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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 잃은 검정고무신' 창작자를 보호하지 못하는 저작권 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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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즐겨보던 추억의 만화 <검정고무신>을 기억하는가? <검정고무신>의 원작자 故 이우영 작가와 그의 동생이자 동료였던 이우진 그림작가는 애니메이션 제작업체 ‘형설앤’과 6년간의 법정 공방을 치렀다. 작가들과 형설앤 사이에서 벌어진 소송의 이유는 창작자가 자신의 권리를 되찾기 위함이 아니라, 형설앤이 <검정고무신> 캐릭터의 저작권을 침해당했다는 이유로 작가들을 고소했던 것이다. 그리고 지난 3월 11일(토), 끝나지 않는 싸움에 지친 故 이우영 작가는 1심 판결이 채 나오기도 전에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그가 법원에 제출한 진술서에는 “<검정고무신>은 제 인생 전부이자 생명입니다. 창작 이외에는 바보스러울 만치 어리석은 창작자들의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라는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검정고무신>을 중심으로 안전한 창작 환경을 보장받을 창작자의 권리가 큰 관심 속에 있다.

【창작자의 목숨을 앗아가는 계약】

지난 2008년 6월, <검정고무신>의 ‘이기영’, ‘이기철’을 포함한 9개 캐릭터의 저작권이 등록됐다. 이때 원활한 사업 진행을 위해 캐릭터의 지분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형설앤은 이우영, 이우진 그림작가로부터 28%, 이영일 글 작가로부터 8%의 캐릭터 저작권을 받아 저작권위원회에 공동저작자로 등록됐다. 이후 이영일 글 작가에게 17%를 추가 양도받은 형설앤은 총지분 53%를 보유하게 됐다. <검정고무신>이 본격적으로 사업화된 이후 창작자와 합의되지 않은 사업 소식들이 들려왔다. 동의 없이 <검정고무신>과 관련된 새 상품들이 출시됐고, 창작자는 알지 못했던 4기 애니메이션과 극장판이 제작됐다. 2019년 6월에는 형설앤과 이영일 글 작가가 이우영 작가와 이우진 작가에게 <검정고무신>의 캐릭터가 등장하는 만화를 허락 없이 그렸다며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또한 이우영 작가의 부모님이 운영하는 농장에 <검정고무신> 체험장을 만들고, 애니메이션을 무단으로 틀었다는 이유로 형사 고소를 진행했다. 사업화 계약 당시 형설앤이 이우영, 이우진 작가의 작품 활동에 관여하지 않기로 동의했음에도 작가들은 창작 활동을 제한받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이러한 사건들의 시작에는 ‘불공정 계약’이 있었다. 형설앤과 이우영, 이우진 작가의 사업권 설정 계약서에는 “원저작물 및 그에 파생된 모든 이차적 사업권을 포괄한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즉, *2차적저작물 사업권을 넘겨받은 형설앤 측이 애니메이션의 저작권을 갖는다는 것이다. 2건의 양도 각서에는 “손해배상청구권 및 일체 작품 활동과 사업에 대한 모든 계약에 대한 권리를 양도하고 위반 시 3배의 위약금을 낸다.”라고 나와 있다. 이우영 작가는 계약서 수정을 여러 차례 거절당했으며, 불공정 계약으로 인해 정당하지 못한 대가를 받고 작품 활동을 제한받았다며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형설앤의 입장은 정반대였다. 형설앤 측은 저작권 지분 설정·사업권 설정 계약·캐릭터 사업 진행 모두 원작자의 동의하에 이루어졌으며, 사업 원작료 지급에 관해서는 수익성이 낮아 그 금액은 적을 수 있으나 지분에 따라 지급이 이루어졌다고 주장했다.

<검정고무신>의 저작권 논란과 함께 과거《구름빵》사건이 다시금 수면 위로 올라왔다. 두 사건 모두 창작자가 작품에 대한 권리를 잃었다는 점에서 닮아있기 때문이다. 그러나《구름빵》사건은 <검정고무신> 사건과 달리 매절 계약으로 인해 발생했다는 점에서 엄연히 다르다. 매절 계약은 계약을 체결할 때 저작자에게 일정 금액만 지불하면, 저작물 이용으로 인한 장래 수익은 모두 출판사로 귀속되고 저작자에게는 추가적인 대가가 돌아가지 않는 계약 형태를 말한다. 2차적저작물 작성권까지 모두 포함하는 저작재산권을 양도하는 것은 저작자의 인격권을 제외한 모든 재산적 권리를 넘기는 것과 같다. 지난 2003년 9월,《구름빵》의 백희나 작가는 출판사와 그림책 1권을 개발해 주는 계약을 체결했다. 해당 계약은 저작재산권 등의 권리가 출판사 측에 모두 양도되는 내용을 담은 매절 계약이었고, 그로 인해 백희나 작가는 그림책의 2차적저작물 흥행 등에 따른 금전적 보상을 일절 받지 못했다. 이후 백희나 작가는 출판사를 상대로 10년이 넘는 저작권 소송을 벌였지만, 최종 패소했다. 대법원이 출판사측에게 법 위반 등의 사유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2014년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는 매절 계약을 금지하고 저작자의 권리를 확대한 ‘백희나 표준계약서’를 만들며 신인·무명 작가들이 보호받을 수 있는 법률적 기반을 만들었다. 한편, <검정고무신>의 경우 작가가 저작권 지분을 양도하는 대가로 지불받은 대금이 없기에 <검정고무신>의 계약은 매절 계약이라고 보기 어렵다.

불공정 계약이 체결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기업 측은 출판물이 확실한 이익이 될지 모르는 상태에서 오직 장래의 가능성만 보고 계약을 하는 것이기에 불확실성에 대한 안전장치로 이용한다. 백희나 작가가 패소한 것에 대해 대법원 3부는 “이 조항은 계약을 체결한 2003년 당시 백 씨가 신인 작가였던 점을 고려하면 상업적 성공 가능성에 대한 위험을 적절히 분담하려는 측면도 있다. 백 씨에게 부당하게 불리한 조항이라고 볼 수 없으므로, 불공정한 법률행위라 무효라 할 수 없다.”라고 판단했다. 그렇기에 작품이 성공하고 뒤늦게 불공정하다고 느낀다 해도 계약을 무를 수 없는 것이다. 창작자가 계약서를 꼼꼼히 읽지 않았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그러나『조선일보』에 따르면, 법이나 사업에 능통하지 않은 창작자들에게 플랫폼이나 대행사 측이 흥행과 수출을 위해 2차적저작물을 생산하려면 저작권이 문제가 돼선 안 된다고 설득하면 창작자들은 대체로 수긍하게 된다고 한다.

【다양한 분야에서 발생하는 불공정 계약】

대중이 접하는 매체가 다양해지며 창작 분야 또한 다양해지고, 그로 인해 불공정 계약을 더욱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됐다. 지난 2020년 11월 27일(금), 경기도는 유튜버 등 1인 창작자 11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1인 창작자와 MCN 회사 간의 불공정 계약 실태’를 발표했다. 해당 조사에 따르면, 전체의 56%가 **다중 채널 네트워크(MCN) 회사와의 불공정 계약을 경험했거나 주변에서 들어본 적 있다고 답했다. 불공정 계약의 유형으로는 △무리한 수익 배분 및 불명확한 수익 기준(58%) △저작권 계정에 대한 권리를 MCN 사에 귀속(48%) △기획·제작 지원 및 관리 조건 미이행(35%) △사전 동의 없는 일방적 지위·권리 양도(29%) 등이 존재했다.

최근 폭발적으로 성장하게 된 유튜브 시장에는 구체적인 표준계약서가 없었고, 그 때문에 유튜버와 MCN 간의 분쟁이 큰 논란이 되기도 했다. 지난 2019년 10월 19일(토) 유명 유튜버 덕자의 유튜브 채널 ‘덕자전성시대’에 그녀의 ‘마지막 영상’이 업로드됐다. 알고 보니 덕자가 소속사 ‘ACCA AGENCY’와의 불공정 계약으로 활동을 그만둔 것이다. 계약서는 유튜버와 소속사가 5:5로 수익 분배를 진행하고, 계약 기간이 종료되면 해당 유튜브 채널을 소속사 측에서 가지고 간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으며, 계약 위반 및 취소 시에 위약금 1억 원을 지급하라는 내용 또한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불공정 계약은 덕자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같은 소속사의 유튜버 ‘도깨비’도 같은 불공정 계약으로 피해를 입어 소속사 대표를 형사 고소했고, 유튜버 ‘턱중’ 또한 불공정 계약을 강요받았다는 폭로 영상을 올렸다. 서영관 만화가도 동일 소속사와의 갈등으로 페이스북 활동 계정을 회사에 반납하고 퇴사했다. 이들 외에도 피해자와 피해를 입을 뻔한 유튜버들이 나타나며 유튜브 시장 속 불공정 계약 문제의 심각성이 드러났다.

지난해 12월,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실시한 ‘2022년 웹툰 사업체 실태조사’와 ‘2022년 웹툰 작가 실태조사’에 따르면, 불공정 계약이나 행위를 경험한 웹툰 작가가 58.9%에 해당한다. 비슷한 시기에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표한 ‘웹툰 산업 불공정 계약 실태조사’에 따르면, 불공정 계약 혹은 행위를 경험한 작가 중 ‘2차적 저작권, 해외 판권 등 제작사 및 플랫폼에게 유리한 계약’이 40.8%로 가장 높았다. 대표적인 예로 지난 6월, 카카오엔터테인먼트와 콘텐츠제공자(CP) 간의 콘텐츠 공급 기본 계약서가 논란이 됐다. 문체부에서 권고한 웹툰 표준계약서에 따르면 웹툰 플랫폼이 관여한 경우 분쟁이 발생하면 모든 책임은 플랫폼에 있다. 그러나 카카오엔터테인먼트의 계약서는 법정 분쟁 발생 시 모든 책임을 CP가 지도록 했다. 또한 계약서에는 카카오엔터테인먼트가 웹툰의 유통 판매를 자의적으로 중단, 나아가 영구 삭제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게다가 웹툰 수익에 부가가치세를 포함하거나, 계약 종료 후에도 비밀 유지를 부담시키는 등 다수의 불공정 조항이 존재했다. 한편, 지난 1월 11일(수)에는 웹툰작가노조와 한국여성만화가협회가 문체부에 웹툰 표준계약서 개정안을 전면 재검토할 것을 촉구했다. 웹툰 상생협의체 논의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표준계약서 개정안이 창작자에게 불리한 독소조항으로 가득하다는 것이다.

【창작자를 보호하기 위해서】

<검정고무신> 사건은 과연 어떻게 끝이 났을까? 지난 7월 17일(월), 문체부는 피신고인(형설앤·형설앤 대표)에게 불공정 행위를 중지하고 미 배분된 수익을 신고인(故 이우영, 이우진)에게 지급하라는 시정명령을 내렸다. 지난 8월 16일(수), 한국저작권위원회는 <검정고무신> 캐릭터 9종에 대한 공동저작자 등록을 직권 말소 처분했다. 이를 통해 <검정고무신>이 창작자의 온전한 저작물로 인정됐다. 문체부는 한국저작권위원회와 함께 <검정고무신> 사건과 같은 일을 방지하고자 지난 4월 17일(월) 저작권법률지원센터를 개소했다. 저작권법률지원센터는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예술인 신문고·한국콘텐츠진흥원의 공정상생센터·한국만화영상진흥원의 만화인 헬프데스크 등으로 나뉘어 있던 저작권 법률지원 기능을 총괄한다. 법률 전문가가 상주하며 저작권 전반 법률 자문에 답하고, 저작권 법률지원과 연계된 교육·분쟁조정·제도개선 등의 저작권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창작자 권리를 보호한다.

본교 법학과 오승종 교수는 지난 5월 23일(화), 『법률신문』에 <검정고무신> 사건과 관련하여 열악한 창작 환경과 불공정 계약의 문제점을 비판하고 해결 방안에 대한 글을 기재했다. 오 교수는 현재로서 가장 현실적인 해결책으로 ‘신탁관리단체를 통한 이용 허락 시스템’을 꼽았다. 그러나「저작권법 제54조」가 저작권 권리변동을 등록하지 않으면 제3자에게 대항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오 교수는 법 개정을 통해 저작권 권리변동을 등록하지 않아도 대항할 수 있게 되면 해당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제작사는 개별 창작자가 아니라 대등한 협상력을 가진 신탁관리단체와 계약을 체결하여야 하고, 신탁관리단체는 수탁자로서의 임무에 따라 신탁자인 창작자를 위하여 협상에 임하고 계약을 체결하게 된다. 그리고 그 계약 내용은 관계 당국의 엄격한 심사를 거쳐 정형화되어 있기 때문에 불공정 소지도 없다.”라고 말했다.

창작물에 대한 마땅한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며 젊은 창작자들이 설 자리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현 사태를 바로잡지 않는다면 이는 창작 활동의 기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지금 가장 시급한 것은 철저한 수익 보장과 저작권법 강화를 넘어 모든 창작자의 안전한 창작 환경을 보장하는 것이다.

*2차적저작물: 원저작물을 번역·편곡·변형·각색·영상제작 그 밖의 방법으로 작성한 창작물

**다중 채널 네트워크(MCN): 페이스북이나 인터넷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의 기획사

▲재판의 이해를 돕기 위해 故 이우영 작가가 그려 판사에게 제출한 유작 중 일부 /출처: 유튜브 채널 ‘Korean cartoonist검정고무신 작가 이우영’의 ‘검정고무신 사건 정리 마지막 그리고 생일파티’
▲재판의 이해를 돕기 위해 故 이우영 작가가 그려 판사에게 제출한 유작 중 일부 /출처: 유튜브 채널 ‘Korean cartoonist검정고무신 작가 이우영’의 ‘검정고무신 사건 정리 마지막 그리고 생일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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