성하는 것이었다.

▲베르사유궁전의 정원(Palace and Park of Versailles)/ 출처: pixabay
▲베르사유궁전의 정원(Palace and Park of Versailles)/ 출처: pixabay

동양과는 달리 서양은 자연을 정복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고 정원을 인간의 힘으로 재구성한 자연으로 그려냈다.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의 건축가들은 수학적 법칙과 원근법을 사용해 자연과 예술이 공존하는 정원을 만들었다. 정원의 기하학적 구조는 집의 중심으로부터 이어지는 중심축을 기준으로 구성됐으며, 나무를 줄지어 심어 원근법의 선을 강조했다. 16세기에 들어서서는 정원에 신화, 고전, 정치를 접목하고자 분수와 조각상을 활용했다. 신화와 고전에 비유해 자신의 정치적 업적과 훌륭함을 과시한 것이다. 한편, 르네상스 이탈리아의 영향을 받은 프랑스의 정원에서는 기하학적 패턴이 두드러진다. 다만, 여기에는 숲을 부정적으로 여기던 당시 프랑스의 인식이 반영되었다. 이를 반영해 자연을 정복해야 할 대상으로 보고, 이탈리아보다 더욱더 엄격하고 정교한 형식을 보였다. 물의 활용에서는 조금 더 극명한 차이를 보였다. 물의 역동성을 강조하는 분수를 적극적으로 배치했던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정원과는 달리 프랑스는 물의 반사하는 성질에 더 가치를 두고 운하를 조성했다는 점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이처럼 동양의 정원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전하는 형식으로, 서양의 정원은 자연을 새롭게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발전해 왔다. 이러한 차이가 나타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먼저, 서양의 자연이 동양보다 척박하고 험난했다는 지형적인 특징을 생각할 수 있다. 중국과 일본, 한국의 자연환경을 보면 비옥한 산에서 다양한 식물들이 자라나고 계곡과 폭포에서 물이 흐르는 이상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 반면, 서양 정원의 시작점이라 여겨지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는 덥고 건조한 지중해성 기후를 갖고 있었기에 상대적으로 척박했다. 이러한 환경적 차이에서 자연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졌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다음으로, 동서양의 상반된 자연관을 배경으로 들 수 있다. 근대 이후 서양에서는 인간만이 이성을 가지며, 자연보다 인간이 우월하다고 여기는 인간중심주의가 만연했다. 특히 자연이 인간을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고 여기는 도구적 자연관이 지배적이었다. 이와 달리 유교·불교·도교와 같은 동양 사상에서는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강조하는 자연관을 제시했다. 이러한 동서양의 자연관에서 상반된 정원의 형식이 탄생했다고 보는 관점도 있다.

 

[정원에 얽힌 일화]

길고 긴 정원의 역사만큼 정원에 얽힌 일화들도 다양하다. 그중 흥미로웠던 일화 몇 가지 소개해 보려 한다.

프랑스 파리 남서쪽 베르사유(Versailles) 궁전 정원에는 ‘태양왕’ 루이 14세(Louis XIV, 1638~1715)의 권력에 대한 욕망이 녹아 있다. 당시 재무장관 니콜라 푸케(Nicolas Fouquet, 1615-1680)가 세운 보르비콩트 성(Château de Vaux le Vicomte)의 정원을 보고 질투를 느낀 루이 14세는 더 멋진 정원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는 보르비콩트 정원을 설계한 정원사 앙드레 르 노트르(André Le Nôtre, 1613~1700)에게 “보르비콩트보다 더 크고 더 화려하게 만들어라.”라고 명령하며 거대한 프로젝트를 맡겼고, 그렇게 1682년 완성된 정원은 루이 14세의 기대를 충족시켰다. 500개가 넘는 조각상이 배치된 정원은 당대 프랑스 귀족은 물론 다른 유럽 왕족들에게까지 선망의 대상이 된 루이 14세를 대표하는 상징 중 하나다.

▲베르사유궁전의 정원(Palace and Park of Versailles)/ 출처: pixabay
▲베르사유궁전의 정원(Palace and Park of Versailles)/ 출처: pixabay

이와 다르게 본래 목적이 전도된 정원도 있다. 1908년 구엘(Güell) 백작의 의뢰를 받아 안토니 가우디(Antoni Gaudi, 1852~1926)가 설계한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위치한 구엘 공원(Park Güell)은 본디 부유층을 위한 전원도시였다. 영국 런던의 정원을 본 땄던 이 공간은 자금난과 구엘 백작의 사망 등을 이유로 중단됐으나 1922년 바르셀로나 시의회가 이 땅을 사들이며 본래 의도와는 달리 시립 공원으로 거듭나게 된다.

 

어느덧 무더운 여름의 끝자락이 보이고, 선선한 가을바람이 코끝에 스친다. 도서관에 가서 책 속에 파묻히기도, 탐스럽게 잘 익은 과일들에 식욕이 돋기도, 서늘해진 날씨에 쓸쓸함을 느끼기도 하는 아름답고도 쓸쓸한 계절 가을. 그리고 연중 자연이 가장 화려함을 뽐내는 계절, 가을에 울긋불긋 단장을 끝내고 설레는 마음으로 그대들을 기다리는 정원을 거닐며 가을을 만끽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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