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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번째 태양은 누가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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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텍(Aztec) 신화에 따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네 번의 세계가 멸망하고 난 뒤 세워진 다섯 번째 세계다. 첫 번째 세계는 테스카틀리포카(Tezcatlipoca)가 다스린 세계로, 재규어가 거인을 모조리 잡아먹은 후 태양이 꺼져 멸망했다. 케찰코아틀(Quetzalcohuātl)이 다스린 두 번째 세계는 거센 바람으로 인해 태양이 꺼져 멸망했고, 틀랄록(Tlāloc)이 다스린 세 번째 세계는 화염의 비가 내려 멸망했다. 찰치우틀리쿠에(Chalchiuhtlicue)가 다스린 네 번째 세계에서는 대홍수로 모든 인간이 물고기가 됐다. 그 속에서 살아남은 두 명의 인간이 금기를 어기고 물고기를 먹으려 불을 피우자 격노한 테스카틀리포카가 그들의 목을 자르고 개로 만들어버렸고, 그렇게 네 번째 세계마저 멸망했다. 네 번째 태양이 사라지자, 세상은 어두워졌고 새로운 태양을 만들어 하늘에 띄우기 위해서는 신들 중 하나가 자신의 몸을 불살라야만 했다. 부유한 신 테쿠시스테카틀(Tēcciztēcatl)이 불길에 뛰어들기를 주저하고 있던 그때, 가난하고 볼품없는 신 나나우아친(Nanahuatzin)이 망설임 없이 불 속으로 뛰어들었다. 태양이 된 나나우아친은 태양의 신 토나티우(Tōnatiuh)가 됐고 부끄러움을 느낀 테쿠시스테카틀 역시 뒤늦게 불 속으로 뛰어들어 태양이 됐다. 두 개의 태양으로 세상이 뜨거워지자, 신들이 두 번째 태양에 토끼를 던져 떨어뜨렸고 그 두 번째 태양(테쿠시스테카틀)이 달이 됐다. 나나우아친의 희생으로 인해 다섯 번째 세계, 즉 아스테카(Azteca)의 역사가 시작됐다는 것이 아스텍 신화의 내용이다.

『삼국지(三國志)』의 영웅 유비(劉備)는 본래 왕족의 후예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아버지를 잃어 홀어머니와 함께 짚신이나 돗자리를 만들며 생계를 유지했다고 전해진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공명의 뜻을 품던 유비는 관우(關羽)와 장비(張飛)를 만나 도원결의를 맺고, 황건적의 난이 일자 의병이 된다. 당시 막대한 부와 군사력을 자랑하던 여러 군웅과 달리 아무런 기반도 없이 거병한 것이다. 이후 차례로 공손찬(公孫瓚), 조조(曹操), 원소(袁紹) 휘하에서 지내다 그 유명한 삼고초려를 통해 제갈량(諸葛亮)을 얻는다. 인의를 기반으로 뛰어난 인물들을 들인 유비는 관우, 장비, 책사 제갈량을 필두로 수많은 전투를 겪고 마침내 촉나라(촉한, 蜀漢)를 세운다. 결국 ‘난세의 간웅’ 조조의 위(魏)나라, 손권(孫權)의 오(吳)나라와 함께 삼국 구도를 완성한 것은 명문가 엘리트 원소도, 유력 가문의 장군 공손찬도 아닌 장사꾼 출신 유비였다.

어느 순간부터 ‘개천에서 용 나는’ 이야기는 미디어에서 자취를 감췄다. 볼품없고 소외된 자가 세상을 구한다는 이야기는 힘을 잃었고, 고루하고 진부한 서사라 치부 받기 시작했다. 그 대신, 날 적부터 비범한 능력을 가지고 수려한 외모와 능력을 지닌 이가 세상을 구한다는 서사가 더 매력적인 이야기가 됐다. 이는 비단 창작물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늦은 나이에 시작해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 마침내 스타가 된 연예인의 이야기보다 ‘강남 8학군’이나 ‘금수저’의 키워드가 하나의 ‘영업 포인트’가 된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마저 여러 번의 실패 끝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전하는 이의 이야기보다 부모의 직업, 출신지, 학교 등 화려한 수식어가 붙은 어린 연습생의 이야기가 대중들에겐 매력적인 점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처음부터 특별하고 빛나던 이가 아닌, 때로는 볼품없고 핍박받던 이가 주인공이 된다는 것을. 부나 명성 없이 새끼를 꼬던 유비가 존경받는 영웅이 되고, 온몸에 종기가 나 외면받던 가난한 신 나나우아친이 새로운 세상의 태양이 되었던 것처럼 말이다. 세상에는 더 다채롭고 다양한 이야기가 필요하다. 아무런 흠 없이 빛나는 이의 이야기 역시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겠지만, 우리 사회가 소외된 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사회가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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