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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자 달나라로!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1976)

소외된 계층의 사람들도 행복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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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표지/출처: 서울도서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표지/출처: 서울도서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1976)은 1970년대 산업화 과정에서 존재했던 계층적 갈등과 도시 빈민의 삶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소설 속의 ‘난장이’는 빈부와 노사의 대립 과정에서 억압당하며 소외된 사회적 약자를 상징한다. 기자가 이 소설을 처음 접한 건 고등학교 2학년 문학 시간이었다. 기자의 기억 속에 이 소설은 동화 같은 분위기 뒷면에서 사회의 냉혹함을 표현한 작품으로 남아있다. 난장이 가족이 살았던 낙원구 행복동의 배경은 서울시 중구 호박마을이다. 호박마을은 중구 중림동 일대의 마지막 달동네이며, 현재 남아있는 주민들은 철거 통보를 받은 상태다. 기자는 중림종합사회복지관 맞은편 언덕에 위치한 호박마을을 찾아가 난장이의 흔적을 따라가 봤다.

▲낙원구 행복동의 배경이 된 중구 호박마을
▲낙원구 행복동의 배경이 된 중구 호박마을

 

영희: 우린 못 떠나. 갈 곳이 없어. 그렇지 큰오빠?

영수: 어떤 놈이든 집을 헐러 오는 놈은 그냥 놔두지 않을 테야. 울지 마, 영희야.

영희: 자꾸 울음이 나와.

영수: 그럼, 소리를 내지 말고 울어.

 

난장이 가족은 난장이인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영수’, ‘영호’, ‘영희’ 삼 남매로 이루어져 있다. 소설의 1장은 첫째인 영수의 시점에서 시작한다. 아버지인 난장이는 키 117cm에 몸무게 32kg인 왜소한 모습을 하고 있으며, 채권 매매, 칼 갈기, 건물 유리 닦기, 수도 고치기 등으로 어렵게 생계를 유지했으나 병에 걸려 일을 할 수 없게 된다. 이에 영수, 영호, 영희 삼 남매는 학교를 그만두고 일을 시작한다. 어느 날 행복동 주민들에게 철거 계고장이 날아오자, 난장이 가족은 손수 지은 집을 떠나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입주권이 있어도 입주비가 없는 행복동 주민들은 이주 보조금보다 약간 더 많은 돈을 받고 입주권을 팔아야 하는 처지에 몰린다.

호박마을에 가기 전, 기자는 서울에 달동네가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중림동에 도착해, 중림종합사회복지관 맞은편 골목으로 들어가니 사람이 보이지 않는 작은 달동네가 나왔다. 1970년대의 모습을 간직한 곳이라 어색하면서도, 서울의 높은 건물 속 산업화 이전의 모습이 남아있는 공간이 있다는 게 신기하게 다가왔다. 호박마을의 모습은 바로 맞은 편 고층 아파트와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지섭: 사람들은 사랑이 없는 욕망만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단 한 사람도 남을 위해 눈물을 흘릴 줄 모릅니다. 이런 사람들만 사는 땅은 죽은 땅입니다. 그런데, 이게 뭡니까? 뭐가 잘못된 게 분명하죠? 불공평하지 않으세요? 이제 이 죽은 땅을 떠나야 됩니다.

아버지: 떠나다니? 어디로?

지섭: 달나라로!

 

철거 계고장이 나온 막막한 상황 속에서, 아버지는 ‘지섭’이라는 한 젊은이를 만난다. 지섭은 가정교사로, 아버지에게 열심히 일하고, 나쁜 짓을 하지 않고, 기도를 열심히 하고서도 삶이 이렇다면 이 땅은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는 죽은 땅이니 달나라로 떠나야 한다고 말한다. 이 말에 아버지는 크게 공감하고 삶의 지표를 지섭이 설정한 생각에 맞춘다. 아버지가 꿈꾸는 달나라는 이 소설이 최종적으로 지향하는 곳이다. 사회에서 소외된 계층의 사람들도 행복을 꿈꾼다. 괴로울 때마다 난장이는 달나라로 작은 쇠공을 쏘아 올린다. 실제로 난장이는 달나라에 가능한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굴뚝 높은 곳에 올라 비상하기도 한다. 하지만 세상은 난장이의 비상을 용납하지 않았고, 실현될 수 없는 유토피아를 꿈꾸는 인물에게서 우리는 더 큰 비극을 느낀다.

▲1970년대 노동자들이 함께 모여 공부하고 토론하던 인천도시산업선교회(현 일꾼감리교회)
▲1970년대 노동자들이 함께 모여 공부하고 토론하던 인천도시산업선교회(현 일꾼감리교회)

 

영호: 힘을 내, 형.

영수: 이건 힘으로 할 일이 아니다.

영호: 그럼 뭐야? 용기야?

영수: 우리가 말을 할 줄 몰라서 그렇지. 이것은 일종의 싸움이다. 우리는 우리가 받아야 할 최소한도의 대우를 위해 싸워야 돼. 싸움은 언제나 옳은 것과 옳지 않은 것이 부딪쳐 일어나는 거야. 우리가 어느 쪽인가 생각해 봐.

 

2장은 둘째 영호의 시선으로 전개된다. 영수와 영호는 공장에서 탁한 공기와 소음 속에서 늦은 밤까지 일을 한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작업 수당과 노동자 수는 줄어들고 일의 양은 늘어만 간다. 이러한 부당한 처사에 대해 입을 여는 자는 아무도 모르게 공장에서 쫓겨났다. 영수, 영호를 포함한 노동자 대부분이 어린 나이에 들어와 중요한 성장기를 공장에서 보냈기에, 공장이 문을 닫게 되면 그들이 일할 곳은 사라져 버린다. 회사 사람들은 노동자들이 생각하는 것을 싫어했고, 노동자들은 살기 위해선 마음속에서 옳다고 외치는 것과 반대 방향으로 움직여야만 했다. 영수와 영호는 공장 사람들과 같이 일손을 놓고 사장을 만나 담판을 짓기로 한다. 하지만 공장 사람들이 영수와 영호를 배신해, 영수와 영호 둘만 사장과 그의 참모들에게 대항하는 상황이 돼버린다. 그렇게 영수와 영호는 싸움에서 질 수밖에 없었고, 결국 그들은 일터에서 쫓겨나게 된다.

▲인천도시산업선교회 내부 모습
▲인천도시산업선교회 내부 모습

기자가 방문한 인천은 훗날 난장이 가족이 행복동에서 이사해 정착한 은강시의 배경이 된 장소다. 인천 동구 만석동은 인천 산업화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며, 도시를 돌아다니다 보면 그 시절의 흔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만석동에는 영희가 일했었던 공장의 배경이 된 동일방직과 일꾼감리교회가 있다. 일꾼감리교회의 이전 명칭은 인천도시산업선교회로, 노동자들이 함께 모여 공부하고 토론하며 인간답게 살 권리를 배웠던 교회다. 안으로 들어가면, 실제로 그곳에서 노동자 인권을 공부한 사람들의 모습과 흔적이 사진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만석동에서도 옛 달동네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인천 괭이부리마을은 만석동 인근 공장 노동자들이 살았던 동네이며, 여전히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행복동 철거의 목적이 된 성요셉아파트
▲행복동 철거의 목적이 된 성요셉아파트

 

영수: 제발 울지 마. 누가 듣겠어.

영희: 큰오빠는 화도 안 나?

영수: 그치라니까.

영희: 아버지를 난장이라고 부르는 악당은 죽여버려.

영수: 그래. 죽여버릴게.

 

마지막 3장은 영희의 시점이다. 투기업자들의 농간에 입주권 시세가 눈 깜짝할 사이에 뛰어오르자, 난장이 가족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승용차를 타고 온 사나이에게 입주권을 팔게 된다. 난장이 가족은 입주권을 팔았음에도 전세금을 갚고 나니 남은 돈이 없다. 영희는 사나이가 사간 집의 입주권을 되찾기 위해 집을 나간다. 영희는 승용차를 타고 온 사나이의 사무실에서 일하며 기회를 틈타 입주권을 가지고 집에 돌아온다. 이사를 한 가족을 찾으러 기존에 살던 집에 찾아간 영희는 아버지가 벽돌공장 굴뚝에서 떨어져 죽었다는 사실을 전해 듣는다.

이 소설에 담겨 있는 소외된 도시 빈민의 문제는 그 당시 우리 사회가 당면한 실제 모습이다. 최저 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저임금, 열악한 노동 환경 그리고 빈민들에 대한 탄압 등 우리는 난장이 가족을 통해 산업화 사회의 부정적인 모습들을 볼 수 있었다. 소외된 도시 빈민들은 사회의 중심에 설 수 없기에, 항상 소외되고 위축되어 있다. 난장이의 가난과 불평등은 삼 남매에게 대물림된다. 소설 속 난장이의 모습은 신체적 왜소함을 넘어서서 사회적 신분의 왜소함을 보여준다. 그들이 저항하면 저항할수록 사회로부터 더욱 핍박받는 것이 사회에서 소외된 계층의 비애이며 굴레이다.

사회적 갈등으로 인해 핍박받는 이들을 지켜주는 것은 사랑이다. 난장이 아버지와 어머니 간의 사랑,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 그리고 영수와 뒷집 명희와의 사랑은 소설 곳곳에서 나타난다. 난쟁이가 꿈꾸는 달나라 역시 서로 간의 사랑과 도덕성이 지켜지는 사회였다. 산업화라는 부정적 상황 속에서도, 사랑의 순수함이 지켜지는 사회를 난장이는 꿈꿨던 것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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