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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우리치오 카텔란의 ‘매달린 말’과 ‘처박힌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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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에서 소개했듯 이탈리아 출신 미술가 마우리치오 카텔란은 1989년 데뷔하자마자 각종 미술 제도를 모방적으로 풍자하는 작업을 통해 일찍이 국제무대에서 명성/악명을 떨치게 됐다. 문 잠긴 전시장을 전시하고 베니스비엔날레 전시장을 광고회사에 임대하는 등 기발한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그의 초기작들은 ‘개념미술’로 분류될 수 있으며, 특히 마르셀 뒤샹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개념주의미술의 역사에서의 대표작들을 인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던 그가 90년대 중반, 작업을 ‘조각’으로 확장시키며 인물조각상과 동물조각상을 제작하기 시작했고 이를 통해 인간, 삶, 죽음, 역사 등 더 넓고 본질적인 주제를 다룰 수 있었다. 오늘은 카텔란의 말(馬) 조각상을 중심으로 그의 전성기 조각 작업에 대해 알아보자. 

논의에 앞서 짚어둘 것이 있다. 카텔란은 워낙 작품 설명을 잘 안 하는 것으로 유명하며, 하더라도 추상적이거나 역설적 표현을 통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그의 조각 작업은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구성이 특징인데, 그 요소요소들이 암시하거나 연상시키는 것들이 한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고 다 다른 방향을 가리키거나 서로 엇갈리기도 한다. 이런 식으로 끊임없이 생각거리와 이야깃거리를 이끌어내는 것이 카텔란 작업의 매력이다.    

 

인물조각

카텔란의 조각 작업은 내용면에서나 제작방식에서 관습을 거스르며 논란을 빚곤 했다. 그가 만든 첫 인물조각상은 실물 크기의 노숙자 인형으로, 이 작품은 1996년 토리노에서 첫 선을 보인 이래 최근 서울 리움미술관까지, 전시될 때마다 장소를 불문하고 이를 진짜 노숙자로 착각한 사람들이 경찰에 신고하는 일이 벌어진다. 90년대 후반부터 카텔란은 히틀러나 요한 바오로 2세 등 민감할 수 있는 공인들의 생김새를 그대로 본 딴 밀랍인형을 선보이며 관람객들로부터 다양한 반응들을 이끌어냈다. 이와는 별개로, 카텔란에게 의뢰받아 이 밀랍인형들을 만든 프랑스인 조각가가 이 작품들에 대한 저작권을 요구하는 소송을 프랑스에서 벌였다가 기각되는 법적분쟁도 있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조각가로 손꼽히는 미켈란젤로는 “돌에서 형태를 찾으라”고 했다는데, 카텔란은 직접 조각 행위에 임하지 않고 전문기술자들을 고용해 제작을 맡긴다.  

 

동물조각 

동물조각은 카텔란의 작업세계에서 한 축을 차지한다. 그의 동물조각상들은 거의 모두 박제이며, 그가 고용한 전문 박제사들에 의해 제작된다. 당나귀, 개, 고양이, 닭, 까마귀, 다람쥐, 토끼, 비둘기, 타조, 쥐, 소, 병아리 등 온갖 박제 동물이 그의 작업에 등장해왔다. 카텔란은 자연사한 동물만을 구입해 박제시키는 것으로 알려진다. (참고로, 2000년작 <사랑이 두렵지 않다(Not Afraid of Love)>에 등장하는 코끼리는 스티렌과 폴리에스테르수지로 만든 인형이다).  

카텔란이 처음으로 동물 박제를 활용한 작품 <사랑의 구원(Love Saves Life)>(1995)은 그림형제의 우화 ‘브레멘 음악단’의 주인공인 당나귀, 개, 고양이, 닭이 서로의 등에 올라타 이빨을 내놓고 으르렁거리고 있는 모습을 연출한다. 과연 각기 다른 존재들이 모여 조화로운 공동체를 이룰 수 있을까? 이듬해 발표한 <비디비도비디부(Bidibidobidiboo)>(1996)는 소박한 부엌 안에 다람쥐가 총에 맞아 죽어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마법의 주문이 잘못된 탓일까? 어차피 백마 탄 왕자님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렇듯 카텔란은 우화나 설화처럼 교훈적인 메시지를 주려는 듯 동물들을 의인화하지만, 희망이 아닌 절망을, 해피엔딩이 아닌 비극적 결말을 암시한다. 

카텔란이 가장 여러 번 다룬 동물은 말이다. 말은 여기 언급된 모든 동물 중 가장 멋있는 이미지를 가진 동물이지만, 카텔란에 의해 실패, 죽음, 비극의 메신저로 다시 태어난다. 

 

매달린 말 

1997년작 <노베첸토(Novecento)>는 자타공인 카텔란의 커리어에서 가장 중요한 대표작 중 하나다. 천장에 매달려 마치 죽은 듯 머리와 네 다리를 축 늘어뜨리고 있는 말. 이 끔찍한 장면의 작품을 카텔란은 “클래식(classic)” 즉 고전에 비유하며 자랑스럽게 여겼다.(1) 노베첸토는 이탈리아어로 900을 뜻하며 주로 1900년대 즉 ‘20세기’를 일컫는다. 20세기의 끝자락에 카텔란은 말/고전/20세기를 마치 공개처형하듯 높이 매달아 놓은 것이다.

실은 일 년 전, 카텔란은 똑같은 구성의 작품을 <트로츠키의 발라드(The Ballad of Trotsky)>(1996)란 제목으로 발표한 바 있는데, 이 전작에 사용된 박제 말에 비해 <노베첸토> 말이 다리가 길고 가늘며 머리도 드라마틱한 각도로 기울어져 있어 전체적으로 훨씬 더 절망적으로 보인다. 이게 카텔란에게는 더 성공적으로 보였던 것!  

<노베첸토> 발표 후 그는 1996년작의 제목을 <트로츠키의 발라드>에서 <무제>로 바꾸었지만, 이 첫 말 조각 또한 현대사와 관련된 작업이었음을 우리는 추측할 수 있다. 레온 트로츠키(1879~1940)는 1917년 지구상 최초의 공산주의 정권을 탄생시킨 러시아혁명에서 큰 공을 세웠지만 레닌의 죽음 이후 스탈린과의 권력싸움에서 밀려나 해외에서 유랑생활을 하다가 결국 멕시코에서 암살당한 ‘비운의 혁명가’다. 트로츠키는 실패했지만, 소련도 결국 1991년 붕괴됐다. 카텔란은 실패의 역사를 바라본다. 

20세기 사회주의의 확산은 카텔란의 모국 이탈리아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탈리아의 현대사를 대표하는 사건은 무솔리니의 파시즘 독재일 것이다. 이탈리아 출신 거장감독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가 1976년 발표한 영화의 제목도 <노베첸토>인데, 한국에서는 <1900년>이란 제목으로 알려진 이 영화는 1900년에 태어난 두 남자(로버트 드 니로, 제라르 드빠르디유 주연)를 중심으로 이탈리아 내 사회주의의 발전과 파시즘의 흥망성쇠를 장장 5시간에 걸쳐 보여준다. 1920년대 파시스트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국수주의 미술운동의 이름도 ‘노베첸토 이탈리아노’였다.(2)

이 운동에 가담한 예술인들은 추상미술 같은 아방가르드를 배척하고 15~16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주축이었던 고전주의 미술을 부활시키고자 했다. 이탈리아인들에게 고전주의는 자국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다.

 

유럽미술 속 말 

유럽, 특히 제국주의의 역사가 있는 영국, 프랑스, 스페인의 국립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가면 말 그림이 정말 많이 걸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영토 침략을 목적으로 한 전쟁에서 말이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일례로 그 유명한 나폴레옹의 초상화 <알프스 산을 넘는 나폴레옹>을 보자. 18세기 프랑스에서 신고전주의(Neoclassicism)를 이끌었던 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가 그린 이 초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나폴레옹이 아니라 화면을 뚫고 나올 것 같은 기세의 입체적이고 역동적으로 묘사된 말이다. 

이탈리아에는 전쟁에서 승리한 제왕이나 장군의 기마상을 만들고 (만인이 우러러보도록) 광장 높은 곳에 세우는 문화도 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대형 기마상은 2세기 로마제국에서 제작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4미터 높이 청동기마상으로, 원래는 전체가 도금됐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 기마상은 고전주의를 추종하는 르네상스시대에 재조명 받으며 1538년 로마 시내의 라테라노 광장으로부터 옮겨져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캄피돌리오 광장에 놓이게 됐다. 카텔란이 나고 자란 파도바의 광장에도 아이코닉한 기마상이 우뚝 서 있는데, 바로 르네상스 조각가 도나텔로의 1453년작 가타멜라타 청동기마상이다. 

결론적으로, 서양문화에서 다부진 근육과 우아한 털을 뽐내며 힘차게 달리거나 위엄 있게 서 있는 말의 이미지는 힘, 권력, 정복자, 영웅, 남성미, 웅장함, 제국주의 등과 연관된다. 이러한 문화적·역사적 바탕에서 카텔란의 <노베첸토>는 단지 죽은 말을 천장에 매달아 놓은 게 아니다. 전통과 권위, 실패한 20세기도 함께 매달은 것이다. 

 

처박힌 말 

딱 십 년 후, 카텔란은 2007년작 <무제(Untitled)>에서 말이 벽 높은 곳에 머리를 처박고 있는 장면을 연출한다. 야심차게 도약했으나 벽에 머리가 박혀버린 창피한 상황인 걸까? 보통 사냥꾼들의 동물 박제는 몸통 없이 머리만 벽에 걸어놓는데, 그런 풍속을 뒤집어서 구현한 것일까? <노베첸토>가 교수형을 연상시킨다면 <무제>는 단두대를 연상시킨다. 둘 다 수세기동안 지구 곳곳에서 합법적으로 행해진 처형방식이다. 이렇게 카텔란은 심플해 보이는 하나의 작품/장면 속에 여러 레퍼런스나 해석의 가능성을 겹쳐놓는다. 어쨌거나 이 모든 경우, 불편함을 자아내는 장면임에는 틀림없다.  

<무제>는 카텔란의 자전적/자조적 작품으로도 읽힐 수 있다. 관람객은 머리 위로 이 말의 엉덩이를 쳐다보게 되는데, 마침 영어에 “horse’s ass(말의 엉덩이)”라는 표현이 있다. 자기는 잘났다고 여기저기 까불고 다니지만 남들 눈에는 우습고 성가신 사람을 가리키는  “horse’s ass,” 이게 미술계 내 카텔란의 이미지에 부합한다는 해석이다.(3)

 

처박힌 말 5마리

카텔란은 2011년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 첫 회고전을 열면서 은퇴를 선언했고, 2016년 컴백할 때까지 5년 동안 신작을 만들지 않았다. ‘은퇴 중’이던 2013년 바젤에서 선보인 <카푸트(Kaputt)>는 앞서 본 ‘벽에 처박힌 말’을 5마리 나란히 일렬로 설치함으로써 재구성한 작품이다. <무제>는 애초에 3에디션과 2AP(아티스트 프루프), 즉 총 5점이 제작됐다.(4)

Kaputt은 ‘끝장이 난’, ‘죽은’, ‘쓸모가 없는’ 등을 의미하고, 한국에서는 『망가진 세계』로 소개된 이탈리아 작가 쿠르치오 말라파르테의 소설의 원제이기도 하다. 이탈리아의 격동의 시대를 살았던 말라파르테(1898~1957)는 2차세계대전 중 동부전선 취재를 맡은 기자로서 전쟁의 참상을 직접 목격하였고 이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 『망가진 세계』를 1944년 출간했다. 다섯 마리 말은 개인이 아니라 집단을 나타낸다. 이들은 자유를 찾아 나선 동지들일까 집단죽임 당한 사체들일까. 어쨌거나 벽에 걸려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은 갑갑하고 절망적이다. 

블랙코미디의 거장 찰리 채플린은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했다. 카텔란의 작품이 그저 재미있고 신기하고 인스타그래머블한 이미지로 느껴진다면, 아직 충분히 들여다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 잠긴 전시장과 갈변하는 바나나, 미술관에 자리 잡은 노숙자와 운석에 맞아 쓰러진 교황, 동물 박제에서 극사실주의 밀랍인형까지, 실패와 좌절감과 죽음(mortality)은 언제나 카텔란의 작업 주제이자 근간이었다. 

▲마우리치오 카텔란, '노베첸토', 1997. 박제 말, 가죽 마구, 밧줄, 196x192x55cm. 2023년 리움미술관 전시 전경. 사진: 이수진 제공. 
▲마우리치오 카텔란, '노베첸토', 1997. 박제 말, 가죽 마구, 밧줄, 196x192x55cm. 2023년 리움미술관 전시 전경. 사진: 이수진 제공. 

 

● 본고는 필자 이수진이 2023년 2월부터 7월까지 리움미술관에서 ‘다르게 보기’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강의한 내용을 토대로 작성되었습니다.

 

1) Cited in Nancy Spector, Maurizio Cattelan: All exh. cat. (New York: Guggenheim Museum, 2016), p. 61.

2) Ibid.

3) Public Delivery, “These are all of Maurizio Cattelan’s Horse sculptures,” June 18, 2022, https://publicdelivery.org/maurizio-cattelan-horses/

4) 작품 정보는 페로탱(Perrotin) 갤러리 사이트에 나와 있다. https://www.perrotin.com/artists/Maurizio_Cattelan/2/untitled/128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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