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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리어프리 극장, 문화는 모두에게 평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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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로운 주말, 사람들은 사랑하는 가족 또는 연인과 함께 평범하지만 소중한 일상을 보낸다. 평소 자주 가는 식당에서 밥을 먹고,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홀짝이다가 자연스레 영화관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연말이나 생일 등 특별한 날이 찾아오면 뮤지컬이나 연극 티켓을 손에 꼭 쥐고 공연장에 들어서기도 한다. 그런데 만약, 배우들의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면 어떨까? 배우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고, 입 모양조차 불분명하다면? 설레는 마음으로 보러 간 영화나 공연을 제대로 이해하고 즐기지 못한 채 터덜터덜 걸어 나오는 자기 모습을 상상해 본 적이 있는가? 누군가는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문화생활을 장애인들도 동등하게 향유할 수 있도록 하는 우리 모두의 공간, 배리어프리 극장을 소개한다.

 

[ 배리어프리란? 관련 기술 적용 사례 ]

배리어프리(Barrier Free)란, 사회적 약자들이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물리적·제도적 장벽을 허물자는 운동이다. 이는 1974년 유엔(UN) 장애자 생활 환경 전문가 회의에서 <장벽 없는 건축 설계(barrier free design)>에 대한 보고서가 발표된 이후 생긴 개념으로 건축학계에서 처음 사용됐고, 오늘날에는 모든 분야에 적용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시를 몇 가지 들자면, 독일의 경우 배리어프리를 교통 분야에 접목해 모든 버스를 저상버스로 바꿨다. 저상버스는 기존 버스보다 입구가 넓고, 차량 자체에 자동 경사판 시스템이 장착돼 있어 휠체어를 이용하는 승객이 불편함 없이 승차할 수 있다.

일본에서는 시각장애인이나 일반인을 대상으로 길 안내 로봇 ‘AI 여행 가방’의 실외 실증 테스트를 지난 1월 28일(토)부터 2월 6일(월)까지 진행했다. ‘AI 여행 가방’은 시각장애인을 목적지까지 자동으로 유도하는 여행 가방 모양의 자율이동로봇이다. 이는 사용자가 손잡이를 잡고 있으면 장애물이나 사람을 피해 설정한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안내한다.

LG전자에서는 ‘베스트 동행 케어 서비스’를 지난 6월 16일(금)부터 시행하고 있다. 해당 서비스를 신청하면, 신체적 제약이 있는 고객도 편리하게 매장을 방문할 수 있도록 매니저가 1:1로 도움을 주고, 고객이 매장 주차장에 도착하면 차량에서부터 매장까지의 모든 이동을 돕는다. 그뿐만 아니라, 비대면·수어 화상상담 서비스를 제공하고, 수어 안내 키오스크를 운영하고 있다.

▲'배리어프리 영상 제작 전문가 양성 과정' 교육 현장/조은비 제공

[ 문화예술분야에서의 배리어프리—장애인 문화예술향유권을 향해 ]

배리어프리는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하게 적용되고 있다. 본 기획은 그중 장애인의 문화 향유권을 위한 문화·예술 분야에서의 배리어프리에 대해 집중적으로 탐구해 보고자 한다.

먼저 국립극장은 △화면 해설△음성 해설△자막△수어 통역 등의 기능을 제공해 왔는데, 지난 2021년 온라인 극장을 도입하면서 그 특성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두산아트센터의 공연 역시 대부분 장애인을 위한 지원 프로그램이 별도로 준비돼 있다. 안내 보행, 문자 소통 등 별도의 지원이 필요할 경우 서비스를 예약할 수 있으며, △음성 소개△무대 모형 터치 투어△수어 통역△한글 자막 해설 등의 기능을 제공하고 있다. 강연의 경우에도 속기사가 실시간으로 문자 통역을 하며, 강연이 끝난 이후 유튜브에 영상을 올려 수어 통역까지 제공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개최된 ‘제12회 서울 배리어프리 영화제’에서는 최신 배리어프리 영화·배리어프리 단편영화 제작지원작·배리어프리 단편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을 배리어프리 버전으로 선보였다. 그뿐 아니라 최근 OTT를 통해 대중화되고 있는 배리어프리 자막에 대한 현황과 발전 방안을 토론해 보는 ‘배리어프리 포럼’도 개최됐다. 본지에서는 (사)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에서 진행한 ‘배리어프리 영상 제작 전문가 양성 과정’을 수료한 후 음성 해설 작가로서 제13회 배리어프리영화제에 작품을 출품한 조은비(중앙대학교 재학) 학생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Q. 음성 해설 작업은 어떤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나?

A. 먼저 원본 영상을 받고 여러 번 감상한다. 눈을 감고 작품을 보기도 하고, 소리로는 들리지 않는 행동이나 표정, 혹은 듣고도 구별이 힘든 소리를 골라내 대본을 적는다. 대본이 작성되면 본격적인 녹음에 들어간다. 녹음하다 보면 음성 해설은 긴데 주어진 시간이 짧은 경우가 있기 때문에 문장을 최대한 단축하거나 생략한다. 그렇게 녹음이 끝나면 믹싱 작업을 진행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정확한 정보를 명확히 전달하는 것이다.

 

Q. 음성 해설을 할 때 어려운 점은 없는가?

A. 음성 해설 작업을 하면서 느낀 점은 우리가 소리를 ‘시각’으로 인지한다는 사실이었다. 보통 비가 바닥에 떨어지는 장면을 보면서 ‘투둑투둑’, ‘추적추적’ 등의 소리를 상상하지만, 비가 내리는 장면을 눈을 감고 감상하면 전을 부치는 소리인지, 고기를 굽는 소리인지, 혹은 빗소리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자칫 ‘소리가 들리니까 당연히 비가 온다는 걸 알겠지? 이 해설은 생략하자.’ 하고 넘어가면, 시각장애인 관객은 ‘갑자기 고기를 굽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한 어려움이 있기에 시각장애인의 입장에 서서 최대한 소리에 대한 의문을 품은 채 해설을 작성하려 노력한다.

 

Q. 더욱 많은 사람이 예술을 향유할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A. “예술을 창작하고, 유통하고, 소비하는 모두가 끊임없이 ‘모두가 누릴 수 있는 배리어프리 예술’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국내 제1호 음성해설 작가인 서수연 작가가 한 말이다. 음성해설은 누군가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이 아닌, 우리 모두에게 다양한 선택지를 주는 것이다. 음성해설과 자막은 비장애인에게 있어 굳이 필요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장르의 다양성을 경험하게 해주는 것이다. 교육 과정을 수료하면서 ‘나만 즐기는 것이 다가 아니구나. 우리 모두 즐기면 훨씬 재밌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사회에는 다양한 장벽이 곳곳에 있다. 장벽을 부수는 일은 관심에서부터 시작한다. 모두가 각자의 분야에서 조금씩 장벽을 허물다 보면 언젠가 우리 사회는 배리어프리 월드가 되어 있지 않을까?

 

[ 배리어프리 공연으로 우리 모두 ‘합★체’]

지난 17일(일), 본지는 배리어프리 공연을 직접 관람하기 위해 국립극장에 방문했다. 지난 14일(목)부터 17일(일)까지 4일간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공연된 음악극 <합★체>는 2022년 초연 당시 배리어프리 공연으로 호평받아 1년 만에 다시 찾아온 극이다.

공연 당일, 기자는 극장에 방문해 지정된 자리에 앉았다. 입장 단계까지는 여타 공연과 다를 바 없다 느꼈지만, <합★체>만의 다른 점은 공연 시작 직전부터 시작된다. 공연 시작 전 안내 음성과 함께 배우들이 나와 수어 통역을 진행했다. 이후 암전된 무대 위로 배우들이 등장했다. 청각 장애인을 위한 수어 통역은 배우의 뒤를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수어 통역사의 ‘그림자 통역’으로 진행되고, 시각 장애인을 위한 음성해설은 라디오 DJ ‘지니’ 역의 대사로 풀어내 위화감 없이 극에 녹아든다. DJ 지니는 극 중 전지적 작가 시점의 해설자로, 실제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처럼 무대 세트의 변화나 극중 인물의 심리 변화를 생생하게 전달한다. 그림자 통역은 하나의 배역을 배우와 수어 통역 배우가 함께 풀어가는 방식으로, 수어 통역사는 안무와 표정 연기도 함께 소화한다. DJ 지니 역과 그림자 통역 모두 장애인 관람객을 위한 장치이지만, 비장애인인 기자가 관람하기에도 불편함이 없었다. DJ 지니의 해설은 따뜻한 극의 분위기에 어울리는 하나의 배역으로 느껴졌고, 그림자 통역 역시 배우의 연기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간혹 배우의 발음이 불명확해서 들리지 않는 경우에도 공연장 양쪽 끝에 위치한 스크린에 송출되는 자막을 읽을 수 있어 더욱 편했다.

국립극장은 <합★체>를 비롯해 <틴에이지 딕>, <우리 읍내> 등 배리어프리 공연을 꾸준히 제작해 무대에 올린 바 있다. 본지는 이러한 배리어프리 공연이 어떠한 과정을 통해 제작되는지 국립극장 공연기획부 공연기획팀 이승일 담당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알아보았다.

 

Q. 배리어프리 공연의 제작 과정이 궁금하다.

A. 작품을 선택하고 창작진이 구성되는 과정은 일반 공연과 같다. 이 과정을 거치고 나면 농인 관객을 위해 수어 통역을 정해진 위치에서 할지 그림자 통역으로 할지 선택한다. 그리고 시각장애인 관객을 위한 음성 해설을 폐쇄형 또는 개방형 중 선호하는 방식을 선택하게 된다. 이렇게 모든 것이 결정되고 나면 각 분야의 전문가와 함께 제작한다. 개방형 음성 해설을 진행한 공연의 예로 <합★체>가 있다. 나아가 배리어프리 공연을 제작할 때 다른 작품에서는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수어 통역사, 소리 정보가 표시된 자막 등의 예산까지 고려해야 하므로 예산 책정 과정에서도 차이가 있다.

 

Q. 배리어프리 공연 시 실제 장애인 관람객의 만족도는 어떠했는가.

A. 배리어프리 공연의 수가 늘어날수록 장애인 관람객의 수 역시 함께 늘어나고 있다. 실제 관람평으로는 “관람하기 편안했다.”, ”작품 내용이 이해가 잘 됐다.” 등의 평이 있었다.

 

Q. 일반 공연과 비교했을 때, 배리어프리 공연의 제작 시간은 어느 정도로 차이 나는가?

A. 어떠한 형태의 배리어프리를 녹이느냐에 따라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농인 관객을 위해 수어를 그림자 통역으로 하는가, 아니면 정해진 위치에서 수어 통역을 하는가에 따라 차이가 있다. 배우와 수어 통역사가 동선을 함께하는 그림자 통역의 경우, 배우와 통역사가 함께 연습해야 한다. 이때 대사의 속도와 이동 속도를 함께 고려해야 하므로 더 많은 준비 시간이 필요하다. 정해진 위치에서 수어 통역을 하는 경우 연습을 나누어 진행하고, 공연 준비 후반부에 함께 장면 안에 녹이면 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적은 시간을 요한다.

▲'합★체'가 공연되고 있는 국립극장 로비
▲'합★체'가 공연되고 있는 국립극장 로비

 

[ 그럼에도 아직 갈 길이 먼 배리어프리 ]

‘배리어프리’를 위한 여러 노력에도 불구하고 장애인들 앞에 놓인 이 문화적 장벽은 아직 완전히 허물어지지 않았다. 작년 11월 시·청각장애인을 대상으로 진행된 ‘영화·극장 만족도 설문조사’에서 그 현실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해당 설문에서 서울농아인협회 회원 101명 중 53명은 보고 싶은 영화를 골라보는 VOD (Video On Demand) 서비스보다 영화관에서 관람하는 것을 선호한다고 답했다. 영화관에서의 직접 관람을 선호하는 청각장애인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그 바람을 실현하기까지 많은 불편을 겪고 있다. 이에 대해 조윤주 서울농아청년회 부회장은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보고 싶은 한국 영화가 있으면 배리어프리 버전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라며 일반 영화보다 늦은 배리어프리 영화 개봉으로 인해 겪는 불편을 언급했다. 시각장애를 갖고 있는 방송인 권순철 씨는 윤가은 감독의 영화 <우리들>(2016)을 배리어프리 버전으로 볼 기회가 없어 개봉 6년 만에 관람했다고 한다.  그는 “배리어프리 영화 공지가 나오면 공지에 따라 미리 일정을 조정해야 한다. 영화도 선택의 폭이 좁으니 수동적으로 관람할 수밖에 없다.”라며 좁은 영화 선정 범위 또한 불편으로 꼽았다. 『오마이뉴스』의 취재에 따르면, 2018년부터 2020년까지 3년간 평균 실질 개봉작 약 180편 중 배리어프리 영화로 제작된 것은 30여 편에 불과했다. 또한, 지난 2021년 전국 3사 영화관 456곳 중 배리어프리 영화가 상영된 곳은 33관에 불과했다. 영화 외에도 연극, 뮤지컬, 전시에도 장벽은 존재하고 있었다. 특히 연극의 경우, 예산이 책정된 공연이 한정적인 데다가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에 드는 인력이나 비용의 규모가 크기 때문에 소규모 극단에서는 배리어프리를 시도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평범하다는 뜻의 영어 단어 ‘Normal’ 속에는 모두라는 뜻의 단어 ‘All’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난 6월 공개된 수원시립미술관의 현대미술 전시 <어떤 Normal (All)>의 수어 해설 중 하나다. 그리고 시각장애를 갖고 있는 박인범 씨는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배리어프리 영화도 장르에 속한다고 생각한다.”라며 배리어프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배리어프리 서비스의 부족한 공급에 부족한 수요를 탓해서는 안 된다. 문화생활을 즐기고 싶어도 장벽 때문에 즐기지 못하는 이들이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배리어프리는 다양한 ‘어떤’ 관객을   위해 항상 존재해야 한다.

 

김한세 기자(C231066@g.hongik.ac.kr)

박정민 기자(c331077@g.hongik.ac.kr)

황혜성 기자(runa4789@g.hongi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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