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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능력한 나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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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세종 캠퍼스에서 약 4일에 걸친 대동제가 막을 내렸다. 누군가는 좋아하는 가수가 초청 공연을 한다는 소식에 오전부터 입장 줄을 섰고, 다른 누군가는 그동안 준비했던 것을 보여주기 위해 공연 연습에 매진했다. 또다른 누군가는 부스와 주점 운영을 위해 수업까지 결석하며 일했고, 그런 사람들을 감독하고 축제 운영을 지휘하느라 캠퍼스를 동분서주한 사람들이 있다. 그런 축제를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자신은 제대로 즐기지도 못한 채 연신 카메라를 들고 뛰어다니기 바빴던 사람도 있다. 방식은 모두 다르지만, 청춘(靑春)이라는 이름 아래 자신의 화양연화(花樣年華)를 장식하던 모두는 아름다웠다.

그렇다면 기자는 어느 쪽이었는가. 사실 기자는 위의 경우 중 그 어떤 것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대동제가 진행되는 운동장을 3일 내내 밟아보지도 않았다. 공연 입장을 위한 팔찌는 친구 걸 구경만 해봤을 뿐이며, 각 부스와 주점이 무엇을 팔고 가격이 얼마인지는 꿰고 있었지만 정작 가보진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미 너무 많은 생각이 머릿속에 차있어서, 막상 축제를 즐겨야겠다는 생각이 비집고 들어갈 틈 따위는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학교 학보사 국장들과의 회의 서류를 작성하고, 운 나쁘게도 축제와 겹쳐버린 주제기획을 준비하고, 공연현장 촬영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온갖 사람들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이 끝없는 생각에 몸을 움직이고 머리를 굴리는 과정에서 기자는 마치 물에 빠져버린 나이프와 같았다. ‘해내야만 한다. 그것도 잘.’이라는 생각이라는 물속에 빠져버려 제 능력을 잃어버린 나이프 말이다.

웬 물에 빠져버린 나이프 같은 소리를 하냐고 혹자는 말할 수 있다. 맥락없는 글이라며 읽는 걸 멈추기 전에, 다들 해봤을 부력 실험을 한번만 떠올려 달라. 물이 담긴 수조에 여러 사물을 넣어보고 떠오르는지, 아니면 가라앉는지 친구들과 함께 뚫어져라 쳐다보던 그 시간 말이다. 이때를 기억의 창고에서 복기해보면, 클립이나 연필 같은 사물은 가라앉는다. 이와 반대로 쉽게 젖어 바로 수조 밑바닥에 닿을 것 같던 종이가 물 위를 둥둥 떠다녔던 게 생각날 것이다. 나이프를 물에 담가보면 연필을 물에 넣었을 때와 같은 결과를 볼 수 있다. 육지에서 자신을 집은 손이 시키는 대로, 가진 능력을 충실히 발휘해 이것 저것을 자르던 나이프는, 물에 빠지는 순간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애석하게도 나이프에겐 물에 떠오르는 능력이 주어지지 않았다. 어떻게든 물을 잘라내고 베어보려 애쓰지만, ‘칼로 물베기’라는 말이 괜히 있겠는가. 물은 아무런 타격도 받지 않는다. 종국엔 ‘무능력한 나이프’가 되는 결과만 남아있을 뿐이다.

지난 14일(목), 리비아에서 열대성 폭풍으로 인한 대홍수가 발생했다. 북동부 도시인 데르나에서는 이로 인해 댐이 붕괴되면서 인구의 1/6 수준인 11,000여 명이 사망했으며, 실종자 또한 10,100여 명으로 추산된다. 도시 곳곳에서 시신 수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해 수인성 질병 등 2차 감염이 우려되는 끔찍한 상황이다. 하지만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리비아 정부는 권력 다툼에 눈이 멀어있다. 2011년 독재자 무아마르 카디피(Muammar Gaddafi)를 축출한 이후 서부의 리비아통합정부(GNU)와 동부의 리비아국민군(LNA)로 양분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페테리 탈라스(Petteri Taalas) 세계기상기구(WMO) 사무총장은 국가 전역에 경보를 발령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었다면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며, 대홍수가 충분히 대처 가능했던 참사였다고 주장했다. 대홍수 이후에도 양측은 서로에게 책임만 추궁할 뿐, 진상 규명이나 피해 복구 계획과 관련해 협력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GNU와 LNA는 서로를 베려는 두 나이프다. 하지만 이 둘은 동시에 국가 규모의 참사라는 물속에 빠졌다. 이런 물속에서 두 나이프가 하는 일들은 아무 의미도, 영향도 없다. 한낱 인간의 권력 다툼이 거대한 자연에게는 그저 우스운 짓일 것이다. 이들은 기자와 마찬가지로 무능력한 나이프가 되어버렸다. 그래도 한 가지 다행인 점은, 이 두 나이프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명확하다는 사실이다. 서로 협력하며 피해를 복구하고, 사람들을 치료하고, 왜 이렇게 큰 피해를 겪어야 했는지 진실을 규명하는 일이야 말로 GNU와 LNA가 물속에서 무능력한 나이프가 아님을 증명할 수 있는 기회다.

기자는 이 점 만큼은 저 둘이 부럽다. 마냥 가라앉고 있는 나이프가 아니라, 뭐라도 해볼 수  있는 나이프이기 때문이다. 기자는 이번 호를 준비하면서 스스로가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무능력한 나이프임을 명백하게 자각했다. 어떤 짓을 해봐도 해야 한다는 강박 속으로 계속 가라앉는 기분은 손이 떨릴 정도로 비참하다. 대체 언제쯤이면 이 강박과 끝없는 생각의 심연에서 벗어나 육지에서 본래의 능력을 발휘하는 나이프가 될 수 있을까. 끝없이 애써볼 뿐이다. 무능력한 나이프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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