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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앞에서’와 함께(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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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어느 모임에서 행사 축하곡으로 가수 설연아 님의 <홍대 앞에서>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반짝이는 네온싸인 돌아가는 젊음의 밤거리

흔들리는 이 내 마음 그 느낌 가슴 적시네

바람불고 비가 내리고 하염없이 젖어드는 밤

이 거리에 취해 보는 밤 오늘도 홍대 앞에서

반짝이는 네온싸인 다시 찾은 추억의 밤거리

흔들리는 이 내 마음 그 추억 가슴 적시네

바람불고 비가 내리고 하염없이 젖어드는 밤

이 거리에 취해 보는 밤 오늘도 홍대 앞에서

바람 불고 비가 내리고 하염없이 젖어드는 밤

이 거리에 취해보는 밤 오늘도 홍대 앞에서

오늘도 홍대 앞에서”

 

나는 이 노래를 들으면서 왠지 모르는 찐한 감동이 엄습함을 느꼈다. 노래의 제목이 ‘홍대 앞에서‘이기도 했지만 그 이상의 뭔가가 마음 속 깊은 울림으로 다가옴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 홍대는 역시 뭔가를 홀리는 느낌과 가치가 있다. 지금은 홍대가 거리 이름처럼 되어 있지만 처음엔 분명 우리 홍대가 먼저 있었고 이후 홍대 앞 거리가 유명지지니까 마치 홍대가 거리 이름인양 알려지게 된 것이 참으로 공교롭다. 이를 잘 모르는 외국 사람들은 홍대 거리가 먼저 있었고 이 거리 이름을 따서 홍대라는 학교가 생긴 줄 알지만, 사실은 분명 그 반대이다. 어찌 되었든 홍대가 학교 이름이든 거리 이름이든 이젠 홍대가 세상에 널리 알려져 홍대를 찾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졌고 우리 홍대는 전세계가 주목하는 대학이 되었으며 홍대거리는 전세계가 찾고 싶어하는 거리가 되었다.

지금 회고해 보면 내가 우리 홍대에서 처음 교편을 잡던 1980년이야말로 우리 홍대는 지금의 모습과는 천양지차였다. 지금 홍대 라이즈호텔(구 서교호텔)을 지나는 대로도 그 때는 없었고 당시는 우리 홍대 정문 앞을 통과하는 길이 가장 큰 길이었다. 그 길도 비만 오면 질척거려 신발이 더러워지기 일쑤였고 차량 통행도 얼마 되지 않았다. 당시만 하더라도 홍대 앞에는 2-3 군데 정도의 카페밖에 없었고 카페를 찾아야 할 때는 신촌로터리 연세대 앞이나 이화여대 앞에 가야만 했었다. 이후 1990년대 들어서면서 당시 청기와주유소 앞에 지금의 대로가 생겼고 홍대 앞길도 말끔이 포장되어 서서히 그 면모를 갖추어져 갔다. 이와 함께 우리 홍대도 급진적으로 발전하여 갔다.

그러나 우리 홍대 앞 거리가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춘 것은 한참 이후였다. 지금처럼 클럽 및 공연장이 많이 소재해 있는 것도 아니었고 현재와 같이 인디음악, 거리예술, 출판 및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의 수많은 협동조합, 사회적 기업, 마을공동체, 비영리단체 등이 즐비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소수의 음식점, 시장, 술집, 가게 등이 늘어선 정도에 지나지 않아 지금과 같은 거리의 모습을 상상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웠다. 이제 홍대 앞은 관광과 소비, 협동조합과 사회적기업 등 문화적 경제 활동이 돋보이며, 예전부터 간헐적으로 있어 온 시각예술, 대중음악 분야 예술 장르와 공간 등이 몇몇 민간 영역 단체들과 함께 특수한 지역성을 내포한 활동으로 새롭게 이목을 끌게 되었다.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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