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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나의 소중한 시간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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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많았던 작년과 달리, 기자는 올해부터 단순해지는 연습을 시작했다. 생각의 스위치를 잠깐 꺼보기로 했다. 단순해지는 연습은 간단하다. 발생하지 않은 일에 대해 미리 고민하지 않고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생각을 단순하게 한다는 건, 앞서 고민하고 걱정하는 기자의 고질적인 습관을 바꿔보려는 시도였다.

평소 숫자를 좋아하는 기자는 수학적 개념을 현실에 적용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기자는 굉장히 이분법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다. 세상에 정답이 있다고 생각했고, 정답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들에는 어떠한 관심도 주지 않았다. 그건 일에서도,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정답이라고 생각되는, 꼭 옳은 행동을 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일상에서 발목을 잡았다. 기자는 ‘오답’을 선택했다고 느껴지면, 지난 선택을 한없이 후회하며 현실에 쉽게 수긍하지 못했다. 기자의 현재는 정답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기자는 오답을 고르는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자책하며 비난했다. 하지만 거의 2년이 다 돼가는 대학 생활 끝에, 기자는 이러한 사고가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동안 기자는 색안경을 끼며 세상을 바라봤고, 존재하지 않는 절대적인 정답을 쫓고 있었다. 주위 다른 요소들이 아닌, 스스로가 자신을 가장 힘들게 하고 있었다.

생각을 단순하게 해야겠다는 시도는 어쩌면 이러한 깨달음에서 시작된 것일지도 모른다. 발생한 일의 가치를 따지고 자책하기보단 그저 무덤덤하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내 역할을 잘 수행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기자는 정답을 고르기 위해 애쓰지 않는다. 세상에 정답은 없을뿐더러, 눈앞에 벌어지는 일 모두 그 자체만으로 가치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요즘, 기자는 학창 시절 친구들에게 “유해졌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있다. ‘유하다’는 부드럽고 순하다는 뜻이다. 아마 유해진 기자의 모습은 정답을 골라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난 현재 상태인 듯하다. 틀린 답과 못난 과정을 무시하던 완벽주의자의 모습은 허물어져 가고, 점점 있는 그대로 내 모습과 상황을 인정하고 있다.

<고양이의 보은>(2002)은 기자가 정말 좋아하는 영화다. 영화 속 주인공 ‘하루’는 도로에서 사고를 당할 뻔한 고양이를 구해주지만, 이것 때문에 고양이 왕국에 끌려가 고양이가 될 위기에 처한다. 하루는 “고양이를 도운 것도, 일이 꼬인 것도 모두 나의 소중한 시간이었어.”라고 말하며 고양이들에게 휩싸여 자신의 일상을 잃을 뻔한 상황 모두 자신의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말한다. 영화를 보며 자신에게 일어난 모든 일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주인공의 태도에 기자는 큰 울림을 느꼈다. 고등학교 시절, 기자는 대학에 가서 해보고 싶은 게 너무 많아 수능이 끝나고 버킷리스트를 작성했었다. 그리고 현재는 그 버킷리스트를 거의 다 달성했을 정도로 기자는 대학에 와서 많은 경험을 했다. 돌이켜 보면, 다 소중한 기자의 시간이었는데 화를 내며 자책했던 과거가 부끄럽게 느껴졌다.

2023년이 약 3개월 남은 현재, 기자의 목표는 한 해를 잘 마무리하는 것이다. 이제는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보단, 남아 있는 것들을 잘 마무리할 단계다. 최근 기자는 눈앞에 벌어진 일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기자의 뜻대로 되지 않아 부모님께 투정을 부렸다. 사실 이 경험에서 이번 기자프리즘이 시작됐다. 어떤 일도 의연하게 받아들이며 넘기겠다는 기자의 다짐은 홀연히 사라지고, 올해를 특별하게 마무리하고 싶은 욕심에 또 화를 냈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도 그러하다. 돌아보면 다 좋은 시간들 뿐인데,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혹은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분을 내며 부정적인 감정들에 휩싸인다. 기자를 포함한 우리는 모두 아직 미숙하고 배움의 과정 속에 있다. 그렇기에 작은 일에 실망하며 얼굴을 찌푸리지 않았으면 한다. 그것조차 우리의 소중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실수도 많이 하고, 알 수 없는 고집으로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하지만, 그런데도 기자에게 항상 든든한 버팀목이 돼주는 부모님께 감사 인사를 전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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