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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나, 덕트테이프, 아트페어: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코미디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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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우리치오 카텔란, '코미디언', 2019. 2023년 리움미술관 전시 전경. 사진 이수진 제공.  

‘1억짜리 바나나’로 더 잘 알려진 이 작품의 제목은 <코미디언>이다. 90년대부터 꾸준히 논란을 일으키며 미술계의 악동, 광대, 사기꾼, 조커 등으로 불려온 이탈리아 출신의 마우리치오 카텔란은 2019년 <코미디언> 발표 이후 대중에게는 ‘바나나 작가’로 각인되게 됐다. 바나나를 벽에 테이프로 붙여놓은 게 ‘작품’이라는 명목으로 12만 달러(당시 환율로 약 1억 4천만 원)에 거래된 사실은 마땅히 대단한 화젯거리다. 이 소식이 전파를 타자 각종 소셜미디어에는 패러디 밈과 게시물이 쏟아졌고, 열받은 한 남자는 전시장에 찾아와 벽에 빨간 립스틱으로 낙서하고 소리를 지르다가 체포되기도 했다.*

한편, 앞서 같은 장소에서 바나나를 떼어 먹은 데이비드 다투나(David Datuna)는 체포되지 않았고, 작품 훼손은 커녕 오히려 이슈몰이를 통해 <코미디언>의 인기와 가치 향상에 기여한 것으로 여겨진다. 바이럴 영상 속에서 다투나는 바나나를 떼먹으며 이건 “헝그리 아티스트(배고픈 예술가)”라는 제목의 “아트 퍼포먼스”라고 말하는데,** 카텔란의 작업에 익숙한 사람들은 다투나가 카텔란에 의해 고용됐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이 요란한 사태 속에서 우리가 주시 해야할 것은 무엇일까? 필자는 미술사학자의 관점에서 카텔란의 <코미디언>을 들여다보고 풀어 설명하고자 한다. 우선 짚어둘 몇 가지가 있다. 카텔란은 지난 30여 년간 꾸준히 논쟁적인 이슈를 만들고 지휘하는 작업을 해 왔으며, 이런 활동 자체가 예술가로서의 작업으로 읽힐 수 있음을 기억하자. 고작 30센트짜리 바나나가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12만 달러에 거래될 수 있다는 사실/현실이 어떤 이에게는 흥미나 호기심을, 어떤 이에게는 불쾌감이나 분노까지도 유발하는 포인트인데, 바로 이 트리거가 카텔란이 <코미디언>에 부여한 역할이자 목적이다. 

 

제작: 재료와 방식

화제성에 가려져있던 작품(오브제로서의 작품)으로 눈을 돌려보자. 모든 분석은 관찰에서 시작한다. <코미디언>를 만드는 데 필요한 재료는 바나나 한 개와 덕트테이프(duct tape)로, 누구나 적은 비용으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이다. 바나나의 특성은 무엇인가? 바나나는 쉽게 갈변한다. 바나나만큼 그 갈변과정을 우리 눈에 분명하게 보여주는 과일이나 식물은 드물다. 덕트테이프는 천이나 직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가위 없이 손으로도 찢어 사용할 수 있으며, 플라스틱테이프와는 달리 벽이나 종이상자에 붙였다가 떼어낼 때 자국 없이 꽤 부드럽게 떼어진다. 이렇듯 바나나와 덕트테이프는 공통적으로 일시성, 임시성, 일회성, 단발성 등의 성질을 나타낸다. 전통적으로나 일반적으로 예술품이 연상시키는 영원성이나 영구성의 가치를 거스르는 재료들이다. 

작업방식은 또 어떠한가? ‘작업방식’이라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바나나를 테이프로 벽에 붙이는 일은 세 살짜리 아이도 할 수 있는, 지극히 쉽고 간단한 행위다. 예술적 혼이라든가 노동, 피땀눈물의 과정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 누구나 어디에서든 금방 뚝딱 설치할 수 있는 작업인 것이다. 간단, 간편, 평범이하, 허술, 허무로 귀결되는 이 작품은 의도적으로 이렇게 만들어졌다. 그래야 12만 달러에 내놨을 때 충격과 파장이 클 테니까. 

 

전시와 판매: 아트페어

<코미디언>은 2019년 12월 ‘아트바젤 마이애미비치(Art Basel Miami Beach)’ 아트페어에서 첫 선을 보였다. 아트페어라는 장소적 맥락은 이 작품을 구성하는 근간이기도 하다. 카텔란은 데뷔 초부터 도발적인 작업을 하는 것으로 악명 높은데, 그가 도발하기 위해 고려하는 것이 작품이 전시될 장소의 문화·사회·정치·역사적 맥락이다. 예를 들어, 1999년 영국에서 처음으로 전시회를 열게 된 카텔란은 1874년부터 1998년까지 영국의 국가대표 축구팀이 패한 경기를 나열해 새겨 넣은 거대한 까만 비석을 만들어 전시했다. 축구에 자부심 높은 영국의 관람객들에게 이탈리아 축구팬인 카텔란이 조용히 한 방 먹인 셈이다. 2001년에는 카톨릭 국가인 폴란드에서 당시 교황이었던 폴란드 출신의 요한 바오로 2세가 운석에 맞아 쓰러진 장면을 극사실적으로 연출한 조각상 <아홉 번째 시간(La Nona Ora)>(1999)을 전시하여 전국가적 규모의 스캔들을 일으켰다. 

아트페어는 어떤 곳인가? 말 그대로 미술시장을 뜻하는 아트페어(art fair)는 여러 상업 화랑들이 한 곳에 모여 미술품을 판매하는 행사다. 마침 지지난주 코엑스에서 열린 키아프(KIAF)와 프리즈서울(Frieze Seoul)처럼 말이다. <코미디언>이 출품된 ‘아트바젤’은 1970년 스위스 바젤에서 시작한 아트페어로, 매년 바젤뿐 아니라 2002년부터는 미국 마이애미, 2008년부터는 홍콩에서도 페어를 개최하는데, 이들은 각기 북미와 아시아 지역에서 중요한 국제적 미술 행사로 자리 잡았다. 미술계를 풍자하는 영화 <벨벳 버즈소(Velvet Buzzsaw)>(2019) 초반에 등장하는 배경이 바로 아트바젤 마이애미비치다. 드넓은 컨벤션센터에 수백 개의 화랑들이 부스를 차리고 손님을 맞이한다. 미술품을 사고 파는 장이 열리는 것이기 때문에, 대형 아트페어가 열릴 때마다 돈 얘기에 이목이 쏠린다. 가장 비싼 출품작은 뭐였고 어떤 작품이 얼마에 거래됐으며 어떤 화랑이 얼마의 매출을 올렸는지에 대한 기사가 쏟아진다.

<코미디언>은 카텔란이 15년 만에 아트페어에 출품하면서 고안한 작품이다. <코미디언>은 아트페어를 위해, 아트페어에서 완성되도록 고안되었다. 카텔란이 90년대 초부터 함께 일해 온 갤러리스트 엠마누엘 페로탕(Emmanuel Perrotin)의 말대로, 이 작품은 “팔려야 작품이 된다.”*** 판매됨으로써 비로소 완성되는 작품이란 말이다. 작품가 12만 달러는 카텔란과 페로탕이 상의하여 결정한 것으로 알려진다. 페어 첫날 두 개의 에디션이 팔리자, 마지막 남은 세 번째 에디션은 15만 달러로 올리기로 두 사람은 합의를 보았다.*** 이게 시장의 논리다. 

아트페어 한복판에 등장한 <코미디언>은 센 풍자쇼를 단단히 준비하고 무대에 오른 코미디언 같다. 뻔뻔하고 거침없이, 하지만 적절히 유머를 섞어, 평소 우리가 인지하지 못했던 현실의 모순이나 불편한 진실을 끄집어내 우리 눈앞에 들이민다. (이 바나나, 그 유명한 카텔란의 작품이라 1억인데 사겠니? 이 개념미술의 컨셉을 이해하는 당신 대단해! 저쪽 부스에 올라온 마르크 샤갈은 20억, 게오르그 바젤리츠는 50억, 이거 누가 어떻게 정한 거지? 예술의 가치에 대해 생각해봐!) 

몸소 풍자쇼를 펼쳐 보여주는 카텔란의 작업방식은 지난 30여 년간의 활동 전반에서 드러난다. 그는 미술관 안에 노숙자(실제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인형)를 데려다 놓고, 다른 작가의 작품을 훔쳐와 ‘레디메이드’라는 제목을 붙여 자기 작품인 것처럼 전시한 바 있다. 미술사적으로 따지자면, 이런 작업은 개념미술을 넘어 미술제도나 비평행위 자체를 냉소적으로 풍자하는 후기제도비평미술(post-institutional critique)로 분류될 수 있다. 카텔란이 미술제도와 개념미술에 개입하고 풍자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다음 호 원고에서 다루기로 하겠다. 

 

● 본고는 필자 이수진이 2023년 2월부터 7월까지 리움미술관에서 ‘다르게 보기’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강의한 내용을 토대로 작성되었습니다.

 

*Caroline Goldstein, “The Performance Artist Who Vandalized Maurizio Cattelan’s Banana Booth at Art Basel Will Not Face Legal Repercussions,” Artnet, February 28, 2020, https://news.artnet.com/art-world/art-basel-banana-vandal-splits-free-court-charge-1789812

**데이비드 다투나는 1974년 조지아에서 태어난 미국인 미술가로, 2019년 이 퍼포먼스로 화제를 모으기 전까지 거의 무명이었다. 이후 2022년 5월에 폐암으로 사망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Sarah Cascone, “Maurizio Cattelan Is Taping Bananas to a Wall at Art Basel Miami Beach and Selling Them for $120,000 Each,” Artnet, December 4, 2019, https://news.artnet.com/market/maurizio-cattelan-banana-art-basel-miami-beach-1722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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