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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원래 오버핏으로 나온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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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최근 ‘어른’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사전은 ‘다 자란 사람. 또는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을 어른이라 정의하고 있고, 민법은 ‘만 19세 이상의 성인’을 어른이라 지칭하고 있다. 기자는 어느덧 생일이 지나 만 19세에 이르렀고, 법적으로는 어른이 됐다. 하지만 누군가 기자에게 어른이 된 것을 실감하느냐고 묻는다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아니라고 답할 것이다. 어떻게 하루아침 사이에 다 자라고, 책임질 능력이 생긴다는 것일까?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기자실에서는 “이제 다들 어른인데~”로 시작하는 말을 종종 듣는다. 그리고 그 문장은 보통 책임이라는 단어로 끝을 맺는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기자는 남들에게 피해 주는 일을 유독 싫어한다. 그래서일까? 개인의 작은 실수 하나하나가 모두에게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 신문사에서 기자는 책임의 무게가 너무나도 무겁게 느껴졌다. 이 무게를 견뎌내기 위해 기자는 나름대로 이런저런 시도를 했다. 실수를 줄이기 위해 평생 써 본 적이 없던 계획서를 작성하기 시작했고, 기사를 쓰며 밤을 새우는 것은 어느새 일상이 됐다. 하지만 불과 몇 개월 전까지 교복을 입고 등교하던 기자에게 이 ‘어른’이라는 옷은 영 어울리지 않았다. 커다란 정장을 훔쳐 입은 어린아이가 어른 흉내를 내며 한참 긴 바짓단을 질질 끌고 다니는 꼴이었다.

특히 이번 학기에는 임기를 마친 기자들이 퇴사하면서 각자 맡아야 하는 기사의 수가 대폭 늘어났다. 여기에 지난 학기에는 써 본 적 없는 고정란 기사까지 쓰려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능력 밖의 일을 매주 하고 있으니 조금씩 힘에 부치기 시작했고, 다음에도 과연 이만큼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그렇게 지쳐버린 기자는 결국, 지난 배분 회의에서 선뜻 손을 들지 못했다. 그 결과 이미 기사를 많이 맡은 다른 기자들의 어깨가 한층 더 무거워졌다. 회의가 끝난 후, 뒤늦게 죄책감이 밀려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기자 스스로에게 약간의 실망감마저 들었다. 책임의 무게에 짓눌려 기회를 포기하고 외면하는 것 따위가 어른이 되는 과정이라면 당장이라도 이 거추장스러운 ‘어른’이라는 옷을 벗어 던지고 싶었다.

그러나 어른이 되는 것은 도망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이내 현실을 직시하기로 마음을 다잡은 기자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은 최선을 다해보자.’라는 다소 식상한 결론에 이르렀다. 그러고는 여태까지 해온 기사 마감을 돌이켜 봤다. 나의 최선이 어느 정도인지 알아둬야 앞으로의 배분 회의에서 망설이지 않고 손을 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처음에는 한 주에 고작 두 개의 보도 기사를 쓰고도 버거워했던 첫 마감 당시의 기억이 떠올랐다. 홍보팀 업무를 처음 시작하던 주에 주제기획을 비롯한 기사 네 개를 맡아 일주일 내내 바쁘게 움직였던 기억도 머릿속에서 생생하게 재생됐다. 기사의 수, 취재부터 기사 작성까지의 과정은 전부 제각각이었지만, 신문사에서의 일주일은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기자는 결국 맡은 일을 항상 끝까지 해냈다는 것이다. 유난히 글이 안 써지는 날에도, 한글 프로그램 화면이 켜진 모니터가 꼴도 보기 싫은 날에도 기자의 손은 결국 주섬주섬 노트북 자판 위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서 기자는 느리게나마 성장하고 있는 자신을 마주할 수 있었다.

돌이켜 보면, 신입생들의 교복은 항상 조금씩 길고 헐렁했다. 3년간의 성장에 대비한 선택이었다. 이를 고려했을 때, 기자에게 어른이라는 옷이 한참 길고 컸던 건 당연한 일이다. 이제는 덜그럭덜그럭 소리를 내는 구두와 손등을 덮는 소맷자락이 앞으로의 성장을 기대하게 만든다. 기자는 지금, 가장 길고 느린 인생의 마지막 성장기를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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