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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들의 노력은 결과와 반비례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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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중학생이 되었을 적, 기초생활수급자인 초등학생이 비싼 돈까스를 먹었다는 이유로 괘씸하다는 글을 보았다.

약자는 매 순간 순종을 강요받는다. 선할 것을 강요받는다. 욕심을 부릴 자격도, 자신의 욕망을 실현할 자격도 없다는 것을 매 순간 상기하라고 강요받는다.

로스쿨 학비가 몇천만 원에 달하고, 대학 입학금이 400만 원을 웃도는 사회에서 혹자는 말한다. 돈이 없으면 장학금을 받아 대학에 다니면 되지 않느냐고. 가난하면 더욱 노력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그들은 이미 노력해 왔을 것이다. 남들과 다르다는 열등감을 마음속에서 지우려고 노력하고, 가정형편이 좋지 않으니 행실이 올바를 수 없다는 편견에 스스로는 예외여야 한다는 압박감 속에서 수백 번의 힘든 하루를 버텨냈을 것이다. 그러나 편견이 덧씌워진 눈을 가진 제3 자는 어떻게든 평범해지기 위한 그들의 노력을 당연하다며 폄하한다. 

부유한 부모의 밑에서 자라난 아이들의 노력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들도 자기 삶에서 어떠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치열한 노력을 하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약자로 자라난 아이들에 대한 냉소적인 시선을 마주할 때마다 왜 그들은 매 순간 인생의 기본적인 노력을 넘어서는, 이른바 투쟁 속에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차디찬 고찰만이 필자의 안에 아프게 남을 뿐이다. 도대체 왜, 그들은 타인보다 몇 배 이상의 노력을 해야만 평범해질 수 있는 것인가.

평생을 온실 속에서 살아온 이들은 약자의 삶을 알 수 없다. 필자 역시도 중산층 이상의 가정에서 비교적 경제적으로 안정된 삶을 누렸다. 그렇기에 필자는 그들의 삶을 미디어와 타인의 이야기로만 접했을 뿐, 직접 경험하지는 않았기에 그들이 어떤 고통을 느꼈고, 세부적으로 어떤 삶을 살았는지 정확히 알고 공감하기는 어렵다. 또한 필자가 기고하는 글마저 누군가에게는 어떠한 기만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들기도 한다. 허나, 치열하게 하루를 버텨 낸 가슴 아픈 삶을 건방지다 폄하하는 기만적인 사회적 여론이 가슴을 아리게 하여 글을 조금씩 적어 본다. 필자가 태생적인 가정환경을 선택할 수 없었듯, 그들도 자신에게 주어진 유소년 시절을 선택할 수 없었을 것이기에 그들이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것은 절대적으로 부당하다. 

미디어는 발달했고, 바야흐로 온라인상의 혐오적 시선이 여론으로 부유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 누군가는 짧은 글 하나에도 상처를 받을 수 있으며, 자신이 살아오며 선택했던 최선을 부정당하는 감정을 느낄 수도 있고, 더 나아가 그에 따른 괴로움이 일상생활에까지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다분하다. 그렇기에 우리는 책임 의식을 느껴야 한다. 자신이 화면 속에서 내던지는 짧은 말은 화면 밖에 있는 당사자에게 크나큰 상처를 입힐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매 순간 인지하고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래야만 온라인 세상 속의 혐오가 돌고 돌아 결국 자신이 피해자가 될 순간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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