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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의 가능성에 대한 고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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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7일(목), BBC는 이라크 출신의 여성 유튜버 ‘티바 알 알리(Tiba al-Ali)’가 지난 1월 고향을 방문했다가 아버지에게 목이 졸려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티바는 학업을 위해 튀르키예로 건너 갔지만 그곳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고향을 찾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는 티바가 튀르키예로 가는 것부터 반대했으며, 유튜브 활동은 물론 약혼자와의 동거 또한 싫어했다. 이라크 법원은 ‘사전에 계획된’ 살인이 아니었다는 이유로 티바의 아버지에게 고작 징역 6개월을 선고했다. 티바는 가족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이유로 아버지의 손에 죽어야만 했다.

우리는 이 일이 비이성적인 악습이라고 생각하지만,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비일비재하다. 기자는 어렸을 적 김영미 PD의 『왜 세계는 싸우는가?』에서 명예살인을 당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접한 적이 있다. 책에 소개된 여성들의 사연은 제각기 달랐다. 옆집 남자의 얼굴을 봤다는 이유로 남편이 얼굴에 염산을 끼얹었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도 있었다. 김 PD의 친구였던 아프가니스탄의 한 아나운서는 2005년 서양식 복장을 한 채 남자 아나운서와 같이 앉아 뉴스를 진행했다는 이유로 죽었다. 그것도 친오빠가 쏜 총을 맞고서. 죽은 아나운서의 가족들은 “우린 아직도 너무 사랑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 애는 우리의 명예를 더럽혔다. 우리가 죽이지 않았어도 다른 이웃들이 죽였을 거다.”라며 항변했다. 그들은 고작 열흘 만에 경찰서에서 무혐의로 풀려났다고 한다.

티바의 소식을 접했던 밤, 침대에 누워 한참을 고민했다. 책에서 소개된 피해자들의 기구한 사연에 대해 읽었을 때도 했던 고민이었다. 우리는 이미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 곧 정의라고 주장하는 공리주의가 만능이 아니라는 걸 안다. 개인의 자유를 우선시하는 사회가 이상향이 될 수는 없으며, 그렇다고 공동체의 이익을 추구하는 사회도 정답은 아니라는 걸 이미 역사를 통해 뼈저리게 깨달았다. 배려와 조화가 존재하지 않는 사회는 삭막하기 짝이 없다. 반대로 히틀러의 파시즘처럼, 공동체를 위해 특정한 사람들을 죽이거나 탄압하는 일은 악몽과도 같다. 그렇다면 세상 모두가 동의하는 정의는 존재할 수 있나? 가족의 명예라는, 그 사회의 정의를 지키기 위해 가족 구성원 중 한 명이 다른 구성원에 의해 죽어야만 했다. 이건 정말 옳은 일인가? 완전무결한 정의는 과연 무엇인가? 꼬리에 꼬리를 문 듯한 의문들은 그날 밤 구렁이 마냥 기자의 몸을 둘둘 감쌌다.

기자는 지금까지 진실은 곧 정의로 이어진다고 생각했다. 굳이 스스로의 정의를 나서서 외치지 않아도, 진실을 찾아서 세상에 보여주면 이게 곧 정의를 구현하는 방법이 될 것이라 확신했다. 그렇기에 진실을 최우선으로 추구하는 언론을 꿈꿨다. 그런데 세상은 그렇게 순순히 돌아가지 않는다. 다양한 정의가 진실을 은폐하거나 오도하는 일이 눈에 밟힌다. 애써 진실을 찾아도 이는 외면당한다. 사람들은 보고싶은 ‘것만’ 보려고 한다. 모두가 진실을 원한다고 말하는데, 막상 진실을 보여주려고 하면 모두 고개를 돌리거나 다른 곳을 본다. 그 진실이 사람의 죽음이든, 부당한 상황이든, 자신이 옳지 않게 행동했다는 평가이든 간에 말이다. 진실을 추구한다는 언론 조차 이젠 진실 보다는 각자의 정의를 먼저 생각하는 분위기다. 진실을 얻어도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정의라는 이름으로 각자 입맛대로 자르고 이어붙인 뒤 세상에 내보낸다. 하지만 이건 언론이 추구해야 하는 것들 중 그 무엇도 되지 못한다.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고 행동하지만 그건 다시 비틀리고 변형되어 버린다. 결국 진실을 아는 사람은 사라지고 정의를 진실이라 믿는 사람만 늘어나는 꼴이다. 이 과정에서 정의는 또다시 각자의 생각에 따라 나뉘어져 버린다. 이런 걸 정의라고 불러도 과연 괜찮은 것일까.

예전에 자주 들었던 노래의 가사 중 ‘진실은 언제나 하나, 하지만 정의는 언제나 하나가 아니야. 제로(zero)가 아니야.’라는 부분이 있었다. 이 가사처럼 모두 동의하는 하나의 정의가 존재할 가능성은 정말 0일까. 각자의 정의를 믿고 살아갈지, 0의 가능성이 틀렸다는 걸 증명해볼지 선택은 당신에게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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