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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의 자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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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치권은 서울특별시 강서구청장 보궐선거로 시끄럽다. 내년 총선 전 마지막 선거인만큼, 기초지자체 보궐선거임에도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당대표가 단식이 끝나자마자 “강서구청장 보궐선거는 전국 선거다.”라고 발언했을 정도다. 이목이 쏠리고 있는 선거인만큼, 각 당 대표와 중견 정치인들까지 나설 정도로 정당들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김기현 국민의힘 당대표는 “김태우 후보는 서울시장과 내각 장관들, 윤 대통령과 빠르게 소통해 힘 있는 구청장이 될 것이다.”라며 일 처리 속도가 빠를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고, 이에 맞서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강서구청장 보궐선거는 윤석열 정권 폭정을 심판하는 선거다.”라며 투표에 참여해달라고 호소했다.

보궐선거가 열리게 된 이유는 김태우 전 강서구청장이 받은 유죄선고 때문이다. 지난 5월 18일(목), 김 전 구청장은 공무상 기밀 누설 혐의로 대법원에서 징역 1년과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아 파면이 확정되었다. 하지만 8월 15일(화), 윤석열 대통령이 광복절 특별 사면을 통해 김 전 구청장을 사면했고, 국민의힘은 보궐선거에 김 전 구청장을 다시 후보로 지명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를 비판하며 진교훈 전 경찰청 차장을 후보로 내세웠고, 정의당과 진보당 등 군소정당도 전국적인 관심이 쏠린 지금 존재감을 보이기 위해 적극적인 유세를 전개하고 있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윤 정부에 힘을 실어달라고 외치고 있고, 반대로 야당은 김 전 구청장과 윤석열 정부를 이번 선거로 심판해달라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기자는 이 선거에 ‘심판의 자격’을 가진 주민들 중 한 명이지만, 이 선거가 심판을 위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주민의 손으로 뽑은 구청장이 유죄로 공석이 된 지금 상황에서, 남은 1년 2개월여를 책임져 줄 사람을 다시 선출하기 위한 일이다. 유권자는 후보자의 정당을 결정의 잣대로 삼아선 안된다. 후보의 발자취와 공약, 이 사람이 주민을 위해 제대로 일할 수 있는 사람인지를 판단해야 한다. 선거 결과가 이번 정부와 정치권에 대한 심판이 될 수도 있지만, 선거가 심판을 위한 도구로 전락하는 건 선거의 존재 이유와 민주주의 목적과도 맞지 않는다.

지난 8일(일)에 막을 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도 심판의 자격은 논쟁거리였다. 야구 조별 예선 2차전이었던 대만전에서, 강백호 선수는 *지명타자인데도 한 게 없다며 경기 종료 후 많은 언론의 질타를 받았다. 이는 2년 전인 2021년 도쿄올림픽에서 껌을 씹는 모습으로 많은 비판을 받았던 것으로부터 이어지고 있다. 야구팬들은 스포츠 기자들이 조회수를 위해 고작 스물셋인 선수를 이용한다며 반대로 언론을 비판했고, 국가대표인 선수들에게 비난보다는 응원과 격려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축구도 마찬가지다. 이번 아시안게임 축구대표팀의 주장인 백승호 선수는 실수가 계속 실점으로 이어진다는 비판을 받았다. 준결승 이후 인터뷰에서 “많은 기자분들이 경기 전부터 저 혼자 뛰는 것처럼 ‘백승호만 잘하면 결승에 갈 수 있다.’라고 기사에 쓰시던데, 어떤 마음으로 올리시는 건지도 궁금하고 또 도대체 어떻게 해야 만족을 하실 지도 궁금하다.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좀 믿고 응원해달라는 것이다. 나도 최선을 다해 경기를 뛰고 있는데 자꾸 그런 상황이 나오니까 아쉽고 다른 선수들한테도 미안하다.”라며 자신을 향해 비난을 쏟아내는 사람들에게 일침을 가했다.

우리에게 국가를 대표해 뛰는 선수들을 심판할 자격이 있는 것은 맞다. 무조건적인 칭찬보다는 경기 중 좋지 못했던 플레이나 경솔했던 행동들에 대한 비판이 선수들에게도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강백호 선수나 백승호 선수의 경우처럼 스쳐 간 한 장면으로 몇 개월에 걸쳐 자극적인 단어로 비난하거나, 팀 스포츠에서 너만 잘하면 모두가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한 명만 콕 집어 이야기하는 것은 심판의 역할이 아니다. 아쉬웠던 순간은 선수 본인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경기에 졌다고, 답답하다고 분노를 선수에게 쏟아내는 것과 심판으로서 잘잘못을 가리는 것은 다르다. 누구 한 명에게 분노의 화살을 겨냥할 권리는 없다.

누군가를 비난하고 책임을 전가하기는 쉽다. 반대로 올바른 평가를 하기 위해서는 많은 고민을 거쳐야 한다. 심판의 자격은 있지만, 그 자격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사람들은 드문 이유다.

 

*지명타자: 수비는 하지 않고 투수 대신 공격을 전담하는 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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