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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을 향한 몸부림은 아름답지 않다

엘리자 히트먼(Eliza Hittman, 1979~) 감독의 작품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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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하고 온화한 부모님의 지원, 언제나 바른길로 인도해 주시는 인생의 선생님, 말 못 할 사정까지 믿고 공유할 수 있는 든든한 친구들, 그리고 그 속에서 단단하게 성장하는 주인공. 모두가 기대하는 이상적인 성장 이야기는 이럴 것이다. 그러나 엘리자 히트먼 감독은 10대 청소년들이 고군분투하며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아름답거나 감동적으로 담아내지 않는다. 그녀가 바라본 어린아이들의 몸부림은 처절하지만, 영화에는 너무나도 담담하게 그려진다. 고난과 역경, 그 끝에 온전한 성장이 있을지도 미지수이다. 엘리자 히트먼 감독의 <전혀 아니다, 별로 아니다, 가끔 그렇다, 항상 그렇다(Never Rarely Sometimes Always)>(2020) 속 한 소녀와 <브루클린의 파도(Beach Rats)>(2017)가 담아낸 한 소년의 이야기로 혼란스러운 10대들의 표상을 들여다보자.

 

[뉴욕으로 떠난 소녀]

펜실베니아주(Pennsylvania)의 한 시골 마을에서 살아가는 17세 소녀 ‘어텀’. 그녀는 자기 몸에 변화가 일어난 것을 느끼고 산부인과에 찾아가게 된다. 그렇게 임신 사실을 알게 된 그녀는 낙태를 다짐한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에게 무관심한 부모님께 이 사실을 말하거나, 낙태가 죄라고 말하는 영상을 보여주는 산부인과에 도움을 요청할 수 없다. 결국 그녀는 사촌 ‘스카일라’와 함께 18세 이하의 여성이 임신 중절 수술을 받을 수 있는 뉴욕으로 떠난다.

어텀은 자신이 내린 결정, 즉 낙태에 대해 의문을 품지도, 후회하지도 않는다. 아이에 대한 죄책감이나 미안함을 느끼지도 않는다. 그저 낙태할 방법을 몰랐던 때에 인터넷에서 본 대로 자신의 배를 주먹으로 내리쳐 짙게 남아버린 멍 자국만 있을 뿐이다. 세상에는 원치 않는 임신을 해, 임신 사실을 부모에게 말할 수도 없고, 부모가 그 사실을 함께 짊어져 줄 수 없는 상황이 존재한다. 감정적 여유도, 경제적 여유도 없어 어쩔 수 없이 낙태를 택할 수밖에 없는 소녀들이 있다. 감독은 옳고 그름의 문제를 떠나, 어린 소녀들에게 낙태가 얼마나 힘들고 위험한 일인지 보여준다. 영화는 낙태를 결정하는 갈림길에 선 여성에게 부담을 얹어주지도, 낙태를 반대하며 생명의 고귀함이나 숭고함을 강조하지도 않는다. 임신 중단의 이유와 이를 강요한 사람이 있는지 묻던 간호사는 “이유가 무엇이든 당사자의 의지대로 한 것이라면 괜찮다.”라고 말한다. 또한, ‘아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누군가의 잘못과 책임에 관한 이야기가 아닌 ‘낙태’ 그 자체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든다.

영화는 10대 소녀가 마주하는 다양한 폭력을 다룬다. 먼저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여성을 향한 남성의 폭력을 보여준다. 학교 발표회 날,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어텀을 향해 한 남학생은 “헤픈 년!”이라며 소리치고, 그녀의 아버지는 강아지에게 그녀가 들었던 성희롱 발언을 따라 하며 은근히 그녀를 쳐다본다. 어텀과 스카일라는 아르바이트하는 마트의 주인과 손님에게 노골적인 성추행과 성희롱을 당하고, 뉴욕의 지하철에서는 한 남자가 그녀들을 바라보며 수음을 시도한다. 그러나 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무시하거나 도망치는 일밖에 없었다. 나아가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소녀에게 사회는 출산을 강요한다. 어텀이 찾아갔던 마을 산부인과의 의사는 낙태 반대 영상을 보여주며 출산 후 입양 보낼 것을 강요한다. 임신 중절 수술을 위해 찾아갔던 뉴욕의 병원 앞에서는 한 종교단체가 위협적으로 낙태 반대 시위를 진행한다. 수술에 들어가기 전 이루어진 조사 중 ‘상대가 내가 원하지 않을 때 억지로 성관계를 강요했다.’라는 항목에 어텀은 끝내 대답을 하지 못하고 참고 참았던 눈물을 터트린다. 위기에 처한 청소년에게 마땅한 도움을 지원할 어른은 없고, 어텀은 모든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이러한 폭력의 한가운데 놓인 어텀과 소녀들은 폭력을 거부할 힘이 없고, 힘을 빌릴 수 없기에 그저 참고 견뎌낸다. 수술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 올라타 창밖만 바라보는 어텀의 눈빛은 지독하게 공허하다. 누군가는 자신의 아픔을 묵묵히 이겨내는 어텀의 모습을 보고 어른스럽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실 그녀의 상처는 아물지 못하고 계속해서 곪아갈 것이다.

▲'전혀 아니다, 별로 아니다, 가끔 그렇다, 항상 그렇다' 포스터
▲'전혀 아니다, 별로 아니다, 가끔 그렇다, 항상 그렇다' 포스터

[뉴욕에서 자란 소년]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모르겠어.” 뉴욕 브루클린(Brooklyn)의 바닷가 마을에 사는 ‘프랭키’는 삶의 방향이 불확실한 10대 소년이다. 그는 질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며 마약과 함께 무료한 하루하루를 보낸다. 마초 이미지에, 축제에서 만난 처음 보는 여자와 거뜬히 하룻밤을 보내는 것처럼 보이는 프랭키는 사실 남성 전용 랜덤 화상통화 사이트를 통해 남자들을 만난다. 축제에서 만난 소녀 ‘시몬’과의 관계가 깊어질수록, 그는 사이트 속 남자들과 실제로 만나 육체적 관계를 맺기도 한다. 그렇게 프랭키는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깊어져 가지만, 이러한 이야기를 마음 편히 나눌 수 있는 친구는 없었다. 여느 때처럼 사이트를 통해 알게 된 남자를 만나러 가던 길에 프랭키는 자신의 친구들과 마주친다. 끝까지 자신의 사정을 고백하지 못한 그는 그저 마약을 구하기 위해 남자들을 만나는 것이라고 거짓말한다. 마약을 얻을 수 있다는 얘기에 그의 친구들은 동참하고, 결국 그들은 마약을 뺏기 위해 살인까지 저지른다.

우리는 누구나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을 찾아내기 위해 헤맸던 시기가 있을 것이다. 가족과의 갈등, 성 정체성에 대한 고민, 거짓으로 유지하는 위태로운 친구 관계,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육체적 관계, 일탈의 끝을 달리는 범죄까지. 프랭키는 10대 소년소녀들이 할 수 있는 고민과 방황을 한데 모아 놓은 인물이다. 이번에도 감독은 프랭키의 모습을 그저 관조한다. 불안정한 심리를 지나치게 부각하지 않으며, 그를 동조하거나 비판하지 않는다. 이를 통해 혼란스러운 10대의 표상을 현실적으로 담아내며 그들이 느끼는 두려움과 욕구 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특히나 성 정체성 고민에 관한 소재는 영화의 배경과 맞물리며 더욱 강조된다. 다양성의 상징이라고 볼 수 있는 미국 뉴욕이지만, 프랭키를 비롯한 그의 주변 인물들은 ‘소수자’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다. 차별 어린 시선 속에 프랭키는 자신의 정체성을 건강하게 확립하지 못하고 우물 안 개구리로 살아간다. 이런 점에서 영화는 청소년과 어른의 삶을 명확하게 구분한다. 프랭키는 자신이 좋아하는 모습이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확신이 없다. 그러나 프랭키에게 다가오는 어른들은 프랭키와 같은 행동을 함에도 명확한 목적을 지니고 있으며, 프랭키의 불안정함을 꿰뚫어 본다. 결국 분위기에 휩쓸려 범죄를 저지른 프랭키의 모습에서 우리는 그가 아직 어른과 청소년의 경계를 넘을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브루클린의 파도' 포스터
▲'브루클린의 파도' 포스터

 

영화를 보고 나면 어텀과 프랭키의 눈빛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흔들리는 그들의 눈동자 속에 담긴 내면의 불안과 욕망은 관객의 마음속까지 파고든다. 억압된 현실에 좌절했던 어린 날의 기억이 있는가? 치열하게 인생의 과도기를 보낸 이들에게는 격려를, 어른으로 나아가기 위해 몸부림치는 이들에게는 응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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