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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So Serio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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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다크 나이트(The Dark Night)>(2008)에 등장하는 악당 ‘조커’ 하면 떠오르는 명대사 한마디가 있다. 자신을 잡아 오는데 현상금을 건 다른 범죄조직에 시체로 위장해 잠입한 그는, 조직 우두머리의 입에 칼을 넣고 얼굴의 흉터가 왜 생겼는지 연극 배우 마냥 이야기한다. 매일 술에 취해 가정폭력을 저지르던 아버지가 어머니를 식칼로 찌른 뒤 “왜 그렇게 심각해? 그 얼굴에 웃음을 그려보자. (Why so serious? Let’s put a smile on that face.)”라고 말하며 자기 얼굴을 이렇게 만들었다고. 그 이야기를 마친 조커는 자신이 총을 겨누고 있는 우두머리에게 똑같은 질문을 한다. 왜 그렇게 심각하냐고. 질문하는 순간 조커의 얼굴은 우스꽝스러운 분장과 어우러져 마치 순진무구한 어린아이와도 같다. 조커는 보통 사람들에게 내재되어 있는 공포를 이해하지 못하니 사람들의 굳은 표정에도 저런 질문을 하는 것이다. 반대로 그 대사를 듣고 있는 우리는 공감을 통해 공포를 느끼기에,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최근 정치면은 연일 온갖 사건으로 도배되어 있다. 지난 21일(목), 헌정사상 최초로 한덕수 국무총리 해임건의안과 제1야당인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체포동의안이 국회에서 나란히 가결되었다. 한 총리의 해임건의안은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 실질적인 효력을 잃었지만, 체포동의안은 구속영장 심사로 이어질 전망이다. 헌정사상 최초인 일이 하루에 두 번 이나 발생한 것에 더해, 김행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의 과거 행적과 발언들 또한 연일 조명되고 있다. 김 후보자가 공동으로 창업한 온라인 뉴스 사이트 <위키트리>에서 ‘성형 없이 신체 사이즈를 키우는 법’, ‘여자는 예쁘다고 쓴 답안지 A+’와 같은 기사들이 후보자의 이름과 이메일로 발간되어 있다. 김 후보자 측은 본인이 작성한 것인지 확인되지 않았다고 해명했지만, 여론은 저런 사람에게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 자격이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연일 제기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지난 15일에는 임신 중단에 대한 질문에 “‘자기 결정’이라는 그럴듯한 미사여구에 감춰진 낙태의 현주소를 들어보려고 한다.”라고 답변해 낙태죄 헌법 불합치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반하는 발언이라는 비판이 이어졌다. 김 후보자는 출근길 도어스테핑에서 ‘가짜뉴스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인사청문회 당일까지 자신을 검증하려는 보도를 멈추라고 말했다. 하지만 김 후보자와 관련한 소식이 매일 쏟아지는 이 시점에서 저 한마디로 모든 움직임을 멈출 수는 없다.

매일 수십 개씩 쏟아지는 이런 소식들을 접하다 보면 점점 무감해지기 마련이다. 사회 문제에 분명한 의견을 가지고 행동하는 사람들에게, 누군가는 “왜 너만 그렇게 심각해?”라고 말하곤 한다. 뉴스는 세상의 온갖 피곤한 소식을 몽땅 모아놓은 것 같다. 사회의 작은 일 하나하나에 생각하고, 분노하고, 비판하는 건 보기보다 많은 기력이 필요한 일이다. 그렇게 조금씩 절망과 피곤함이 쌓이다 보면 아예 이런 일을 무시하고 지나가는 편이 일상을 버티는 데에는 더 이로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린 심각해져야만 한다. 국무총리의 해임건의안이 가결될 정도면 대체 무슨 일을 했었는지 알아봐야 하고, 제1야당 대표가 체포된다면 앞으로 국회에는 어떤 바람이 불지 예상해 봐야 한다. 새로운 장관 후보자가 나타나면 그가 후보자에 오르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쳐왔는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건 수많은 사람이 피 흘리고 쓰러지며 얻어낸 권리이자 의무이다.

언론이 만들어 낸 모든 것은 이러한 권리와 의무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따라서 신문에 실리는 기자의 모든 글은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답답하고 화나는 소식들이 소나기처럼 쏟아져도 지지 않고, 왜 너 혼자 심각하냐는 핀잔에도 심각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고 당당히 반박해야 하기에. 그러니 기자의 글은 마냥 가볍거나 재미를 주는 글, 내가 쓰고 싶은 말로만 가득한 글이 아니어야 한다. 이런 글만 쓰게 되는 순간, 기자가 이름과 이메일을 걸고 쓰는 글은 신문 지면에서 보이지 않아야 한다. 이건 기자라는 호칭을 이름 뒤에 다는 순간 얻은 권리이자, 마땅히 수행해야 하는 의무다.

영화 속 조커의 저 질문에 딱 한 마디로 답할 수 있다. 우리가 심각한 이유는, 지금 우리가 심각하게 여길 수밖에 없는 문제에 직면해서라고. 우리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절대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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