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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신문 관련해 메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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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S동 211호의 제목은 기자가 보내는 메일 제목과 같다. 기자의 보낸 메일함에는 ‘홍대신문 관련해 메일 드립니다.’라는 제목의 메일로 가득 채워져 있다. 메일의 내용은 보통 인터뷰 요청이다. 영원한 미소, 12면 인터뷰와 같은 인터뷰 코너 진행을 위한 메일과, 보도 기사의 신빙성을 더해줄 인터뷰 요청 메일이다. 기자는 메일함을 볼 때면 인터뷰 성사의 어려움에 지쳐 있던 기자가 생각나는 동시에, 그 어려움을 극복한 기자의 모습이 생각난다. 이번 글에서 기자의 ‘극복’을 담아보고 싶다.

기자는 2학기의 시작과 함께 수습기자가 아니라 준기자라는 직함을 달게 됐다. 홀로 보도 기사를 쓰게 된 것에 놀라던 기자는 2,800자의 기획 기사를 쓰는 기자가 됐다. 그러므로 흐른 시간에 비례한 기자로서의 성장을 기대하게 됐지만, 그런 마음은 빠르게 식어버리고 말았다. ‘나는 기자로서 해야 할 일을 하며, 독자가 읽고 싶은 기사를 쓰는 기자인가?’, ‘학보사 기자의 역할이 무엇인가?’와 같은 답이 없는 질문에 무력감을 느꼈다. 그때 기자에게 찾아온 기사가 ‘노 20대 존’ 기사이다. 1331호 배분 회의가 끝나고 기사의 방향에 대해 고민하던 기자의 머리에 그동안의 고민에 대한 ‘기자만의’ 답이 스쳐 지나갔다. “학보사인 만큼 기사 소재에 대한 학우의 이야기에, 주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자.” 달라진 마음가짐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그때의 취재는 기자로서 느낄 수 있는 행복을 한껏 느낄 수 있는 경험이었다. ‘홍대신문 기자’라는 이름으로 사실과 다른 보도로 억울해 하던 사장님의 이야기를 전하게 됐다. 인터뷰 요청에 대한 거절도 많았지만, 카메라를 메고 취재하는 기자에게 고생한다며 서비스를 내어주신 카페 사장님도 만났다.

기자는 어휘력이 뛰어나지도, 예술에 조예가 깊지도 않다. 일명 ‘맛깔 나는 글’을 쓰지 못한다. 본지 홈페이지에 기사를 올리며 보게 되는 선배 기자의 글에 감탄과 좌절을 느낀다. 글보다 말이 편한 기자는 기자로서 역량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머리에서 입으로의 전달은 미끄럼틀을 타듯 쉬웠지만, 머리에서 손으로의 전달은 시소처럼 삐그덕대고 균형을 잡기 힘들었다. 그러나 언제까지 기사를 쓸 거냐는 주변의 물음에는 계속 쓸 거라는 답을 내렸다. 기자의 생각과 다르게 기자는 글로만 대화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인터뷰를 진행하고, 직접 발로 뛰는 취재의 과정에서 기자의 장점인 ‘말’로 더 좋은 기사를 쓸 수 있었다. 글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단어를 찾아보고, 좋은 표현을 듣게 되면 메모장을 켜 기록하고, 기사를 읽으며 좋은 표현에 대해 다시 곱씹어 본다. 시각을 바꾼 기자에게는 매순간이 귀해졌다. 지치고 힘든 순간 조금만 더 힘내라고 인사를 건네주던 인터뷰이, 인터뷰 요청에 주저하다가도 기자가 사범대생임을 밝히자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인터뷰를 진행해 주신 선생님들, 학우와의 인터뷰로 만든 플레이리스트를 들으며 기사를 쓰던 순간까지. 모르고 지나갈 뻔한 순간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매주 2~3개, 어쩌면 4~5개의 기사를 쓰며 어느새 기자 바이라인에 이름이 들어간 기사가 많아졌다. 하지만 아직도 기자의 기사를 읽었다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다. 아무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인터뷰이 찾기, 2주가 지나도 답신 없는 인터뷰이 기다리기, 동기 한 명 한 명에게 인터뷰 요청하기 등 힘들고 지치는 순간도 물론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기자는 오늘도 기사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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