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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위협하는 필수의료 공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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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수의료’란 생명과 직결되는 의료 서비스를 일컫는다. 인터넷 뉴스를 비롯한 언론에서 쉽게 접할 수 있지만 사실 필수의료란 단어는 학문적으로 명확하게 정의된 용어가 아니다. 하지만 통상적으로 응급·외상·감염·분만 등 필수 불가결한 의료 서비스를 의미하며 주로 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과·정신과 등을 말한다. 위와 같은 정의에서 미루어 볼 때 필수의료가 우리 삶에 있어 꼭 필요한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최근 필수의료 공백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기 시작했으며 점점 더 심각한 문제로 심화하고 있다. 어느새 우리 코앞까지 다가온 필수의료 공백 문제, 이번 시사파수꾼에서는 우리 삶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필수의료 공백에 대해 다뤄 보고자 한다.

【우리 삶에 드리운 그림자, 필수의료 공백】

필수의료 공백이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주목받게 된 배경에는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사망 사건’이 있다. 지난해 7월 서울아산병원 소속 간호사가 근무 도중 뇌출혈로 쓰러져 사망했다. 서울아산병원에 소속된 신경외과 의사 중 뇌출혈 수술이 가능한 의사는 총 2명이었지만 사건 발생 당시, 2명 중 1명은 해외 학회에 참석 중이었고 다른 1명은 지방 출장 중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해당 병원 내에 수술이 가능한 의사가 없는 상황이었고, 급하게 인근 병원으로 이송했지만 결국 사망했다. 해당 사건 전에도 의료 인력 부족에 대한 목소리가 지속적해서 나오고 있었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 국내 의사 부족 문제가 본격적으로 주목 받게 됐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12월 가천대학교 길병원이 의료진 부족으로 인해 소아청소년과 입원 진료 중단을 선언했다. 이는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수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인데, 실제로 2023년 상반기 전공의 1년 차 모집 과정에서 길병원의 소아청소년과 지원자는 1명도 없었다고 한다. 다행히 올해 1월 말부터 병동 운영은 재개됐지만, 이 일로 인해 소아청소년과 인력 부족 문제가 눈앞으로 다가왔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현재 대한민국의 인구 대비 의사 수는 OECD 회원국 중 가장 적은 수준이다. 2021년 말 기준 국내 인구 1천 명당 의사 수는 2.1명으로 OECD 회원국의 평균이 3.7명인 것과 비교하면 낮은 수치임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서울(3.4명)을 뺀 나머지 지역의 평균은 1천 명당 1.8명에 그치는 수준으로 특히 필수의료과의 의사 수가 부족한 상황이다. 의료정책연구원이 발표한 「필수의료 활성화를 위한 정책방안 연구」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연평균 전문의 수는 2011년 기준 64,461명에서 2020년 기준 88,877명으로 3.3% 증가했지만, △외과 △흉부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는 1.2~2.2%로 낮은 수치의 증가율을 보였다. 또한, 2017년 기준 전체 전공의 충원율이 96%인 것에 비해 대표적인 필수의료과인 흉부외과는 54%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흉부외과와 소아청소년과의 전공의 지원율은 2019년부터 꾸준히 감소하는 추세를 보였다. 흉부외과는 충원율이 △2019년 64.6% △2020년 62.5% △2021년 56.3% △2022년 47.9%로, 소아청소년과는 충원율이 △2019년 94.2% △2020년 74.1% △2021년 38.2% △2022년 28.1%로 나타났다.

필수의료과 중에서도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건 소아청소년과다. <PD수첩>(MBC)에서 방영된 자료를 참고하면, 지난 5년간 폐업한 소아청소년과는 총 662곳에 달한다. 또한 2023년 전반기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모집 정원이 207명인 것에 비해 소아청소년과에 지원한 레지던트는 33명에 불과했다. 대한민국의 출산율 저하도 하나의 원인으로 꼽을 수 있지만 일각에서는 2017년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 사건’이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율 감소에 유의미한 영향력을 끼쳤다고 보고 있다.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 사건이란 2017년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신생아 4명에게 심정지가 발생했고 이후 80여 분만에 전원 사망한 일을 말한다. 담당 간호사 및 수간호사, 전공의 등 5명이 업무과실치사 혐의로 넘겨졌고 해당 사건은 지난해 12월 5년 만에 무죄로 마무리됐다.

【필수의료 공백…그 원인은?】

한국내 필수의료 공백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히는 세 가지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첫 번째는 의사들의 열악한 근무 여건이다. 대표적으로 ‘온콜(On-Call) 당직’이라 불리는 긴급대기, 호출 당직이 있다. 온콜 당직이란 응급 환자가 발생할 경우를 대비해 의료진이 신속하게 병원 복귀가 가능하도록 병원 근처에서 대기하는 제도를 말한다. 하지만 온콜로 인한 의료진의 부담과 피로에 비해 제대로 된 보상이나 여건이 보장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병원의사협의회 조사에 따르면, 조사에 참여한 이들 중 47%가 온콜 당직을 하고 있으며 일평균 온콜 횟수는 2.4회 정도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이에 응답한 이의 62%는 퇴근 후 휴식 시간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다고 답했으며 56%는 온콜 당직으로 인해 다음날 근무에 지장을 받는다고 답했다. 온콜로 인한 보상도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2020년 2월 11일 자 『의사신문』에 기재된 기사를 참고하면, 온콜에 대한 보상으로 일정한 금액을 받는 경우는 8%에 불과하고 61% 정도는 전혀 보상받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두 번째는 의료수가(醫療酬價) 문제다. 의료수가란 의료 서비스에 대해 환자의 본인 부담금과 건강보험 공단 지원금을 합친 금액을 말한다. 수가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치료에 필요한 재료 원가, 의사와 간호사의 인건비, 병원 운영비 등을 고려해 결정하며, 보통 일정한 수준으로 고정돼 있다. 의료수가를 설정해 두는 이유는 필수적으로 필요한 의료 서비스에 대해 금액상한선을 지정해 둠으로써 여의치않은 형편으로 인해 필수 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상황을 예방하기 위함이다. 의료수가가 정해지지 않은 비급여 항목, 즉 보험 적용이 안 되는 과목은 병원에서 치료비를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다. 하지만 그에 반해 △외과 △내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등의 필수 의료 과목은 의료수가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필수의료과의 의사들이 받는 임금이 낮다. 또한 병원 경영 상으로도 필수의료과들은 적자를 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병원 입장에서 부담이 될 수 있다. 환자들의 부담과 필수의료과 의사들의 부담을 모두 줄이기 위해선 건강보험 재정을 지금보다 더 투자하여 건강보험 공단 지원금을 늘려야 하는데, 이는 건강보험 측에 재정적 부담이 될 수 있기에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마지막으로 의료 분쟁에 대한 의사들의 부담을 꼽을 수 있다.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전체 의과 의료 분쟁 조정 신청 건수는 총 1,905건이다. 이정근 대한의사협회 상근부회장은 “필수의료는 고난도 고위험 수술이 많아 좋지 않은 결과가 자주 발생하지만 선의를 행한 의사들을 법적 분쟁에서 보호해 줄 법안이 없어 그간 필수의료를 기피하는 현상으로까지 이어지게 됐다.”라고 밝히며 의료 분쟁에 대한 필수의료과 의사들의 부담에 비해 법적 보호가 부족한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필수의료 공백을 메꾸기 위한 대책】

필수의료 공백이 사회적인 문제로 떠오르게 되면서 정부 차원의 노력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 2022년 8월 25일(목) 보건복지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의 기관들이 참여한 ‘필수의료 확충 추진단’이 발족됐으며, 이후 2022년 12월에는 보건복지부에서「건강보험 지속가능성 제고 및 필수의료 지원 대책(안)」을 발표한 바 있다.

필수의료 공백 해결을 위해 제기되는 대표적인 방안으로는 ‘의대 정원 확대’가 있다. 이는 전체 의사 수를 늘려 필수의료과 의사 수를 늘리기 위함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논란도 뜨겁다. 문재인 정부 시절 공공 의대를 설립해 의대 정원 확충을 도모했지만 대한의사협회에서 파업, 즉 의사들이 집단적으로 진료를 거부하면서 2020년 9월 원점 재검토가 선언됐다. 대한의사협회가 의대 정원 확대에 반대하는 이유 중 하나는 다음과 같다. 단순히 의사 수를 늘린다고 해서 필수의료 부문의 의사가 늘어날지는 미지수이다. 또한, 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해 단순히 의사의 공급만 늘려서는 해결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필수의료 공백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며 세계 여러 나라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필수의료 부족 문제를 해결해나가고자 했다. 일본은 1972년 자치의과 대학을 설립하고 1997년 지역정원제도를 도입함으로써 필수의료 공백과 더불어 지역 간 의료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이에 1978년에서 2016년까지 자치의과대학 졸업생 수는 총 4,024명으로 93.6%가 여전히 현직 종사 중이다. 또한 영국은 필수의료과 인원 확보를 위해「48시간 근로시간 준수법」을 발표했다. 해당 법률은 의료 인력들이 하루 최대 근무 13시간, 일주일에 48시간 이내로 일하도록 규정했고 이에 따라 병원은 의료 인력을 추가로 고용해야 한다.

응급환자가 구급차를 타고 병원을 전전하다 치료를 해줄 병원을 찾아다니다가 끝내 도로 위에서 사망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우린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는 모두 필수의료 부족으로 인해 벌어진 일들로 그 환자는 나의 가족, 친구, 지인 혹은 내가 될 수도 있다. 필수의료 공백은 해결책이 명확하지 않고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문제지만 그만큼 우리 삶에 밀접해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역할이 크므로, 정부 차원에서 꾸준히 국내 사정에 맞는 적절한 해결책을 모색해나가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

[참고문헌]

박진규,『필수의료의 개념과 공공의료』, 2020, 의료정책포럼

이상무,『필수의료』, 2019, 대한의사협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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