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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리언 울프, 전병근 역, 어크로스, 2019

'현대소설론' 송민호 교수가 추천하는 『다시, 책으로』: 종이책이 있는 대학 연구실의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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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리언 울프(Maryanne Wolf, 1947~)는 그의 저서 『책 읽는 뇌』와 『다시, 책으로』에서 인간의 뇌가 본래 책을 읽도록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다고 단언한다. 그에 따르면, 어디까지나 인간의 뇌는 불편한 책을 읽어내는 과정을 후천적으로 학습하여 진화한 것이고, 그 과정을 통해 인간이 지금 영위하고 있는 인간다운 문명을 구성할 수 있었다.

생각해 보면, 인간의 신체는 연약하고, 인간의 사유는 늘 부유하여 어디에도 정착하지 않는다. 그런 인간의 결핍되기 쉬운 기억을 어딘가에 새겨 좀 더 오래 보존하고, 체계적이지도 질서화되어 있지 않은 인간의 사유를 정돈하고 간추려, 종이 낱장들의 묶음인 책으로 엮는다. 그리고 그것에 분류의 기호를 붙여 어딘가의 아카이브에 저장한다. 이것이 인간이 자신의 인간다운 결핍에 대응해 온 최선의 노력이었던 것이다.

평생 한 번이라도 그 페이지를 펼칠 일이 있을까 싶은 책들이 빼곡하게 꽂혀 있는 도서관의 서가 사이를 지나며, ‘이상한 나라’에 들어가기 전, ‘앨리스’가 언니에게 투덜거렸던 그림 하나 없는 책을 펼쳐 그것을 읽다가, 그만두고, 읽다가 그만두는 일을 반복하는 과정은 그런 의미에서 인간 친화적인 활동은 아니다. 스마트폰을 열면 저기 멀리 누군가가 내게 딱 맞는 정보들을 그대로 시뮬레이션 해주는 시대에, 문자를 읽고 해독해서 의미를 파악하고, 사후적으로 상상하거나 추론해서 눈에 보이지도 않는 저자의 마음 같은 것을 가늠하는 과정은 불편하디 불편하다. 며칠이라도 읽는 일을 게을리하면 ‘책 읽는 뇌’는 금방 그 불편함을 감지한다. 눈으로, 소리 내어 읽고 있지만, 머리는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빌렘 플루서(Vilém Flusser)는 아예 “글쓰기에 미래는 있는가?”라는 도발적 질문을 던지며 인간의 복합 감각을 저장하여 재현할 뿐만 아니라, 쌍방향으로 작용하는 새로운 미디어 시대에 과연 글쓰기와 책이라는 것이 미래에도 인간의 중요한 도구일 것인가 라고 질문하기도 한다. 인간의 사유, 그리고 연장의 도구로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바탕으로 존재해 왔던 글쓰기, 글쓰기 교육, 나아가 대학의 미래 의미에 대한 중대한 질문일 것이다.

분명, 이 질문은 단지 글쓰기와 책, 그리고 그것을 중심으로 쌓아 올린 인간의 지식 구조에 대한 것만이 아니라, 우리가 지금까지 ‘인간’이라는 것에 대해 규정해 왔던 개념을 바꾸어야 할지도 모르는 포스트-휴먼에 대한 사유를 내포하고 있다. 즉 메타언어를 통해 개념화되고, 목차를 통해 질서화된 형태로 쌓아 올려진 인간의 지식 모델이나, 어떤 구체적 이미지도 존재하지 않는 글쓰기를 읽고 사고를 확장하고, 상상하는 인간의 모델을 폐기해야 할지도 모를 선택의 기로에 서 있는 것이다.

물론 아직은 글쓰기가 없고 책이 없는, 나아가 도서관이 없는 대학을 상상하기는 어렵다. 이는 단순히 대학 교육의 이념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가 쌓아 올린 문명과 지식의 문제이므로, 그렇게 빠르게 바뀔 수는 없다. 아마 개개인의 인간이 영위하는 미디어적 경험과 대학의 교육이 점차 괴리되어 가는 양상으로 바뀌어 가게 될 것이다.

얼마 전 스웨덴에서는 학교 교실에서 태블릿과 대형 모니터 등을 중심으로 디지털화된 교육 수단을 없애고, 다시 종이책과 연필로 돌아가기로 했다는 소식이 언론에 보도됐다. 이제 우리 대학도, 우리 사회도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시점에 다가가게 될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 사회는 어디로 흘러가게 될까, 매클루언(Marshall McLuhan)이나 플루서가 바라보는 미래처럼 글쓰기와 인쇄 문명의 시대를 끝내고 새로운 미디어의 시대로 이전하게 될까, 아니면 매리언 울프의 “책 읽는 뇌”의 중요성을 여전히 강조하게 될까. 종이책이 여전히 가득 쌓인 오후의 연구실에서 그런 고민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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