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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식, '우도', 《우마도첩》 제1면, 조선, 17세기, 지본담채, 22.7x28.3cm, 홍익대학교박물관 소장

박물관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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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식, '우도', 《우마도첩》 제1면, 조선, 17세기, 지본담채, 22.7x28.3cm, 홍익대학교박물관 소장
김식, '우도', 《우마도첩》 제1면, 조선, 17세기, 지본담채, 22.7x28.3cm, 홍익대학교박물관 소장

조선 중기는 양란(兩亂)과 사화(士禍)로 인해 사회적으로 혼란스러웠다. 당시 문인(文人)은 세속에서 벗어나 자연에 은거(隱居)하고자 했다. 이러한 경향성은 회화 제작에도 반영되고 소를 주제로 한 그림에서도 확인된다. 조선 중기 이전의 소 그림은 사람이 소를 타는 기우도(騎牛圖) 형식이나 소에게 먹이를 주는 목우도(牧牛圖) 형식으로 주로 제작되었다. 이번에 소개할 김식(金埴, 1579~1662)의 <우도>에서처럼 소가 화면에 단독으로 나타나는 방우도(放牛圖) 형식은 조선 중기에 갑자기 수요가 증가하였다. 이는 노동과 연관되어 있는 행위를 하는 소의 모습에서 한가로움이 느껴지는 소의 표현으로 변화한 것이다. 당시 은일(隱逸)을 주제로 한 그림이 유행했던 이유와 연관지어 볼 수 있을 것이다.

홍익대학교 소장 김식의 《우마도첩》은 총 10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1, 2면은 소 그림, 3, 4면은 말 그림, 5~10면은 새 그림이다. 이들은 서로 다른 배경 속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그 중 1면의  <우도>에서 소는 물가 위의 나무 다리를 걸어가고 있다. 소의 얼굴과 몸통은 둥근 형태로 간략하게 표현되었으며 다리의 움직임을 통해 앞으로 걸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머리엔 까만 뿔이 있으며,  코는 'X'자 모양으로 그려진 것이 특징이다. 둥근 몸통은 위에서 아래로, 안에서 밖으로 갈수록 농묵(濃墨)으로 짙어지며 목과 옆구리에는 옅은 묵으로 선이 그려져 있다. 다리는 무릎을 기준으로 위와 아래가 다르게 표현되었는데, 무릎 위에는 최소한의 먹이 사용되었고 아래는 짙은 먹으로 칠해졌다. 소 발굽은 소뿔처럼 가장 진한 먹이 사용되어 다리와 구분 된다. 소가 위치한 근경에는 소가 걸어가고 있는 다리와 그 밑으로 잔잔한 물결이 푸른 색 계열로 표현되어 있고 후경에는 물과 땅이 만나는 기슭이 있다.

소의 얼굴과 몸통에 사용된 간략하고 둥근 필선과 코의 묘사는 김식의 조부인 김시(金禔, 1524~1593)의 소 그림 화풍에 영향을 받아 이를 계승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김시는 조선 중기 소 그림의 유행을 이끈 인물로, 그로 인해 소 그림 양식이 정형화되었다. 김시의 소 그림은 이후 조선 중기 소 그림의 대표적인 형식으로 자리 잡아 김식을 포함한 다른 화가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이와 같은 이유로 김식의 소 그림은 김시의 작품을 형식화 한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김식은 배경의 표현을 간략화하고 화면에서 소가 차지하는 비중을 늘려 김시의 소 그림 양식에 변화를 주었다. 이를 기반으로 김식이 자신만의 소 그림 방식을 정립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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