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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에서 예술을 향유하는 사람들

모든 삶은 영화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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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을 주제로 한, 예술가가 주인공인 영화는 무수히 많다. 어린 시절부터 예술가를 꿈꾸다 마침내 한 분야의 경지에 오르거나 큰 실패를 맛본 이들의 이야기. 하지만 예술가만이 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평범한 이 역시 예술가가 될 수 있고, 별것 아니라 여겼던 일상 속 사소한 순간마저 예술이 될 수 있다. 이번 기사에서 소개할 세 작품은 자신의 의지로, 혹은 예기치 못했던 사건으로 인해 평범한 하루를 예술로 가득 찬 하루로 만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사제폭탄을 삼킨 남자]

“영화감독이 영화를 찍어야지!”

여기, 작은 마을에서 작은 이발소를 운영하는 할아버지 ‘모금산’이 있다. 종일 남의 머리만 들여다보는 금산은 퇴근하면 동네 스포츠센터에서 수영하고 가까운 술집에서 맥주 한 잔을 마신다. 집에 돌아오면 시나리오를 쓰다 잠이 들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매일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는 그는 어느 날 예고 없이 암 선고를 받게 된다. 생의 마지막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자 그는 평생 이루지 못했던 작은 소망을 하나 이루고자 일생일대의 계획을 세운다. 금산의 암 선고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는 아들 ‘스데반’과 그의 여자친구 ‘예원’은 금산을 보러 고향을 방문한다. 난데없이 영화를 찍겠다는 아버지가 이해되지 않는 스데반과 금산을 응원하는 예원은 어찌저찌 그와 함께 영화를 찍게 된다. 그렇게 완성된 영화의 제목은 <사제폭탄을 삼킨 남자>이다. 영화가 완성된 뒤 가족들과 술집 사장부터 수영장에서 친해진 ‘자영’까지, 마을 사람들에게 금산의 영화 상영회 초대장이 날아든다. 그의 단편 무성 영화는 젊은 날의 꿈, 찰리 채플린을 좋아했던 아내, 홀로 남게 될 아들과 친구들을 위한 마지막 선물이 된다.

▲영화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2017) 포스터

영화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2017)는 금산에게 연민의 시선을 보내지 않는다. 어느 날 덜컥 시한부 선고를 받은 금산 역시 자신의 운명에 좌절하지도, 맞서 싸우지도 않고 그저 묵묵히 받아들인다. 마음 한구석에 묻어둔 채 살아왔던 영화감독이라는 꿈을 펼치기 위해 일상을 영위하는 와중에도 시나리오를 써 내려가는 금산은 제 인생의 클라이맥스를 영화 한 편에 담아낸다.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 그렇게 금산은 찰리 채플린의 영화처럼 밝고도 유쾌한 마지막 인사를 건넨다. 평범한 이발사 할아버지에게도 낭만은 있다.

 

[비밀노트를 품은 남자]

금산과 저 멀리 떨어진, 지구 반대편 어딘가에 살고 있는 ‘패터슨’은 버스 운전기사다. 그는 매일 아침 6시 15분에 일어나 아내 ‘로라’와 아이들을 깨워 도시락을 싸주고, 개 산책을 시키고, 오전 7시 45분에 시내버스를 운전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퇴근 후에는 저녁 식사를 한 뒤 반려견 ‘마빈’과 동네 한 바퀴를 도는 그는 매일 무료한 일상을 반복한다. 버스 운전을 시작하려 시동을 걸 때면 매번 같은 말을 반복하는 회사 동료와, 그에 매번 정해진 것만 같은 대답을 하는 패터슨. 반복, 반복, 반복… 다만 반복되지 않는 한 가지, 패터슨에게는 ‘시’가 있다. 버스 운전 중 귀에 들어온 승객들의 대화, 지나가다 마주친 이들, 그리고 매일 아침 곤히 잠든 상태로 마주하는 아내의 얼굴. 이 모든 일상의 순간들은 영감이 되고, 머릿속에서 시구가 떠오를 때면 패터슨은 비밀 노트를 꺼내 시를 적어 내려간다.

▲영화 '패터슨(Paterson)'(2017) 포스터

영화 <패터슨(Paterson)>(2017)은 미국의 버스 운전기사 패터슨의 일주일을 담은 작품이다. 평일 내내 같은 일상을 반복하던 패터슨은 평소와는 다른 토요일을 맞이한다. 그는 아침부터 아내와 컵케이크를 판매하고 그 수입으로 데이트를 즐기며 즐거운 오후를 보낸다. 그런데 웬걸, 집으로 돌아오니 반려견 마빈이 패터슨의 시가 적힌 노트를 갈기갈기 물어뜯어 놓은 채 태평하게 돌아다니고 있다. 부끄러운 마음에 복사본을 만들기를 주저했던 패터슨은 그렇게 그동안 써온 시들을 모조리 잃어버린다. 절망에 빠질 법도 하지만, 패터슨은 일요일 아침이 되자 평소와 같이 산책을 나선다. 예의 그 무표정으로 사람들을 구경하던 그는 우연히 일본인 시인을 만난다. 처음 보는 이와 시에 대한 대화를 즐겁게 나누던 그는 시인으로부터 빈 노트를 하나 선물 받는다. “Sometimes empty page presents the most possibilities.” 텅 빈 페이지가 가장 많은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말과 함께 남자는 자리를 뜬다.

다시 월요일, 패터슨은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하루를 시작한다. 똑같은 하루하루를 보내는 와중에도 패터슨의 삶은 빛난다. 따분할 법도 하지만 평온한 일상과, 자신을 사랑하는 가족과 반려견, 그리고 품에 고이 간직해 둔 비밀 노트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그의 일상은 관객들에게 평온한 일상에서 향유하는 예술의 아름다움에 대해 말한다. 감독 짐 자무쉬(Jim Jarmusch, 1953~)의 말처럼, “삶의 아름다움이란 대단한 사건이 아닌 소소한 것들에 있다.”

 

[사진기에 인생을 담는 여자]

▲영화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Faces Places)'(2018) 포스터

영화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Faces Places)>(2018)은 프랑스 영화감독 아녜스 바르다(Agnes Varda, 1928~2019)가 세상을 떠나기 전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작품이다. 88살의 영화감독 바르다와 33살의 사진작가 제이알(JR, 1983~)은 55살의 나이 차를 극복하고 예술이라는 공통점으로 뭉쳐 한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이들은 프랑스 각지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의미 있는 장소를 찾아간다. 그곳에 각자의 얼굴과 신체 부위를 찍은 사진을 남기는 것이 프로젝트의 주된 내용이다.

영화 속 대사처럼, ‘우연은 항상 최고의 조력자’이다. 우연히 멋진 사람들을 만난 바르다와 제이알은 사람들의 모습을 벽에 남겨 특별한 선물을 제공한다. 벽을 가득 채운 사람들의 얼굴과 자기 얼굴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는 이들. 평소였다면 무심히 지나쳤을 건축물은 제 모습이 담긴 순간부터 전혀 다른 존재로 와닿을 것이다. 이 작품의 원제인 ‘Faces Places’처럼, 바르다와 제이알이 거쳐 간 장소에는 사람들의 얼굴이, 그리고 추억이 남는다. 그들이 남기고 간 흔적은 타인의 일상을 바꿔놓았다. 앞서 소개한 두 작품의 주인공들이 스스로 제 일상을 예술로 만들었다면, 바르다와 제이알은 타인의 일상에 예술이 녹아들게끔 만든다.

 

별것 없어 보이는 일상 역시 가만히 들여다보면 저마다 각기 다른 빛을 내고 있다. 평범한 삶이라 치부하고 무심코 지나쳤다가는 큰코다친다. 시한부 선고를 받고 가족과 친구들을 위한 영화를 찍는 남자, 반복되는 하루 속에서도 영감을 찾아 시를 쓰는 남자, 다른 이들의 일상에 영화 같은 순간을 선사하고자 사진을 찍는 여자. 이 모든 삶은 영화라는 예술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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