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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에 감사하며 최선을 다해 나아가는 것

엄태화(광고디자인99) 동문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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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태화(광고디자인99) 동문
▲엄태화(광고디자인99) 동문

누구나 자신이 미래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는 순간이 있다. 그러다 일상에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발견하게 되면 그동안 묻어두었던 내 열정을 그곳에 쏟기 마련이다. 최근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2023)의 감독으로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장편영화상 부문에 도전하는 동문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Q. 본교를 졸업하고 영화감독의 꿈을 갖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A. 본교 2학년 시절 휴학하고 광고와 영화 현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일을 하던 중 영상 관련 일이 재미있어 보인다는 생각이 들어 영화 연출 일을 시작하게 됐다. 그 당시에는 영화를 만들기보단 영상 일을 하고 싶었다. 광고, 뮤직비디오, 영화 등 상관없이 배워보고 싶어서 3학년 때 학교에서 영상 관련 수업을 들었다. 이후 졸업하면서 교수님을 통해 박찬욱 감독님을 소개받고 <쓰리, 몬스터>(2004)라는 영화의 연출부로 처음 일하게 됐다. 연출부 생활을 하면서 직접 단편 영화를 제작하다가 2011년에 한국 영화 아카데미(KAFA)에 들어가게 되고 지금까지 영화감독 일을 계속하게 됐다.

▲엄태화 감독의 영화 '가려진 시간'(2016)/출처:넷플릭스(Netflix)

Q. <가려진 시간>(2016)에서는 상상력과 몽환적인 연출을 선보여 많은 호평을 받는 등, 섬세한 영상미를 연출하는 감독으로 유명하다. 이러한 감독님만의 연출 스타일을 갖게 된 과정이 궁금하다.

A. 영화를 연출할 때 예쁘게, 혹은 멋지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어떤 세계관을 만들고 그 세계관을 가장 그럴싸하게 묘사하려고 한다. 세계관 안에서 디테일을 잘 잡아서 살리려 노력했고 그런 것들이 모이다 보니 많은 관객이나 전문가분들이 섬세하다고 봐주시는 것 같다.

 

Q. 영화에 대한 영감을 어디서 얻는가?

A. 그 시기에 보고 느끼는 것들이 종합적으로 쌓이다가 어떤 소재에 딱 꽂히면 거기에 빠져들며 영감을 얻는다. 예를 들어 <콘크리트 유토피아> 같은 경우는 평소에 아파트라는 장소에 대해 가지고 있던 생각을 영화에 표현한 작품이다. 아파트는 근본적으로는 추위를 막아주고 편하게 쉴 수 있는 장소인데, 한국 사람들이 유독 집값에 신경 쓰고, 주거 공간을 투자용 코인처럼 여기는 모습이 쓸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네이버 웹툰 <유쾌한 왕따>를 보며 영감을 받아 *아포칼립스 장르의 배경이 아파트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가려진 시간>(2016)은 세월호 사건 이후 보는 사람이 치유받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했다. 그때 타임 루프(Time Loop) 소재에 꽂혀 이걸 영화에 어떻게 접목할지 고민하다 시간이 멈춰 있는 작품을 해보자고 다짐했다. 평소 재미있게 봤던 <심슨 가족(The Simpsons)> 에피소드 중 시간을 멈추는 시계 에피소드가 있다. 시계를 손에 넣어서 시간을 멈췄는데 그 시계가 고장이 나, 혼자만 나이를 먹는 이야기다. 그 콘셉트를 가져와서 내 방식대로 푼 것이다. 영화에 세월호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하지 않더라도 정서를 담아, 혼자만 살아남은 아이의 마음을 통해 관객들에게 치유의 감정을 주고 싶었다.

▲미쟝센 단편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은 엄태화 감독의 '숲'(2012)/출처:서울독립영화제
▲미쟝센 단편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은 엄태화 감독의 '숲'(2012)/출처:서울독립영화제

Q. 연출한 작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다면 무엇인지, 그 이유도 궁금하다.

A. <숲>(2012)이라는 단편 영화는 지금까지 활동할 수 있게 해준 기반이 된 작품이다. ‘미쟝센(mise en scene) 단편영화제’라는 영화제가 있는데, 이 영화제에 너무 가고 싶어서 연출부 생활과 동시에 촬영을 병행하며 영화제에 작품을 계속 출품했다. 그러다 <숲>(2012)이라는 작품이 처음 출품작으로 선정됐다. 심사위원 모두가 만장일치를 해야 대상을 받을 수 있어 20회 동안 대상을 받은 작품이 몇 작품 되지 않는다. 근데 <숲>(2012)이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대상을 받은 것이다. 출품된 것만으로도 너무 좋은데 대상까지 받게 됐고, 거기서 알게 된 제작자분들 덕에, 훗날 <잉투기>(2013), <가려진 시간>(2016)을 촬영할 수 있었다.

▲엄태화 감독의 '잉태기'(2013)/출처:왓챠(Watcha)
▲엄태화 감독의 '잉태기'(2013)/출처:왓챠(Watcha)

Q. 이전에 박찬욱 감독 산하에서 연출부 일을 했는데, 박찬욱 감독에게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궁금하다.

A. 감독님 옆에서 일하면서 연출과 스태프 관리하는 방식을 많이 배웠다. 영화는 시나리오를 쓰고 그걸 토대로 **콘티를 그린다. 사각형 틀 안에 그림을 그려서 카메라가 어떻게 움직일지 앵글(Angle)을 미리 정한다. 콘티대로 촬영하는 감독도 있고 그렇지 않은 감독도 있다. 박찬욱 감독님은 그것을 굉장히 심사숙고해서 그리고, 그것에 맞춰 촬영하는 스타일이다. 이렇게 하면 현장에서 변수가 줄어든다. 제작비가 워낙 많이 들어가다 보니, 변수를 줄여 제작비를 아끼는 것이다. 또 박찬욱 감독님은 스태프들과 배우들을 대하는 방식을 통해 현장에서 스태프들이 맡은 부분에 책임감을 느끼도록 만든다. 방향성을 제시하되 섬세하게 지시하지는 않아서, 자유와 통제를 적절히 조절해 스태프들이 책임감을 느끼고 촬영에 임한다. 그런 것들을 많이 배웠다.

 

Q. 영화 <가려진 시간>(2016)과 <콘크리트 유토피아>(2023) 모두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시공간으로 관객을 끌어들여 실제 우리의 민낯을 마주하게 한다. 이러한 연출을 통해 무엇을 표현하고자 한 것인지, 이러한 연출을 기획한 계기가 있는가?

A. 어릴 적부터 좋아한 <터미네이터(The Terminator)>(1984), <백 투 더 퓨처(Back To The Future)>(1987)와 같은 판타지·SF 영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두 영화 모두 타임 루프 소재가 재미있었다. 내가 하지 못해 후회하는 것들이나 죄책감의 원인을 되돌리려고 과거로 간다거나 혹은 내가 지금 한 작은 행동이 내 미래를 크게 바꾼다는 부분에서 매력을 느꼈다. 비현실적인 것을 최대한 있을 법한 이야기처럼 보이게 하는 것에 대해 많은 매력을 느꼈고, 그것이 내 영화에 그대로 표현되는 것 같다. 붕 떠 있는 이야기보단 내가 지금 느끼고 있는 것을 어떻게 영화에 담을까 고민하다 보니 마냥 가볍지만은 않은 이야기들이 나오는 것은 아닐까 싶다. 상영되는 영화들을 보면, 보고 나서 휘발되는 영화가 있다. 반대로 그런 영화보단 보고 나서도 여운이 계속되는, 생각이 이어지는 영화가 있다. 오랫동안 사유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은 욕구와 내가 좋아했던 장르가 만나다 보니 지금과 같은 기획이 나오게 됐다.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2023)의 원작 '유쾌한 왕따' 작가의 그림 포스터/출처: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2023)의 원작 '유쾌한 왕따' 작가의 그림 포스터/출처:롯데엔터테인먼트

Q. <콘크리트 유토피아>(2023)가 <기생충>(2019), <헤어질 결심>(2022)에 이어 세 번째로, 내년 제96회 아카데미 국제장편영화상에 도전한다.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A. 어떻게 보면 국가대표로 가는 것이기 때문에 부담도 되지만 굉장히 영광이고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정말 긴 여정이라고 들었다. 이번이 처음이기에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하되, 마음을 비우고 과정을 즐기려고 한다. 전 세계에 있는 몇천 명의 아카데미 회원들이 약 80편의 출품작을 보고 투표를 한다. 그 많은 영화를 다 볼 수 없기에 그분들이 내 영화를 보게 하는 게 관건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영화제를 다니면서 내 영화가 있다고 소개해야 한다. 첫번째 단계에서 80편 중 15편이 추려진다. 그러면 1차 선정작이 되는 것이고 거기서 심사위원들이 5편으로 줄인다. 최종적으로는 그 5편이 아카데미에 출품되는 것이다. 정말 긴 여정이 될 테지만 열심히 해볼 생각이다.

 

Q. 다음 작품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궁금하다. 그리고 차기작에서 만나고 싶은 배우가 있다면 누구인지도 궁금하다.

A. 세 작품 정도가 있는데 장르만 말씀드리자면 하나는 호러다. 또 하나는 스릴러인데 시리즈이고 하나는 조선시대 말기 역사물인데 주제는 스파이다. 같이 작품을 하고 싶은 배우는 이전에 했던 배우들이 다 너무 좋아서 한 번 더 함께 하고 싶다. 강동원 배우, 이병헌 배우, 박보영 배우, 박서준 배우 모두 좋고 동생인 엄태구 배우와도 하고 싶다.

 

Q. 감독 혹은 영화계 종사를 꿈꾸는 학우들에게 한마디 부탁한다.

A. 영화감독은 기약이 없는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예전에 비해 현장 환경이 많이 좋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이 일이 좋아서 하는 게 아니라면 버티기 힘든 일이 많은 직업이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믿어야 하고 영화감독으로서 생각도 정말 많이 해봐야 한다. 그렇지만 경험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해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연출부든 자기 영화를 찍는 것이든 뭐든 해보는 것이 중요하고, 그걸 해보되 생각을 많이 해야 한다. 나 같은 경우 다른 일을 할 생각이 전혀 들지 않을 정도로 이 일이 좋았다. 도전하는 것은 두려워하지 말되, 정말 많은 생각을 해보길 바란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믿어야 한다.

 

*아포칼립스: 대규모 재난이나 인류 멸망의 상황을 말한다.

**콘티: 연출해야 하는 사항들을 그린 설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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