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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건 그 뒤의 선택이기에,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2014)

누구나 잘못된 선택을 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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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2014) 포스터/출처: 다음 영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2014) 포스터/출처: 다음 영화

우리는 종종 잘못된 선택을 하곤 한다. 그 이유는 피치 못할 개인의 사정, 순간의 착각과 오해 그리고 자기합리화 등 다양하다. 완벽한 인생은 없기에, 누구나 한 번쯤은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다만 중요한 건, 잘못된 행동을 저지른 뒤 행하는 나의 선택이다.

9년 전 개봉한 영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2014)은 소설 『How to Steal a Dog』를 원작으로 만들어졌다. 외국 소설을 한국 정서에 맞게 잘 각색했으며 귀엽고 아기자기한 연출과 탄탄한 이야기 전개로 호평받은 바 있다. 영화는 내내 어린아이의 시점으로 흘러가기에, 기자는 스스로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영화의 흔적을 따라가 봤다.

▲지소와 채랑이 다니던 초등학교 
▲지소와 채랑이 다니던 초등학교 

 

지소: 개를 훔치자.

채랑: 뭘 훔쳐?

지소: 오백만 원짜리 개를 훔치자고. 훔쳤다가 다시 돌려주면 되잖아. 사례금만 받고 돌려주면 문제없어.

 

10살짜리 초등학생 ‘지소’는 엄마 ‘정현’, 남동생 ‘지석’과 함께 집 없이 작은 봉고차에서 생활한다. 지소의 아빠는 사업이 망한 후 어디론가 사라진 뒤로 연락이 되지 않는다. 이런 현실에 지소는 근심에 빠진 채로 살아가고, 그런 지소가 보기에 정현은 별 대책도 없이 괜찮은 척만 하고 있는 것 같아 답답하기만 하다. 그러던 어느 날, 지소에게 집이 꼭 있어야만 하는 사정이 생기게 된다.

기자가 처음으로 방문한 곳은 아이들이 다니던 초등학교다. 영화에 나왔던 계단에 앉아있으니 웃으면서 하교하는 학생들이 눈에 띄었다. 지소의 나이와 비슷해 보이는 학생들이었다. 다만, 영화 속 지소는 저 아이들의 해맑은 미소와 반대로, 나이대에 어울리지 않는 고민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단 사실이 떠오르면서 조금 씁쓸해졌다.

▲지소 지석 남매와 월리
▲지소 지석 남매와 월리

지소는 자신이 집 없이 차에서 지낸다는 사실을 유일하게 아는 친구 ‘채랑’과 함께 이 영화의 제목처럼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을 계획하게 된다. 어른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학교 수업을 들으면서 말이다. 여기서 집을 구하는 것과 개를 훔치는 것이 무슨 연관이 있냐며 의문이 드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 연결고리는 어른의 관점이 아닌,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보아야 찾을 수 있다. 다음 달에 있을 자신의 생일 파티 때문에 집이 꼭 필요해진 지소는 부동산 앞에서 ‘평당 오백만 원짜리 집’이라 써붙인 종이를 발견하게 된다. 그런데 지소는 ‘평당’의 뜻을 몰랐기 때문에 단순히 분당의 옆 동네쯤으로 어림짐작했고, 오백만 원만 있으면 평당에 있는 집 한 채를 구할 수 있다는 귀여운 착각을 하게 된다. 그러던 와중 개를 찾아주면 사례금 오백만원을 준다는 전단지를 보게 되고, 마음이 급해진 지소는 개를 훔쳐서 집을 구할 계획을 짜게 된다.

우리는 오백만 원이 집을 구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어린 시절을 생각해 본다면, 돈에 대한 개념이 제대로 잡히지 않았을 때니 오백만 원은 무엇이든 할 수 있을 만큼 큰돈이었다. 그리고 그건 지소와 채랑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지소와 채랑은 개를 훔친 다음 돈만 받고 안전하게 개를 돌려주면 별문제 없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누군가의 개를 훔친다는 건 그 자체로 큰 잘못이다. 그러나 지소가 처한 현실은 어른들도 견디기 힘들만큼 무거운 짐과도 같기에, 지소의 엉뚱한 계획은 귀여우면서도 씁쓸한 미소를 짓게 만든다. 우여곡절 끝에 아이들은 정현이 일했던 레스토랑 마르셀의 ‘노부인’이 키우던 개인 ‘월리’를 훔치는 데 성공한다. 그런데 기대와는 달리 사례금이 적힌 전단지는 보이지 않고 상황은 자꾸만 복잡해져 간다.

▲월리를 위해 추격전을 펼쳤던 도로
▲월리를 위해 추격전을 펼쳤던 도로

 

대포: 내가 잘해주지 못해서 그렇지… 보고 싶을 때는 멀리, 멀리서 이렇게 쳐다보고 돌아오고 그런다고.

지소: 우리 아빠도 그럴까요?

대포: 그럼. 세상 아빠들은 다 그래.

 

개를 훔치는 데 성공하긴 했다만, 생각과 달리 지소의 고민은 깊어져만 간다. 그런 와중에, 집도 없고 걱정도 없어 보이는 노숙자 ‘대포’가 이상하게 자꾸만 지소 앞에 나타난다. 지소는 자신이 개를 훔친 사실을 아는 듯 모르는 듯 자꾸 개에 대해 물어보는 대포가 불편하기만 하다. 심지어 자기처럼 집도 없는데, 자신과 달리 천하태평하게 살아가는 대포가 너무 이상하다. 그런 대포가 어느 날 미얀마의 ‘모켄족’ 이야기를 해준다. 바다에서 태어나 평생을 바다 위에서 살다가 죽는 그런 삶, 자신도 비슷한 인생을 살고 있다고 말이다.

지소에게 아빠란 가족을 버린 무책임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지소의 상황을 생각해 봤을 때, 지소가 아빠를 미워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지소는 생각지도 못했던 사람에게서 아빠의 사정을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하게 된다. 자신의 삶이 부끄러워 딸을 보러 가지 못하는 대포처럼, 자신의 아빠도 비슷한 상황이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사실 지소가 어른들의 일을 모두 이해할 필요는 없다. 그렇지만 지소는 대포와의 대화를 통해 처음으로 자신이 모르는,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을 수도 있단 걸 깨닫게 된다.

모든 일이 마무리된 후, 지소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대포의 딸이 하고 있을 법한 생각을 대포에게 말해준다. 마치 며칠 전, 대포가 자신에게 해 준 아빠 얘기처럼 말이다.

 

지소: 아저씨 딸도 아저씨 엄청 보고 싶어 해요. 아저씨는 상상도 못할 걸요?

 

▲레스토랑 마르셀의 촬영지 
▲레스토랑 마르셀의 촬영지 

 

지소: 나는 그 순간 내 평생 가장 힘겨운 일을 해냈다. 할머니한테 모든 사실을 털어놓은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떠난 아빠 얘기부터 집에서 쫓겨나 차에서 사는 이야기, 평당에 있는 오백만 원짜리 전셋집이랑 그 집 앞마당에서의 생일파티까지, 모두 말했다.

 

마지막으로 기자는 마르셀의 촬영지를 방문했다. 영화에 나온 것처럼 입구부터 고급스러운 느낌을 풍기고 있었다. 현재는 레스토랑이 아닌 카페로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영화의 후반부, 지소는 개를 훔쳐 오백만 원의 사례금을 받으려는 계획을 포기하고 월리를 마르셀로 데려다준다. 그리고 노부인에게 모든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한다. 노부인은 지소를 바로 용서해 주지 않는다. 대신 지소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꼼꼼히 짚어준다. 그리고 묻는다. 내일 월리의 산책을 시켜줄 수 있겠냐고. 

한편의 동화와도 같은 이 영화는 자기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 아이가 무모하지만 귀여운 계획을 세우면서 발생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그 과정에서 실제로 비윤리적인 일을 저지르며 죄책감을 경험하게 되고, 자신이 몰랐던 어른들의 사정을 이해하며 내면적으로 성장한다. 각자의 결핍을 지니고 있는 어른들 속에서 잘못된 선택을 바로잡은 지소에게 이번 경험은 오래도록 남아 성장의 밑거름이 되지 않았을까. 악몽 같은 사건으로 남았을 수도 있었지만 주변 어른들의 불완전하지만 따뜻한 배려로 마냥 힘들었던 시간으로 남진 않았을 것 같다. 누구나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다만 잘못을 뉘우치고 진심으로 사과한다는 건 매우 중요하지만 그만큼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눈물을 흘리며 진심으로 사과하는 지소와 지소의 말을 끊지 않고 끝까지 묵묵히 들어준 노부인은 관객들에게 따뜻한 여운을 전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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