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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련, '목단(6폭병풍)', 조선 19세기 중반 이후, 지본수묵, 79×34cm

박물관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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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련, '목단(6폭병풍)', 조선 19세기 중반 이후, 지본수묵, 79×34cm
허련, '목단(6폭병풍)', 조선 19세기 중반 이후, 지본수묵, 79×34cm

조선 후기에 활동한 남종문인화가 소치 허련(小癡 許鍊, 1808~1893)은 ‘허모란’이라 불린 모란도의 대가이다. 헌종 앞에서 손가락으로 모란도를 그린 것이 계기가 되어 그의 이름이 더욱 널리 알려졌다. 부귀를 상징하는 모란은 검소함과 절개를 추구한 유교 사회 조선에서 그리 환영받는 그림의 소재는 아니었다. 그러나, 18세기부터 강세황, 심사정, 최북 등의 화가들이 중국의 모란도를 모방하여 제작하기 시작하였으며 19세기 들어 허련의 왕성한 활동으로 묵모란도가 성행하였다. 허련이 채색을 하지 않고 먹만으로 그리는 묵모란도를 고수한 점은 문인 화가로서의 본분을 지키려는 자세로 여겨진다. 

허련의 묵모란도는 절지 모란도와 괴석 모란도로 나눌 수 있다. 절지 모란도는 전체 모란 중 가지 하나를 포착해서 화폭에 담아낸 형태로 18세기 화가들이 그린 중국 화보풍의 모란도를 허련이 계승한 것이다. 이전 시기 화가들은 작은 화면에 절지 모란도를 그렸지만, 허련의 모란도는 대부분 병풍으로 크게 제작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괴석과 모란을 조합한 괴석 모란도 또한 병풍으로 그려졌으며, 이는 허련이 창시한 새로운 유형의 모란도이다. 

홍익대학교 박물관 소장 <목단(6폭 병풍)>은 절지 모란도이며, 병풍 그림이다. 이 그림에서 볼 수 있듯, 허련은 연한 먹으로 모란 꽃잎 테두리를 여러 개 겹쳐 그리는 방식으로 모란꽃을 묘사하였다. 잎을 그릴 때는 비교적 진한 먹으로 테두리 없이 형태를 잡는 몰골법을 사용하였고, 잎맥은 얇고 세밀한 선으로 표현하여 꽃과 잎의 대비를 주었다. 각 폭마다 모란꽃 두 송이를 상하로 배치하고 홀수 폭은 왼쪽 아래에서 모란 가지가 시작되고, 짝수 폭에서는 오른쪽 하단에서 가지가 뻗어나가는 방식으로 병풍의 통일성을 높였다. 또한, 꽃봉오리를 그려 구성에 변화를 주며 그림에 재미를 더하였다. 

허련은 뛰어난 회화적 역량을 바탕으로 하나의 병풍에서도 다양한 형태의 모란을 배치하고 각 폭마다 변주를 주어 생동감 있는 모란을 그려내었다. 또한, 그의 모란도에는 윤곽선을 쓰지 않고 먹의 농담으로만 형태를 나타내는 몰골법과 윤곽선을 먼저 그리고 그 안을 색칠하는 구륵법이 사용되었다. 먹으로만 그림을 그렸음에도 모란꽃과 잎, 줄기를 생생하게 표현하였다는 점에서 허련의 실력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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