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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책감을 먹고 사는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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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본인을 ‘기자’라고 부르는 것이 낯설다. 수습기자를 거쳐 준기자가 된 지금, 기자가 된 지 벌써 5개월이나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을 기자라고 칭하는 것은 어색하다. 나는 기자인가, 애초에 기자란 대체 뭘 하는 사람인가에 대한 질문을 자신에게 던지면 망설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기자는 전공에 대한 회의감에서 출발해 신문사에 도착했다. 기자의 전공은 시각디자인으로, 기억이 닿는 순간부터 당연히 미술을 하고 살 거라고 생각했던 기자는 해당 전공 외에 다른 것들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2학년을 끝마치며 '디자인이 나를 설레게 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전공에 대한 권태감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던 중 우연히 본지의 수습기자 모집 공고를 보게 됐다. 겨우 몇 번의 클릭으로 발견한 수습기자 모집 공고가 여태 모든 삶을 거치며 얻은 권태를 없애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기자는 지금의 나를 덜 괴롭게 해줄 것만 같다는 생각으로, 미래보다는 지금의 나를 숨 쉬게 하기 위해 신문사의 문을 두드렸다. 평생 취미로 머물 것이라고 생각한 글 쓰는 일에 몸을 던진 것이다. 조금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다행히도, 수습기자가 되고 본격적으로 활동하며 기자는 마음이 꽤 가벼워졌다. 전공을 내치고 순간적인 결정을 해 버렸다는 비릿한 죄책감보다도 숨이 트인다는 달콤함이 더 컸다. 가끔 운이 좋게 칭찬을 받고, 선배, 동기 기자들과 함께 취재하고 글을 쓰고, 그렇게 발간된 신문을 손에 넣을 때면 내가 이 안에 있어도 된다고 허락을 받은 것만 같아 마음이 놓였다. 과거를 숨기지 않고 현재를 즐겨도 된다, 그런 생각을 하며 기자로서의 생활에 점차 적응할 수 있었다.

그러나 기자 생활을 이어갈 수록 이런 마음은 차츰 자취를 감추었다. 기자로서 지켜야 할 아주 기본적인 일을 놓치기 시작했다. 맞춤법 검사를 하지 않은 채 선배 기자에게 글을 올리거나, 정식 절차를 거치지 않고 학교 기관과 연락하여 해당 보도를 무산시키는 등. 조금만이라도 신경 썼더라면 깔끔하게 해낼 수 있던 일을 놓치는 자신을 보며 다시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나는 기자인가?', '기자라는 이름으로 불릴 자격이 있나?' 라는 자책을 하기 시작하면서 정이 들고 편안했던 기자실과 동료 기자들을 보는 시선이 점점 달라졌다. 안정감을 느끼게 해 주던 기자실은 잘못 도망쳐 온 낯선 곳이 되어있었고, 반짝반짝 빛나는 동료 기자들의 눈빛을 볼 때 든든함과 존경심이 아닌 두려움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파릇한 기운을 내뿜으며 '기자'로서 움직이는 그들 앞에 서면, 그들의 무대를 무작정 비집고 들어가 살려달라고 난동을 부리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기자실에서 불리는 호칭 '은서 기자님'이라는 말을 들을 때도 껄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책임감 없는 자신을 마주할 때마다 '기자'라는 이름은 아주 잘못 산 신발처럼 맞지 않고, 기자를 지켜주는 척 하며 위태롭게 만들 것 같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기자'라는 이름을 버리고 싶다는 마음은 들지 않았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기자와 맞지 않는 것인가 하는 의문을 던지는 와중에도, 기자라는 직책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이 아닌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 기자는 그저 충실한 '기자'가 되고 싶었던 것이다. 기자에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길에서 눈을 돌리면서부터 주어진 '기자'라는 이름은 많은 것을 주었다. 좁게는 '나'로부터 시작하는 글만 쓰던 기자가 세상을 바라보며 타인의 목소리를 실어 전하기도 하고, 넓게는 기자실 안팎에서 다양한 분야와 연령대의 사람들과 만나며 세상이 흘러가는 모습을 보고 누군가가 사는 방식을 배우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러한 변화라는 것이 생각보다 어려워할 것이 아님을, 그리고 변화가 가진 힘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얼핏 보면 ‘기자’는 죄책감을 던져주는 것 같았지만, 사실 ‘기자’는 기자가 느낀 죄책감을 한 톨 한 톨 꼭꼭 씹어 삼키며 자신의 이름을 지키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기자 생활을 마무리할 때까지 지금까지 느낀 만큼의, 어쩌면 그 이상의 의문을 던지고 죄책감을 안고 가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자'라는 이름이 버텨준 것만큼 기자도 묵묵히 버티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렇게 버티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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